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32회 셀럽과 발레 - 다이애너 왕세자비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너도 발레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의 인생이 슬프게도 그러했듯, 해피 엔딩을 맞지 못했다. 이번 발레로운 매거진은, 다이애너와 발레 이야기.
다이애너도 요즘 말로 하면 성인 취미발레인이었다. 그가 아직은 비련의 주인공이 아닌 신데렐라였을 때 시작했다. 영국 정론지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찰스 왕세자와 결혼을 앞두고 발레 클래스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엄청난 셀럽이니, 단체 레슨은 언감생심. 발레 단체레슨이 얼마나 즐거운데, 그걸 못 듣다니, 안 됐다...고 쓰게 될 줄이야.
다이애너 비는 대신 개인 레슨 선생님을 찾았는데, 발레리노 웨인 슬립(Wayne Sleep). 하지만 슬립이 한창 현역이었기에 투어와 공연이 잦아서 스케줄을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다이애너는 다른 선생님을 찾았던 듯. 다이애너는 그러나, 슬립 무용수를 선생님으로 모시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이었을 때 찰스 왕세자의 생일 파티에 깜짝 파티를 기획하면서 슬립에게 다시 연락한 다이애너. 슬립의 가디언 기고를 토대로 재구성해본 그의 말.
"웨인, 잘 지냈나요. 찰스 생일이 다가오는 데, 축하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저기, 근데 여기에서 깜짝 발레 무대를 선보이고 싶어요. 춤은...제가 추려고요. 웨인과 함께 2인무 연습하고 싶어요."
하지만 다이애너가 말한 2인무는 우리가 흔히 클래식 발레 작품에서 떠올리는 '백조의 호수' 그랑 파드되는 아니다. 아무리 다이애너라고 해도, 훼떼 32회전은 무리. 게다가 다이애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클래식은 존중하지만 동시에 틀을 깨는 걸 좋아했고, 자유를 사랑했다. 그가 제안한 건, 팝 가수 빌리 조엘이 부른 '업타운 걸(Uptown Girl)'에 맞춘 발레 안무였다.
슬립은 가디언에 말했다. "다이애너는 유머 감각이 있었고, 재미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처음엔 솔직히 우리는 같이 춤을 추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5피트 2인치(약 158cm)인데 다이애너는 5피트 11인치(약 180cm)로 키 차이가 너무 났거든요. 제가 우스꽝스러워 보일 거라고 걱정됐죠. 하지만 다이애너의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렇게 다이애너의 꿈인 슬립과의 발레 클래스와 연습은 시작됐다. 취미발레인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이애너는 어떤 레오타드를 입었을까? 구글을 다 뒤져봐도, 정확한 브랜드 및 모델 명은 나오지 않는다. 슬립은 가디언에 "다이애너는 레오타드와 레그워머를 입고 연습에 임했습니다"라고만 말했을 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건, 그가 바지 또는 스커트가 아닌, 일명 '원타(레오타드 하나만 입는 것)'차림이었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그의 일생을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 가끔 등장하는 그의 발레 연습 영상에서도 그렇다.
다이애너가 기획한 무대는 이랬다. 뮤지컬 등 공연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먼저 웨인 슬립이 홀로 무대에 등장해서 혼자 춤을 춘다. 이를 재현한 '더 크라운'에서 슬립 역할을 한 무용수는 피루엣과 통베 쿠페 줴떼로 무대를 홀로 장악한다.
그러다 객석 VIP 발코니에 찰스와 함께 앉아있던 다이애너 비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고, 뒤의 통로를 이용해 무대에 깜짝 등장. 슬립은 "다이애너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모두가 숨을 멈췄다"라고 말했다. 그럴 법도 하지. 둘은 '업타운 걸'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서 유머스러운 무대를 선보인다. 아래 스틸 사진들 참조. 영상 링크도 붙인다.
https://youtu.be/nyonTIvFBw0?si=iIahMEjtKmsypiOM
더 크라운'에선 다이애너가 혼자 발레 연습을 하는 장면이 꽤 나온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다이애너가 클래식 발레를 답답해한다는 것. 클래식 발레의 원칙은 이 드라마에선 영국 왕실의 엄격한 규정을 뜻한다. 다이애너는 클래식 발레 동작을 연습하다가도 혼자 뛰쳐나와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더 크라운'에서 발레는 다이애너가 원칙을 깨고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그리는 도구이자 영상미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슬립의 증언에 의하면 다이애너는 발레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고.
여러분이라면 어떨까. 배우자가 자신의 생일날 이런 깜짝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기쁘고 신날 것 같지만 글쎄. 찰스 왕세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더 크라운'에선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너에게 공연 후 화를 내는 걸로 그려진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너에게 "그렇게 나보다 더 튀고 싶었냐"는 요지로 버럭 하는 장면. 그들의 불화가 본격 시작하는 순간이다.
실제론? 슬립은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찰스 왕세자가 화를 냈는지는 모르지만, 눈살을 찌푸리긴 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다이애너의 신데렐라 스토리. 그 새드 엔딩은 우리 모두 잘 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다이애너 비는 세상에 없다. 그의 큰아들은 세 아이의 아버지. 찰스 왕세자는 암 투병 중이다.
그렇다. 인간사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영원한 것. 발레의 아름다움. 절대적 궁극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다이애너, RIP.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