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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는 여자다(Ballet is woman)"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42회

by Sujiney

남자의 말이다. "발레는 여자다"라는 말. 화자는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 요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발레는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예술이다.
맞다. 상당히 폭력적인 말이다. 남자를 배제하는 말이어서다. 양성평등 감수성에 맞지 않는 말. 하지만 발란신이 이 말을 했던 20세기 중반엔 양성평등 감수성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천재 독재자였던 발란신에 대해선 양극단의 평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발란신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이 말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발란신(맨 왼쪽) 명언. "춤을 춘다는 그 사실외에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 출처 구글.


발레는 철저하게 여성 중심이다. 물론 21세기엔 남성 무용수들 2인의 파드되도 있고, 남성 무용수들이 일명 토슈즈, 즉 포앵트 슈즈(pointe shoes)를 신고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것. 고전 발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오데뜨/오딜('백조의 호수'), 오로라('잠자는 숲속의 미녀'), 키트리('돈키호테'), 지젤('지젤')이라는 것.


출처 유니버설발레단 인스타그램



지금이야 남성의 인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득세할 정도이지만, 사실 여권이 신장된 건 얼마 안 됐다. 정말이지, 얼마 안 됐다. 존경하는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입사했을 땐 편집국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어.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로비까지 내려가야 했지."

옛날 얘기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그 옛날이 조선시대도, 구한말도 아니고, 불과 20수년 전 이야기. 게다가 현재 판매부수 기준 탑3 종합일간지인 중앙 조선 동아일보의 역사를 통틀어 여성 편집국장이 몇 명 인지 아시는가. 단 한 명이다.

언론계뿐인가. 아니다. 언론계는 빙산의 일각일터. 요즘 가끔 버스를 타면 여성 기사님을 뵙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출처 국립발레단 인스타그램


여성이 더 각광 받아야 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기회의 운동장을 누려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 자신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어쩔 수 없이 타고난 것으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건 21세기 중에서도 4분의 1이 지난 이 시점엔 납득이 어렵다. 아니, 납득을 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어려서부터, 발레를 몰랐을 때도, 발레를 보면 뭔가 통쾌한 기분이 들곤 했다. 지금은 외려 남성 무용수들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졌으면 하는 마음. 토슈즈 발레리노들도 응원한다.



출처 및 저작권 뉴요커 the New Yorker


마지막으로, 발란신이 남긴 "발레는 여자다"라는 말의 의미와 맥락 정리.

조지 발란신의 “발레는 여성이다”라는 말은 발레에서 여성 무용수를 중심에 두고, 그녀들의 움직임과 아름다움이 발레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본 그의 미학을 반영한다. 그는 여성 무용수를 위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안무를 통해 발레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남성 무용수의 역할 축소나 성별 시각에 대한 비판도 받는다.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발레롭고 아름답기를.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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