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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려고 하지 않아야 잘할 수 있다, 발레도 인생도.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36화: 턴, 턴 & 턴

by Sujiney

과유불급.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이 말은, 발레에서도 진리다. 잘하고야 말겠어,라는 마음도 그렇다. 잘하려고 하면 힘이 과하게 들어간다. "과한 힘은 오히려 독"이라는 말, 모든 발레 선생님들이 내게 해주시는 말. 생각해 보면 나도 참, 바보. 가뜩이나 힘든 인생인데 힘을 더 주느라 더 힘이 들어가 버리니 말이다.

이상한 건, 힘을 빼야지라고 굳게 마음을 먹어도 결국 이렇게 된다는 거다. 힘을 빼기 위해 힘을 주고 마는 사태.


우리 동네 연희동의 한 빨래방. 가끔은 이렇게 느긋하게. By Sujiney



생각해 보면, 발레 클래스뿐 아니라, 글쓰기도 그렇다. 현업 글쓰기인 기사 작성의 경우 특히. 잘 쓰고야 말겠어,라는 결의와 각오로 모니터를 마주하면, 한 글자도 못 쓰기 십상이다. 퓰리처상(은 어차피 미국 언론사만 해당하니 받을 수 없지만) 받고 말 테다, 이런 각오로 쓰려다 첫 문장만 1021번 정도 썼다 지웠다 한 적 있음.

반면, 글에 엮을 구슬을 다양하게 확보하고, 친구에게 혹은 엄마에게 들려주듯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쓴 글은 일필휘지...까지는 아니어도 훨씬 수월하다.


얄궂은 점은, 수월하게 쓴 글이 읽기에도 수월한 경우가 꽤 있다는 것. 선배들은 항상 말한다. "끌로 글을 파지 마. 어깨에 힘 빼고 써."


잘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쓰는 글은 끌로 파는 글이 되기 십상이므로. 온갖 화려한 수사로 치장한 글은 답답하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잘 부탁해. By Sujiney



발레도, 인생도 그렇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중요하다. 하지만 잘하고야 말겠다는 과도한 힘은 집착이 되기 마련이다. 나를 매주 정기적으로 봐주시는 발레선생님들의 아래 말, 우리네 인생에도 바찬가지 아닌지.

"힘을 줄 곳에 줘야 해요. 엉뚱한 곳에 힘을 주면, 정작 힘을 줘야 할 곳에 주지 못해요." (최시몬 선생님)
"힘을 너무 끙~하고 주면 긴장을 하게 되고, 그럼 해야 할 걸 못하게 돼요. 먼저, 느끼세요. 내 몸, 내 근육의 존재감을." (박정빈 선생님)


생각했었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되어야만 한다고.
아니었다. 열심히만 하면 안 된다. 물론, 일정 수준의 열심은 필요충분조건. 그러나 동시에 여유와 믿음, 즐거움도 중요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짜증을 낼 게 아니다. 이렇게 했는데 당연히 되어야 하는 일은, 발레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별로 없다.

세계적 발레 콩쿨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지난달, 한국인 발레리노로는 처음 우승한 박윤재 군의 이야기에서 배워보자. 윤재군을 인터뷰하러 가서 나눴던 질문과 답변 중, 울림이 큰 말이었다.

"저, 결선 무대에선 이상하게 안 떨렸어요. 진짜로요. 다섯 살 때부터 꿈꿔온 무대인데, 저도 이상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즐기자. 이 무대를 봐주는 관객이 즐기기 위해선 나부터 먼저 내 무대를 즐겨야 하니까."

16세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른스럽다.

쓸 수 있어 행복했던, 윤재 군 인터뷰 기사. By Sujiney


그래. 과도하게 잘하려는 마음은, 쉽지 않지만 다스려보기로 한다. 선생님들 말씀과 윤재군의 말처럼, 나를 느끼고 나를 믿고, 힘을 줄 곳엔 주되 뺄 곳엔 빼기. 그리고, 즐기기.

그럼 어느 순간 이루지 않을까. 발레 더블턴 트리플턴도, 인생의 수많은 목표도.
그때까진, 묵묵히 꾸준히, 과정을 즐기기. 어깨에 힘 빼고.

By Sujiney


※커버 사진은 알레산드라 페리. 출처는 인스타그램 Carolina Cox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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