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35회: 마네쥬
발레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발레가 유독 그렇지 않을까. 인생과 닮아 있다는 점.
골프도 축구도 클라이밍에도, 삶의 지혜는 녹아있겠지. 하지만 발레를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삼은 나로선, 발레만 한 게 없는 듯. 김기민 무용수의 #발레명언 글을 쓴 후, 그의 '해적' 알리 배리에이션 영상을 봤는데, 그중 마네쥬 스팟을 보고 떠올린 바가 있다. 올해 프리 드 로잔 발레 콩쿠르 우승자의 인터뷰에서도 느꼈던 것.
갈 곳을 봐야 그곳으로 간다,라는 것. 발레도 인생도.
미래를 설정하고 현재의 발걸음을 옮겨야, 그 미래가 나의 현재가 된다는 것.
내 인생이 지금 답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곳을 어디로 설정할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 어디로 갈지를 정해야,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잠시 드는 생각. 발레와 인생의 닮은 점.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한다.
배울수록 재미는 있는데, 하면 할수록 까다롭다.
힘들고 얄밉고 야속해지기도 한다. 울기도 하지.
그런데 놓을 수가 없다, 아름다워서.
어찌저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각한다, 나의 성장을.
이게 어찌 우리네 인생과 닮지 않아 있으랴.
다시, 마네쥬로 돌아가서.
마네쥬 manège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뜻은 이렇다.
1. 말타기, 승마
2. 승마 연습장, 조련장
3. 회전목마
회전목마라는 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 발레에선 남녀 주역이 대개의 각자의 솔로 배리에이션 무대에서 마지막 부분에 무대 전체를 원형으로 동선을 그리며 회전 또는 점프 또는 둘 다를 표현하는 하이라이트. 아래 영상을 보시면 된다.
마네쥬는 취미발레인에겐 훼떼 32회전과 함께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본진 발레조아에서 2023년 올린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 전막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중간 즈음, 18명이 동시에 피케턴으로 마네쥬를 돌았던 순간. 짜릿했다. 이때 선생님들이 해주셨던 말씀이 바로,
"지금 가는 곳을 보지 말고, 다음 스텝에 가야 할 곳을 미리 보세요!"였다.
마네쥬의 빠른 회전을 소화하며 원형 동선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선 시선 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데, 내 몸이 가는 곳을 눈이 따라가서 보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가야 할 곳을 눈이 먼저 가서 봐야 그곳으로 몸도 간다는 것.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건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미리 짚어서 바라보고, 그곳을 스팟 즉 끝까지 바라보다가 다음으로 시선을 정확하게 옮겨주는 것을 반복하는 것.
일전에 소개한 적 있는, 영국인 이자벨라 선생님도 인스타그램에서 마네쥬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It's easier when you know your directions." 어디로 갈지 방향을 알면 더 쉬워진다.
같은 이야기.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다음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는가.
속도만큼 중요한 방향성을 갖추지 않고 무작정 질주만 한다면 마네쥬 턴도, 인생도 동선이 꼬이고 넘어지게 된다. 먼저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고 가자.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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