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존 볼턴

그래 나 토종이다 그 열두 번째

by Sujiney


“제페토 할아버지.”

우리는 존 볼턴(John Bolton)을 그렇게 불렀다. 너그러운 제페토 할아버지와 볼턴이 닮은 건 단 하나, 콧수염뿐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ㆍ미 정상회담을 취재하던 외교 담당 기자들이다. 물론 나도 포함.


북한은 극렬히 반대할 별명이다. 북한은 공개적으로 수 차례에 걸쳐 볼턴을 이렇게 불렀으니까.

“인간쓰레기.” 때론 “흡혈귀.”


완독 하시면 볼턴 책의 영어 표현부터, 키신저의 조언 등등 나름 콘텐츠가 풍부하다. 부디 읽어주시길~


제페토 할아버지.jpg 제페토 할아버지, 왠지 미안해요. [디즈니]


북한, 또는 외교, 혹은 문재인 정부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존 볼턴을 모를 수 없다. 가장 최근에 맡았던 직책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 끝에 트윗으로 해고당했지만 최근 폭로의 정석 회심의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을 펴내며 트럼프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그래 그 책 말이다. 대한민국 국가 원수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라는 표현을 쓴 책.


cover.png AFP 사진.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째려보는 볼턴.


해적판이 돌아다니고, 심지어 ‘한반도 관련 부분 요약본’ PDF까지 돈다. 이 요약본, 꽤 잘 만들었다. 각종 서식과 폰트 등을 감안하면 외교 분야의 현직 실무 레벨 공무원이 작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핵심을 잘 짚었다.


bolton at CSIS.jpg 볼턴의 강연을 직접 듣고 취재했던 지난해 10월 한 포럼.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SJ]


문제는, 대다수가 이 요약본만 읽고 마치 볼턴의 책을 다 읽은 양 비난 또는 찬사를 쏟아낸다는 점이다. 요약본이라도 읽었으면 그나마 낫다. 요약본에 대해 다룬 몇몇 매체의 기사들만 읽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도 다수다. 볼턴과 같은 논쟁적 인물에 대해 다룬 기사들은 매체의 성격상 프레임을 갖고 ‘답정너’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기레기들만 그렇다고? 모르시는 말씀. 미국 매체들도 마찬가지다. 반(反) 트럼프 진영의 선봉장인 CNN과 친(親) 트럼프 친위대를 자처해온 폭스뉴스를 보라. 같은 뉴스를 다루면서도 다른 내용을 전한다. 뉴스만 그렇다고? 천만의 말씀. 한 전직 외교관이 최근 들려준 얘기다.


“북한의 최선희 (현 외무성 제1부상이지만 사실상 외무성 미국 담당 넘버원)와 만난 미국 외교관 A와 싱크탱크 전문가인 B를 만났습니다. 최선희, A와 B가 함께 미팅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A와 B의 얘기는 정반대였습니다. A는 북한 대화론자, B는 강경파죠. 자기들이 듣고 싶은 식으로 최선희의 얘기를 해석했더군요.”


어디 A와 B뿐이랴. 그렇게 편하게 해석이 가능하도록 애매모호 알쏭달쏭 아리까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최선희의 외교적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도 된다.


중요한 건 중심을 잡는 거다. 볼턴이 쓴 수많은 내용 중 팩트와 해석의 옥석을 잘 가려서, 우리의 실제 국익에 맞게 쓰면 된다. 나쁜 놈이라고 흥분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고, 볼턴의 주장을 검증 없이 신봉하며 “문재인 정부는 다 틀렸어”라고 화를 낼 필요도 없다. 게으름 때문에, 혹은 너무 바빠서, 원문이 있는데도 읽지 않은 채 그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볼턴 책 원문을 직접 읽는 게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샀다. 지난 6월 초, 예약주문 창이 열리자마자 바로 결제를 했고 어제(7월 3일) 책을 받았다. PDF는 약 2주 전 입수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옛날 사람인가 보다. 종이를 만지고, 줄을 긋고, 내 생각도 여백에 적어가며 읽어야 읽는 맛이 난다. 그렇게 읽은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받자마자 읽은 첫 챕터 중에서 우선 소개한다. 나머지 부분은 차차 정리해 소개하려 한다.


KakaoTalk_20200704_174332184_05.jpg 할인받았는데도 스벅 아메리카노 9잔 값...


챕터 1 제목은 The Long March to a West Wing Corner Office 다. 의역하면 “국가안보보좌관실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이 되겠다.


요는 이렇다.


“나, 원래는 국무장관 하고 싶었어. 트럼프도 인수위 때부터 나를 자주 따로 불러 ‘요직을 맡기겠다’고 했지. 그러더니 다 다른 사람 임명하다가 다 엉망진창으로 만들더니, 나를 나중에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더군.


그런데 말이야, 얼마 안 가서 오 마이 갓, 북한이랑 정상회담하겠다고 하더라고. 한국이 평창에서 겨울올림픽을 하면서 사달이 벌어진 거지. 올림픽에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와서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에 초청했고, 바로 덥석 받았더군. 한국의 진보는 햇볕정책을 숭배하는 자들이야. 북한에 잘해주면 한반도 평화가 온다는 잘못된 믿음이지. 그 반대여야만 해.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북한에 대해선 선제 군사공격 가능성도 옵션으로 올려둬야 해. 그래야 김정은이 우리말을 듣는다니까.”


