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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Aug 17. 2020

디즈니 공주도 이별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헤어짐을 당한 자들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하게 울어서 미안해. 그런데 나이 먹었다고 이별이 쉬운게 아니더라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밤새워 하이텐션으로 놀고 있던 찰나였다. 우리는 이미 포차에서 소주로 정신을 반쯤 놓았고, 옆자리의 합석 제안으로 으쓱도 하며, 그 뽕을 이어 언니 집에서 달밤에 스쿼트를 해대며 생산적으로 이별을 이겨내고 있었다. 언니의 남자친구는 원래 그런 새끼였고, 처음부터 말렸어야 했던 나도 공동책임자고, 그렇게 주변 남자들로 리스팅을 하며, 리스트에 등재된 남자들을 평가하며, 대수롭지 않게 쿨하게 이별을 대하고 있던 중 아니었던가? 20대의 나는 30대 언니가 펑펑 우는 모습에 진심이 아닌 애써 겉으로 위로해야 했다.


30대 엉망인 이별을 마주하다


그렇게 이별이 쉽고 대수로웠던 20대였다. 그런 나의 30대는 이별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새로운 막이 열리고 있었다. 원하던 인지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쫓아 호기롭게 직장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제일 가고 싶던 학교만 원서를 써서 당당히 한번에 붙을 수 있었다. 학업과 함께 그동안 경력을 살려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하며 직장 다닐 때보다도 몸값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 날, 늘 온라인에서만 재밌게 지켜보던 인플루언서인 그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실제로 봤던 그의 인생은 그가 주창한 밈처럼 엉망이었다. 무모하게 늘렸던 회사 사이즈를 1년도 안가서 다운사이징 해야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된 직원들이 릴레이로 악플을 써둔 이야기를 꺼내며 고민 상담을 하러 찾아왔다. 신세 한탄을 풀어놓는 그 사람의 인생에 왜 난 반응했던 것일까? 인기 스타의 어두운 뒷 이야기를 듣는 것이 영광인 팬심이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슬픔을 나누면 반이 아니라, 슬픈 사람이 둘이 된다는게 정설이었나 싶다. 처음에 그 사람은 나의 자존감 높은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차피 자기 인생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특수관계인인 연인이 된 후 엉망진창인 자신의 인생을 대하듯 나를 대할 뿐이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상대가 자신의 힘든 일로 접근하려 한다면 지금이 바로 도망쳐야 할 타이밍인 것이다.


이별 상담은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그럼에도 그에게 환심을 보였던 것은, 글 쓰는 그처럼 나 역시 글 쓰는 것이 좋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동경하는 어떤 작가 부부처럼 서로의 글의 가장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그런 이상을 꿈꿨다. 하지만 내가 발행할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면, 인정은 커녕 늘 다른 사람의 글과 비교를 당했다. 내 글이 성공적으로 반향을 일으켜도 독자의 수준이 낮은 것 뿐이었다. 헤어질 때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본인이 속한 세상이 너무 커서, 내가 작아 보이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답변 뿐이었다.


급속도로 전염된 엉망스러운 인생에 나는 철저히 감정 컨트롤에 실패했다. 그에게 초안을 보여주고 나면 발행할 자신을 잃으며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마감의 압박에 짓눌리며 사는 하루하루였다. 프리랜서로서, 대학원생으로서, 이곳저곳 벌린 일들에 퍼포먼스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매일 같이 술 취해 비틀거리며 편의점 맥주와 소주를 들고온 그와 술동무가 되며 살은 급속도로 5키로나 불었다. 나의 삶은 순식간에 그의 삶을 닮아 엉망이 되어버렸다.


연애 이야기를 꺼내놓는 건 나한테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설사 남자친구가 바람난 적이 있어도, 그 사실 자체가 나한테 불명예로워 나 혼자 끙끙 앓으며 혼자 오로지 버텨낸 적이 있다. 남의 이별 이야기에 시큰둥했던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어차피 남들도 내 이야기에 시쿤둥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30대가 되어 추하게 울먹이며 헤어지겠다 해놓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사귀는, 그런 암덩어리 같은 구간을 보냈다. 그런데 내가 연애 상담을 할 때마다, 다들 마음 속에 한 켠에 묻어둔 아픈 이별을 하나둘씩 꺼내 놓는 것이 아닌가?


