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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걸 고친다는 용기, 발레와 인생의 열쇠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33회 프리 드 로잔 콩쿨 단상

by Sujiney

"난 항상 옳다"란 생각처럼 옳지 않은 생각이 있을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을 겸허히 인지하고, 틀리지 않았다면 안도하며 계속 정진하고, 틀렸다면 바로잡을 용기를 내고 계속 시도하는 것. 그 중요함을 매번 깨닫는 곳이 있으니, 발레 클래스다.

발레 클래스에서 지도자 선생님의 지적사항을 흔히, '코렉션(corrections)'이라 부른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준다는 뜻에서, 이만한 용어가 있을까 싶다.

성인 취미발레에선 코렉션 폭풍이 휘몰아친다. 적어도, 내가 듣는 클래스에선. 선생님들 목이 쉬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 몸도 맘도 굳은 나이에 시작한 취미발레.


완벽하게 잘하는 게 목표라기보다는, 덜 못하는 게 목표인, 적어도 나의 발레 생활에선 매번 절감한다. 내 몸은 내 맘 같지 않다는 것.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도, 실은 틀린 경우가 100에 99.3번이라는 것.


코렉션 중. 프리 드 로잔 공식 유튜브 스크린샷. Copyright Prix de Lausanne


매년 2월의 연례행사,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 발레 콩쿨은 내게 다음 생의 예고편이다. 전 세계에서 선발된 15~19세 무용수 꿈나무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


단순 경연이 아니라, 1주일의 기간 동안 기초 클래스부터 지도자들에게 코렉션을 받는 과정을 거쳐 본선 무대까지 이어진다. 프리 드 로잔을 보면 알게 된다. 코렉션의 중요함이라는 것은 취미발레에서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님을.



코렉션 중. 프리 드 로잔 공식 유튜브 스크린샷. Copyright Prix de Lausanne


이번 프리 드 로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코렉션 장면.

참가자를 특정하면, 그가 못했다는 식으로 잘못 비칠 수 있으므로, 참가자 A라고만 칭하자. 한국 학생은 아님. '라 바야데르' 중 쉐이즈 배리에이션(솔로 작품)을 택한 그는 프리 드 로잔의 지도자 선생님 앞에서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다. "잘하고 싶어!"라는 간절함이 뚝뚝.


그래서일까. 힘이 과하게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우선 애정 어린 눈길로 배리에이션을 지켜본 후, 학생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OO국가에서 왔으면 OO언어를 쓰나요?"라고 미소 지으며 물어보며 긴장을 풀어줬다.

꿈의 무대. 프리 드 로잔 공식 유튜브 스크린샷. Copyright Prix de Lausanne


그리고 해준 여러 가지 말에서 특히 강조한 것. "호흡을 잘해야 해. 지금은 조금 딱딱해 보이거든. 숨을 쉬어가면서 부드럽게 해 보자. 다시 하자." 세상 부드러운 것 같지만 역시, 발레 선생님들은 국적 불문, 호락호락하지 않다. 학생이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동작을 할 때까지 반복 또 반복.

이 학생 역시 선생님의 코렉션을 귀담아듣고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나아져갔다. 그리고 본선 무대. A의 쉐이즈는 훨씬 풍성하고 부드러웠다. 결선 진출은 하지 못했지만, A에게 있어선 이 코렉션을 받고 체화했다는 것 자체로 프리 드 로잔에서 큰 수확을 얻은 셈일 것.


Copyright Prix de Lausanne



A뿐 아니라, 모든 로잔 꿈나무들이 그러했다. 그들이 코렉션을 흡수하고, 개선하는 속도와, 그 진지함의 밀도는 놀라웠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이렇게 "내가 틀린 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 틀린 점을 애정을 갖고 찾아내 지적해 주며, 함께 개선을 하는 지도자와 함께 한다는 것. 훌륭히 성장한 발레 무용수들에겐 일종의 수행자 같은 이미지가 스며있는 까닭 아닐까.


누구의 아라베스크가 더 높은지, 누구의 밸런스가 더 오래 유지되는지, 누구의 턴 횟수가 더 많은지를 겨루는 게 아니다. 발레는 묘기가 아니라, 예술이므로. 자신이 나아질 수 있는 부분, 틀린 부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고칠 용기를 내는 것. 그게 프리 드 로잔의 묘미가 아닐까.

발레 클래스뿐 아니라 삶의 무대에서도 나는 지금까지 많이 틀렸으며, 지금도 틀리고 있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지하는 것은 옳은 길로 나아가는 초석이자 첫걸음이라는 걸, 발레는 내게 알려줬으니까.

발레를 만나 다행이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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