여기까지만 써도 이미 볼턴과 사랑에 빠지던지 볼턴을 증오하던지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볼턴 자신도 잘 안다는 것. 그리고, 트럼프가 그 점을 높이 샀다는 것. 다음 부분을 보자. 책 15페이지 부분이다.


KakaoTalk_20200704_174332184_01.jpg


요는,

“(트럼프 사위인 재러드) 쿠쉬너가 나더러 그랬어. ‘당신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자 트럼프가 바로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더군. ‘맞아, 나랑 똑같아! 사람들은 날 사랑하든지 증오하든지 둘 중 하나잖아. 존과 나는 똑같다고.’”


이렇게 궁합이 잘 맞았던 트럼프와 볼턴이지만 둘 사이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다.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북한. 하지만 북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쉽게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 한반도 이슈가 미국에도 엄청나게 중요한 핵심적 문제라는 거다.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도 북한 관련 부분은 약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15개의 챕터 중 한반도 관련은 넓게 봐서 4개 정도다. 나머지는 볼턴이 천착해온 이란과 중동, 베네수엘라 등이다.


KakaoTalk_20200704_174332184_04.jpg 볼턴의 북한 선제공격 옵션 주장 부분. 책 29쪽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볼턴의 책은 볼턴 그 자신이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쓴 표현 등등을 보면 그의 됨됨이가 드러난다. 물론 사이먼 앤 슈스터라는 세계적인 출판사의 뛰어난 편집자들이 워낙 잘 고쳐줬겠지만, 원판 불변의 법칙이 존재하는 건 성형의 세계에서뿐만이 아니다.


볼턴이 즐겨 쓴 표현을 보면 그가 사실 잘난 척을 즐긴다는 게 드러난다. 왜? 라틴어부터 독일어와 프랑스어 등 외래어 표현과, ‘꾼’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종 용어를 마구 쏟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워낙 이런 표현에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책을 쓰는 저자가 독자를 배려한다면 풀어서 썼을 수 있는 표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런 거.


Bellum monium contra omnes = 라틴어. 이건 볼턴이 친절하게도(?) 영어로 해석을 달아놨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3쪽.

The White House Sturm Und Drang = 독일어. 질풍노도의 백악관, 정도가 되겠다. 12쪽.

A tour d’horizon = 프랑스어. 영어로는 overview 정도가 되겠다. 15쪽.


그러면서도 볼턴은 대중적 표현도 동원한다. 비유를 하면서 팝송인 ‘호텔 캘리포니아’를 예시로 드는 식. 19쪽에 나온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마치 이글스가 부른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 같았다. ‘언제든 체크아웃은 할 수 있지만/그렇다고 떠날 수는 없어(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But you can never leave.)’


외교의 전설인 헨리 키신저가 볼턴을 예뻐했다는 것(또는, 그런 식의 발언을 몇 번 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 키신저가 볼턴에게 했다는 조언도 알아두자. 정부의 요직을 제안받을 때 새겨야 한다는 말이란다.


“Never take a government job without an inbox.”


직역하면 “인박스가 없는 정부 직책은 절대 맡지 마” 정도. 여기에서 ‘inbox’가 뭘까. 물론 21세기의 우리들은 e메일 계정의 ‘받은 편지함’을 떠올리기 마련. 나도 그랬다. 그런데 말이 안 된다. “받은 편지함이 없는 정부 직책은 맡지 말라”라니? 키신저가 20세기 인물임을 명심하자. 여기에서 인박스는 우편함이다. 굳이 우편함을 언급한 이유는 뭘까.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주소가 확실한 자리, 즉 사무실과 비서 등이 확실히 지급되는 자리만 받으란 얘기다. 그렇지 않은 직책, 예를 들어 ‘고문’ 정도의 애매한 포스트는 스카우트 제의가 오더라도 받지 말라는 게 키신저의 조언이다.


KakaoTalk_20200704_174332184.jpg "트럼프는 트럼프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다시 볼턴으로 돌아가 보자. 볼턴은 이 책에서 직접 인용을 많이 했다. 트럼프부터 사위이자 핵심 요인인 재러드 쿠쉬너, 경질 전까지 핵심이었던 스티브 배넌 등이 자기에게 보낸 문자부터 e메일, 대화 내용까지 세세한 디테일을 모두 직접 인용했다. 그만큼 용의주도한 인물이란 얘기. 사실 관계 검증은 필요하지만 그가 어쨌든 메모를 다 해두고 언젠가 책을 쓸 작정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볼턴은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인물은 스토킹까지 했을 정도로 악독한 인물로도 통했다. 소방관의 아들로 중산층 가정에서 예일법대를 졸업한 수재인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선 어떤 짓이든 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의 성장 배경 등은 아래, 예전에 썼던 기사 링크로 갈음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92987


두서가 좀 없었지만 볼턴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마음만큼은 전달되었기를. 앞으로 시간을 들여 완독을 한 뒤 볼턴 관련해선 한두 번 정도 더 글을 쓰려고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하기 전에 그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 사람이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By SJ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덕질로 영어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