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했다. 독학을 시도했다가 (역시나) 작심삼일이라 고민하던 중, 학습지 스타일 시청각(20세기적 표현…) 교재를 찾았다. 바로 결제. 그렇게 이틀째 공부를 마쳤다.
일본 배우 겸 가수에 빠져 일본어를 공부할 때만 해도 주변에선 “뭐, 취재에도 도움되고, 나쁠 건 없겠네”라고 반응했지만 이번은 다들 갸우뚱이다. 왜 중국어 또는 스페인어 아닌 이탈리아어냐고, 지극히 합리적 질문을 던진다.
실은, 나도 내가 한심하다. 이탈리아어라니.
역시 덕질은 힘이 세다.
사는 데는 돈이 든다. 덕질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비합리적인 덕질의 첫걸음으로 학습지를 결제했다. 적잖은 금액을 지불했으니, 이젠 (무리해서라도) 합리화가 필요하다. 왜 이탈리아어인가.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랜 기간 이탈리아어와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고, 고집을 부려본다.
(무리한) 자기 합리화 그 첫 번째
최근 다시 탐닉하고 있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리즈 길버트는 여러 이유로 찾아온 midlife crisis를 극복하기 위해 로마행 티켓을 끊는다.
그녀가 배운 문구 중 특히 맘에 쏙 든 건 이것.
Dolce far niente.
영어론 "Sweetness of doing nothing". 즉, "무위(無爲)의 달콤함" 정도로 번역이 될까. 이탈리아 친구 (姓이 ‘스파게티’였다)가 “너네 미국인들은 쉴 줄을 몰라. 맥주 광고에서 ‘이젠 쉴 때야’라고 해야 맥주 한 짝을 사들고 와서 다 마셔버린 후 숙취로 고생이나 할 뿐이지.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말이야, 아무것도 안 하는 달콤함의 달인이라고”라고 하는 장면. ‘미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맛있는 음식들...!
코로나19만 끝나 봐라. 가능한 한 빨리 로마로 날아갈 거다. 나폴리의 마르게리따 피자부터, 밀라노의 파스타 알라 노르마, 로마의 젤라토까지 다 섭렵해야지.
(무리한) 자기 합리화 그 두 번째
이탈리아어는 찾아보니 꽤나 많은 글쟁이들이 유독 사랑하는 언어인 듯싶다. 먼저, 거장 급 중에선 마크 트웨인(1835~1910).
트웨인도 무슨 괴로운 일이 있었는지, 이탈리아로 날아가 언어도 배우고 글도 썼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 에세이가 ‘Italian Without a Master.’
한국어로는 ‘나의 이탈리아어 독학기’라고 번역되어 있다. 약 2800 단어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에세이다. 전문은 아래 링크 참조.
아예 이탈리아어로 짧지만 소설을 써낸 미국인 작가도 있다.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가 그 주인공.
예쁜데 글까지 잘 쓰는 줌파 라히리. [구글]
인터뷰이로 만나 지인이 되어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임경선 작가의 추천으로 알게 된 작가다. 그 작가의 대표작을 사들이다가,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만났다. 23개의 산문을 엮은 작품인데, 그중 두 편은 작가가 이탈리아어로 직접 집필했다.
미국인 작가가 이탈리아어로 쓴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된 버전으로 읽자니 뭔가 어색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단하지 않나. 자신이 배우는 외국어로 작품을 쓴다는 건 작가가 그 언어에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외국어 배우기의 4단계 순서는 듣기-말하기-읽기-쓰기다. 학부 때 영어교육을 전공하면서 배웠던 내용. 그중 쓰기까지 할 수 있다면, 그 언어는 마스터했다고 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런 점에서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 일가를 이뤘다. (근데 솔직히 그 작품들이 다른 거에 비해 재미가 덜했던 건 나뿐일까?)
하긴, 외국어로 불멸의 작품을 써낸 작가들은 여럿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남긴 『롤리타』 역시 작가가 모국어인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집필했다.
그런 경지에까지 오르려면, 역시나 최고의 재료는 애정이다. 영어가 원수 덩어리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를 단순히 학습 또는 심지어 정복하려고 해서다. 잘하려면 좋아하면 된다. 좋아하면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모든 것을 주게 된다. 그렇게 외국어를 공부하게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다시 소환하는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의 다음 대사처럼.
“If I love you, you can have everything. You can have my time, my devotion, (중략) my family, my dog, my dog’s money, my dog’s time – everything.”
이탈리아를 사랑한 또 한 명의 유명 작가 중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집필한 노라 에프런(Nora Ephron)도 있다. 그는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남편과 해로했다. 그 남편이 이탈리아계였다. 에프런의 명언 중엔 이런 게 나온다.
“The secret to life? Marry an Italian.”
우울할 때마다 꺼내읽는 에프런의 에세이집들. 런던 출장 때 일 끝내고 하이드파크 카페에서 이 책 읽던 기억. 다시 그런 날들이 오기는 할까. 반드시 오기를. By SJ
(무리한) 자기 합리화 그 세 번째 (&마지막)
이탈리아어를 배우면 내 글쓰기가 더 좋아질 것 같다. 외국어 학습은 모국어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서도 좋은 양념이 된다. 개인적 체험으로 내린 결론.
몰개성이 기본 조건인 스트 기사(‘스트레이트’의 약자) 및 박스(해설) 기사를 쓸 땐 빼고. 국제선 비행기는 입사 후 첫 휴가 때 타봤을 뿐이지만, 영어신문에서 10년 가까이 영어로 글을 써온 터라, 나도 모르게 영어식 표현이 내 피 안에 녹아있을 터다. 한국어가 뼈대라면 영어는 피와 살이랄까.
칼럼이라면 얘기가 살짝 달라진다. 영어식 표현을 한국어로 비틀어 칼럼을 쓴 적도 있다. 이런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영어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를 비교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뜻하는 숙어인 “compare apples and oranges”에서 가져온 표현.
외국어 공부는 즐겁게 하면 된다. AI가 아닌 이상, 모든 단어와 표현을 아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몰라서 즐거운 것, 그게 외국어다. 위에서 언급한 줌파 라히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단어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몰라서 재미있는 것, 그게 외국어 공부다. 그냥, 즐기자. ‘덕질’이란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