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할까 한다. 덕질을 부르는 이탈리아 배우 겸 가수를 발견해서다.
덕질, 우습게 보지 말자.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공부에서 덕질은 훌륭한 도구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토종이면서 영어신문에서 10년 가까이 영어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데는 그간 좋아했던 배우와 가수 십 수 명의 공(?)이 크다. 물론 팔 할은 성문종합영어와 민중서림 사전, 그리고 뉴욕타임스ㆍ뉴요커ㆍ이코노미스트 등, 정도(正道)를 걸은 덕이다. 하지만 나머지 이 할의 덕질 외도(外道)가 없었다면 공부가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었을 터. 외국어는 그 언어를 쓰는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좋아해야 실력이 좋아진다. 덕질의 효용, 말해 뭐하나.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최근 드라마 주연작, '집단좌천' 공식 포스터. [TBS]
최근 몇 년간에는 일본어를 열공했는데, 일본 배우 겸 가수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 덕이다. 그에게 쏟아부은 시간과 돈, 에너지 덕에 이젠 일본 취재원들과 (미리 예습을 한 경우에만) 통역 없이 인터뷰도 하고, 일본 학생들에게 특강도 두 번 했다. 이 모든 영광을 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돌린다. 결혼한 뒤 애정이 확 식긴 했지만, 행복하게 잘 살길 기원합니다 오빠. 이왕이면 오빠 닮은 우월한 유전자의 아이들 많이 낳아서 인류에 팍팍 이바지하길.
'아웃랜더'의 남주 제이미 프레이저 [팬페이지]
각설하고, 공부(라고 쓰고 덕질이라 읽는다)엔 끝이 없다. 올해 상반기엔 (또) 뜬금없이 스코틀랜드의 게일어(Gaelic)에 빠졌는데, 이게 다 미드 ‘아웃랜더’ 탓(or 덕)이다. 최근 만났던 영국인 친구가 “너 요즘 영어에 스코틀랜드 사투리 섞이는데? 이번엔 또 누구에 빠진 거야?”라고 놀렸을 정도다.
‘아웃랜더’의 제이미 프레이저(Jamie Fraser)라는 스코틀랜드 전사 캐릭터에 빠져 넷O릭스의 시즌 5개, 에피소드 총 67편을 매일 새벽 3시까지 보다 보니 생긴 일이다. 타임 슬립 설정이 낡았다는 등, 애정신 빼곤 지루하다는 등의 비판은 정중히 사양한다. 타인의 취향은 존중 구다사이.
'아웃랜더' 남주 샘 휴언의 팬들이 만든 이미지. 말장난이다. Scotch=스카치 위스키이면서, 스코틀랜드 출신인 샘 휴언을 동시에 가리킨다.
넷O릭스엔 왜 ‘다음 편 자동 재생’ 기능이 있는 걸까. “한 편만 더”하다가 출근 4시간 전까지 충혈된 눈으로 binge watching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숨만 쉴 뿐. 여기서 한 단어 기억해두면 도움된다. Binge는 원래 ‘폭음하다’ 또는 ‘폭식하다’의 ‘폭’에 해당하는 단어다. 따라서 binge drinking 은 폭음, binge eating은 폭식이고, binge watching은 음 글쎄, 폭청(?)정도 되려나.
이왕 하는 덕질, 몇 가지 영어 및 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적어보려 한다. 나보다 뛰어난 덕질 고수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이지만, 경험 공유 차원이다.
1. 넷O릭스의 자막 기능을 활용
대부분 시리즈의 경우 자막이 여러 개다. 공부하는 외국어, 또는 버닝 중인 배우가 나오는 콘텐츠를 보면서 자막을 켜놓자. 한국어 자막은 노노. 한국어 콘텐츠라도 영어 자막을 선택할 수 있고, 일본어 콘텐츠는 대개 영어 자막은 없지만 일본어 자막이 나온다. 영어 콘텐츠도 물론 영어 자막이 나온다. 이왕 하는 binge watching, 공부도 해가면서 하면 금상첨화 아니겠나.
2.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덕질
넷O릭스로만 끝나지 말고 구글링과 유튜O 등도 적극 활용해보자. 자료와 정보가 넘치는 세상 아닌가. 최근 미국에 거주 중인 친구가 “이 영화 안 보면 요즘 여기에선 외계인 취급받아”라며 알려준 19금 영화가 있는데, 남주가 이탈리아인이다. 영어 대사를 하는 게 영 어색해서 그의 이름을 유튜O에 쳤더니 와우, 이탈리아어 콘텐츠가 죽을 때까지 다 못 볼 정도로 나온다. 그가 모국어로 치는 대사나 예능에서의 농담을 들어보니 뜻은 이해 못해도 훨씬 더, 섹시하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 천만 배.
강아지야, 너는 좋겠다. [인스타그램]
해당 영화(제목은 ‘365dni’)가 영화적 완성도가 낮다는 둥, 연기력이 발이고 남주 아니면 폭망했을 거라는 등의 비판은 역시, 정중히 사양한다. 솔직히, 부인은 못하겠다. 다 맞는 말이다. 폴란드 출신 여주도 이탈리아 출신 남주 모두 영어 대사 전달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럼 어때. 남주의 presence(존재감)만으로 볼만하다. 정 싫으면 그냥, 안 보면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말아, 너도 좋겠다. [인스타그램]
구글링과 유튜O에서 끝나지 말고, 해당 언어 또는 영어권 매체에서 사랑하는 오빠(or 동생, 언니 etc.)의 인터뷰 또는 기사를 찾아보자. 기사를 쓴 기자도 덕후의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몰입도가 수직상승. 나의 경우엔 오프라 매거진(오프라 윈프리의 그 오프라 맞다)의 아래 기사가 그랬다.
덕질할 때 기사는 특히 도움이 된다. 기자가 기본적인 팩트체크를 해주고, 사진들을 알아서 모아서 보여주며, 각종 정보를 선별해주니까. 읽다 보면 영어 실력도 는다. 꿩 먹고 알 먹고.
타임슬립하는 여주가 "항생제? 전기? 됐고, 난 제이미 프레이저면 됐어"라고 말한다고 가정한 이미지. 팬페이지에서 가져왔다.
3. 덕질의 보물섬, SNS
요즘엔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보가 넘쳐난다. 아직 덜 핫한 오빠 or 동생을 좋아하고 있다면 그들의 SNS를 팔로우하는 게 더 많은 정보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 전 세계 모든 팬들이 모인 팬페이지도 쏠쏠하다. 위에 언급했던 '아웃랜더'의 팬페이지는 페이스북에만 3개가 넘는데, 미국의 스테이시부터 영국의 브렌다까지, 세계의 모든 '아웃랜더' 팬들이 각종 정보를 교환한다.
오늘도 여러분의 덕질을 응원한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관련 정보를 구글링 해서 국내 포털엔 없는 정보를 찾을 수도 있고, 여행을 좋아한다면 뉴욕타임스의 '36 hours in OOO’ 시리즈를 계속 읽으며 정보도 모으고 영어를 공부할 수도 있다.
한때 유행했던 이미지. 명언이다.
사는 건 어차피 힘들다. ‘오늘 힘들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내일은 더 힘드니까’라는 명언도 있지 않나. 풍진 세상, 덕질로 이겨보자. 외국어도 공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