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리하는 것의 무리함, 발레가 알려줬어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41회=발레, 순리의 미

by Sujiney

기자 질, 아니, 기자 일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일의 연속이다.

인터뷰라면 한사코 사양하겠다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1년 넘게 설득해 인터뷰를 했고,
정보가 새나올 틈이 없던 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을 "어떻게든 뚫어!"라는 불호령에 24시간 뻗치기(문 앞에서 무턱대고 기다리)를 해서 뚫었고,
"안 되는 게 어디있어?"라는 선배의 말에 "안 된다"던 취재원을 설득했다.

결국, 무리의 연속인 것이 기자라는 업의 특징이다.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 나가히사 메이 무용수. 출처 및 저작권 Chacott Instagram



여기에서 잠시, 무리(無理)의 뜻을 짚고 가자.
명사.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남.


나는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발레학원비를 결제하며, 신상 레오타드를 사고 있는 셈.



발레 백스테이지. 힘내세요... 출처 및 저작권 Dancer Diary Instagram


너무 오래 해온 탓일까. 발레 클래스에서도 무리를 하려는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발레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움에서 나온다. 보는 관점에선 말이다. 하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도 힘들어보이지 않고 쉬워보이게 추는 것이 발레다.


지상의 무거움을 천상의 가벼움을 치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각 동작의 흐름을 잘 엮고 이어내는 게 필요하다. 무리가 아닌, 순리의 아름다움이 발레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세종발레디플로마 클래스 후. By Sujiney


많은 발레 선생님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추세요." 특히 발레 특유의 시선을 쓸 때. 발레리나들의 시선을 무리해서 따라하면 결국 무리한 모습이 나오고 만다. 경험이다.


시선을 따라하려 하지 않고, 코어를 잡고 내 몸의 각 부분을 인지하고 의식하면서, 해야 할 동작을 해야 할 타이밍에 하면, 나도 모르게 그 시선이 나온다. 내 몸의 무게와 중력의 합작품으로.


꽃도 자연의 섭리이자 순리. By Sujiney


아마도 나는 이런 발레의 순리적 아름다움 때문에 발레에 더 끌리는 게 아닐까. 무리로 점철된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순리의 아름다움에 노출시킬 수 있는 게 나에겐 발레 클래스다. 잘하는 건 어렵지만, 못해도 행복하다. 이런 순리,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한 순간이므로.

무리 속 순리. 발레를 찾아서, 다행이다.

By Sujine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발레도 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