과거 연애 이야기는 긁어 부스럼일까?


원래 브런치는 나의 삶의 궤적같은 포트폴리오로 쓰려했다. 그런데 이별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누군가 이별에 아픔을 겪고 있을 때, 도무지 머리로 이해가 안가는 관계를 지속할 때, 대한민국 대표 연애 칼럼니스트인 모 언니가 헤어지라고 똑부러진 소리만 할 때, 내가 이별하며 했던 멍청한 짓들을 공유하면, 조금이나마 누군가의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혹은 내 경험을 비추어 메타인지가 되어 정신차리지 않을까해서 말이다. 내가 울먹이며 연애 상담하면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이별 고해성사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별 한번 겪어본 적 없이, 처음부터 완벽한 왕자님을 만난 디즈니 공주들이 얄미워졌다. 니들이 이별도 모르고 무슨 인생을 논하니?


헤어지고 한달이면 멀쩡하다더니, 겨울에 헤어져 봄이 되어도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이 되어서야 나에게도 드디어 디즈니 왕자같은 구원자가 나타난 듯 했다. 그래서 쌓아두었던 이별에 관한 글을 작가의 서랍에만 고이 간직한 채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그 인간이 나에게 남겨놓은 상처는 참 지독했다. 행복한 순간의 찰나에도 가장 불행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짠다. 사랑에 빠져 가장 들 뜬 순간에도, 어차피 이 행복도 곧 끝날 거라며 다시 평정심을 찾으려고 한다. 절대 그의 사랑이 부족한게 아님에도 말이다.


연휴를 맞아 처음으로 떠나온 여행길 차 안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와 함께 내가 구현하고 싶은 서비스를 이야기 하는데, 개발적으로 복잡하다며 구현이 어려운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 지점에서 내 과거 경험에서 글로 인정받지 못했던 기억을 소환했나 보다. 틈틈히 용기내서 아팠던 과거를 다시 한번 짚어 보려고 한다. 결코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그렇게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앞으로의 연애 연재에 대하여...


사랑, 연애, 이별에 대한 글 연재에 있어서 나의 원칙은 딱 2가지다.

1. Be honest
    내가 뭐 때문에 슬펐고 분노했는가. 가장 솔직해질 것.

2. Be foolish
    사랑 앞에서 누구나 바보다. 더 현명한 척 하지 말 것. 


일상의 잡다한 심상 모두 글로 다 풀어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 기질이 유독 연애의 영역은 건드릴 수 없는 답답한 마음 말이다. 익명의 힘을 빌리지만 네이트판 보다는 진지해지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어느 날은 충만한 사랑의 주제도 좋다. 다시 말하지만, 난 요즘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연애 상태란 말이다!


그러다보니 내 이야기만 투명하게 드러내는게 너무 머쓱한 것 아닌가. 그래서 필진을 모아 연애 칼럼을 쓰고, 누가 썼는지는 비밀테이프로 붙이는거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1) 한 주에 공통의 주제를 잡고, 2) 각자의 에피소드를 수집하고 3) 술자리 대화처럼 이야기를 풀어보자. 당연히 그에 대한 필진도 공개되고(익명이지만, 내가 썼는지는 알리고 싶다는 양가적 감정...), 만약에 글이 잘되면 기여도에 따라서 모든 수익도 분배하고자 한다(연애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일단 장미빛 미래를 생각해야 뭐든 시작하지 않겠는가...) 


아픈 마음 철철 흘려가며 모아가던 주제들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혹시나 함께하고 싶은 작가님이 계시다면, 원하는 집필 방향과 추가적인 글감을 정-말 캐-쥬-얼하게 공유해주세요! 저에게 닿는 어떤 채널이든 편하게 말을 걸주셔도 좋아요. 아무도 안 신청하면 마치 모집된 것처럼 내 모든 연애 소재를 털어서 1인 다역을 하겠다!


앞으로 글이 폭발적으로 터질 거라는 예견을 담은 배경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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