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l'Hommage à Ludmila
"하는 사람이 열심이니, 보는 사람도 열심이어야 해." 인생 일드, '수박'에서 괴퍅하지만 멋진 여성 노교수가 하는 말이다. 교수님은 이웃의 사랑 싸움을 맨발로 뛰어나와 보면서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루드밀라 파글리에로의 '오네긴' 중 타티아나를 보면서 그 말을 떠올렸다. 무대 위에서 누군가 이렇게까지 진심을 다해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옆의 나도 진심을 다해 그 춤을 볼 의무가 있다. 발레는 보는 것도 일이다.
잠깐, 그런데 무대 옆? 맞다, 옆. '발레 슈프림 2024' 프로그램북 제작을 프로보노, 즉 보수를 받지 않고 해드렸기에 대표님이 공연 전 회차를, 때론 객석에서 때론 스테이지 옆 윙(wing)공간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파글리에로, 아니, 타티아나의 숨소리 하나, 드레스의 오간자 자락이 끌리는 사각 소리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그가, 2025년 4월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은퇴했다. 별이라는 뜻의 에뚜왈(l'Etoile), 즉 수석무용수라고 불린 그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뚜왈은 스스로 은퇴 작품을 택할 수 있다. 난 궁금했다. 그가 에뚜왈로 깜짝 승급이 되었던 작품은 '라 바야데르'의 감자티 공주. 현 발레단 예술감독인 호세 마르티네즈의 전전임자인 브리지트 르페브르가 그의 승급을 발표했을 때, 루드밀라의 눈물, 그리고 동료들의 미소는, 영롱 그 자체였다. 아래 사진. 출처 및 저작권 파리오페라발레단, images' copyright strictly belong to the Paris Opera Ballet
그런데, 그의 은퇴 무대엔 반짝이는 티아라도, 보석 가득 튀튀도, 심지어 그가 평생을 함께 한 연분홍 토슈즈도 없었다. 그가 택한 작품이 마츠 에크(Mats Ek)의 작품, '아파트(l'Appartement)'이었기 때문.
마츠 에크. 이 이름이 생소하다고 스스로가 발레 팬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무하다.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잘 기억해두자. 마츠 에크는 클래식 발레에 현대적 해석, 다양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트위스트를 넣어온 안무가다. 매튜 본 이전에 마츠 에크가 있었다. 그런 그가 17일로 만 80세를 맞았다. 그의 생일에 은퇴하기로 한 것도 루드밀라가 원한 걸까. 그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자신의 퇴단일 당일의 소식을 전하기 전에 마츠 에크에게 생일 축하와 감사 메시지를 전한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세종발레디플로마에서 처음 접했던 마츠 에크의 '지젤'은 충격과 공포였다. 우리가 아는 사랑받는 시골처녀를 에크는 공동체에서 버림받고 놀림받는 지체장애를 가진 소녀로 묘사한다. 그의 지젤은 전통적 의미로는 예쁘지 않다. 어찌보면 폭력적일 수도 있지만 끝없이 의미를 함축한 이미지의 향연 속, 에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보라.
그의 작품을 은퇴 작으로 택한 파글리에로 역시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만이 예술인가. 아니다. 어두움 역시 예술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한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웅크려 앉는 곳은,
수세식 변기.
파글리에로를 발레 슈프림 프로그램북을 위해 인터뷰했을 때, 그가 들려준 아래 말로 끝을 갈음한다.
"예술이라는 건, 일종의 여행이다. 새로운 발견을 해나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멋지게 닦아나가는 여정.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반복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아는 것 안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보면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경험은 지식의 어머니와 같다.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가다 보면 갑자기 모든 작은 디테일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건 정말이지...짜릿하다. 새로운 작품과 경험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흡수하는 것. 그렇게 흡수한 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요즘 깊이 생각한다. 이미 친숙한 것, 이미 익숙한 것을 벗어나려고도 노력한다. 내 목표는 나 자신을 가르치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더 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본다. 예술엔 끝이 정말로, 없다."
그의 앞날의 영광에도, 끝이 정말로, 없음을 확신한다.
Merci beaucoup, Ludmila.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