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vs 프랑스 feat. 테스오빠

덕질로 외국어 공부, 24번째 브런치

by Sujiney

“Show. Don’t tell.”


미국인 에디터 B가 자주 했던 말이다. 독자에게 설명을 하려 들지 말고, 독자를 그 장면으로 끌고 들어가라는 것. B와는 쿵짝이 잘 맞지 않았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게 (속된 말로) 꼴 보기 싫었고, 노무현과 노태우를 헷갈리면서 “So what?”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제일 싫었던 건 B가 서울에 있는 3년 동안 ‘가나다라’도 익히지 않으면서 아주 잘 지냈다는 사실. 다들 자기에게 영어를 하고 싶어 하면서 잘해주는데 내가 왜 한국어를 배워?라는 멘탈. 어우 얄미워.


한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하려면 1) 그 언어로 원어민을 웃길 수 있어야 하고 2)그 언어로 원어민과 말싸움을 해서 이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B와 자주 싸우면서 영어 실력이 좀 더 좋아졌던 거 같다. 고마울 지경이군.


B는 싫었지만 맨 위에 적었던 말만큼은, 좋았다. 나처럼 성격이 더티한 독자의 경우, 저자가 테스오빠 (나훈아의 그 ‘테스’형) 혹은 뉴욕타임스의 여걸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 정도 되지 않으면 가르치려 드는 글은 딱 질색이다. 나같이 까칠한 독자는 질질 끌고 오면 안 된다. 내 이야기에 푹 빠지도록 유혹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각설하고. B가 생각난 건 넷플O스에서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를 보면서다. 미국 중에서도 가장 미국다운 도시 중 하나인 시카고의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의기양양한 20대 여성 에밀리는 급작스레 프랑스 파리에서 1년간 일을 하게 된다. 프랑스어라곤 아베쎄데(ABCD) 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그가 프랑스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곡절 끝에 마음을 얻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운다는 것, 이게 대략의 줄거리를 이루는 토대다. 물론 중간중간 buttery한 로맨스도 빠뜨릴 수 없지.


넷플릭스 캡처. '하녀방(La chambre de bonne)'이라도 좋다. 이런 뷰라면.


American in Paris 라는 컨셉트는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tried and trusted, 즉 시도도 많이 되고 (성공을 했기에) 믿고 쓴다는 주제다. 2000년대 초를 풍미했던 Sex and the City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했던 후반부 에피소드 중 하나도 American Girl in Paris 였다. 여주 캐리가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러시아인 예술가 남친을 따라, 일을 포기하고 파리로 간다는 거.


미국을 두고 자주 나오는 표현엔 the land of plenty(풍요의 나라)라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역사가 짧다는 걸 슬쩍 비꼬는 a young country 또는 세련되지 못했다는 뜻으로 rough around the edges(조금 거칠다는 것) 등이 있다. 미국이 유럽의 풍성한 문화와 역사를 부러워하며 갖는 모종의 열등감 (그러면서 우리가 돈은 더 많고 더 잘 나가!라는 우월감과 짬뽕이 되어 복잡하다)은 아마 영원하지 않을까. 캐리 언니 사만다 언니 미란다 언니 그리워요!


그래서 처음엔 이 드라마, 뻔할 것 같아 건너뛰려고 했다. 내 사랑 이탈리아 배우 미켈레 모로네(Michele Morrone, 어제 30세 생일 축하해!) 덕질만 하기에도 365일 24시간이 모자라니까.


Miki, tanti auguri a te! 오래오래 살아야 하니까 누나 말 듣고 담배는 좀 줄이장♡. [Guess 유튜브 캡처]


게다가 이쯤 되면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이미 이탈리아에 귀의하기로 결심한 몸이니 고교 시절 로망이었던 프랑스는 잠시 뒤로 한 상태다. 이탈리아에 대한 정절을 지켜야 하고 말고, 암.


근데, 어젯밤 싸랑하는 J언니가 “이거 꼭 봐”라고 톡을 보냈고, 난 바로 ‘내가 찜한 콘텐츠’에 ‘Emily in Paris’를 추가. J언니가 추천하는 건 틀림이 없다. 이번 역시 bingo 였다.


대런 스타. 반가워요! 넷플릭스 캡처.


켜자마자 이런 화면이. Created and Written by Darren Star 다. Sex and the city의 찐 팬이라면 이 이름, 모를 수 없다. 캐리와 사만다, 미랜다, 샬럿을 만들어낸 제작자가 대런 스타이니까.


덕질로 외국어 공부하기 편에서 잠시 설명했지만, 넷플릭스 정주행의 죄책감을 외국어 공부로 승화하려면 영어 자막을 켜고, 때론 반복을 해가며 듣는 게 좋다. 외국어 공부는 이재용이나 재러드 쿠슈너나 철수나 영희나 다 마찬가지다. 무조건 반복이 최고.


여주 에밀리를 보면서 나는 에디터 B를 떠올렸다. 에밀리는 아무리 급작스럽다고 해도, 프랑스어를 제대로 공부조차 하지 않고 파리에 일을 하러 온다. 그 사실에 죄책감도 별로 없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건 죄다. 에밀리를 대하는 동료의 태도는 대놓고 차갑다. 당신은 누구 편? 개인적으론 100% 프랑스 동료의 편이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게 잘못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 태어났을 뿐이면서, 영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condescending(하대하는 듯,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한 태도는 잘못이다. 자기는 영어밖에 할 줄 모르면서 잘난 척은. 거기에 괜히 주눅 드는 비영어권 사람들도 솔직히 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왼쪽이 Sylvie 오른쪽이 Emily. 패션이 확 다르다. 넷플릭스 캡처.


만약 에밀리가 서울에 왔다면? Emily in Seoul이라면 에밀리는 한국어 따위 배우지 않아도 됐을 거다. 솔직해지자. 한국에선 영어 쓰는 코카서스계 외국인은 일종의 특권을 누리지 않나. 우리와 같은 인종이거나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 계열이라면 일종의 무시를 하는 게 우리다.


에밀리의 프랑스 동료들은 다르다. 짓궂을 정도로 에밀리를 따돌린다. 나도 참 못됐지. 나는 동료들이 맞는 거 같다. 솔직히 나라도 그렇게 할 거 같다. 미국인이면서 프랑스어도 못하고, 목소리는 너무 크고(한국인들도 이건 마찬가지), 파리에 왔다고 에펠탑이 총천연색으로 프린트된 블라우스를 입고 활개를 친다. 반면 프랑스인 상사인 실비는 항상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되, 세련되고 은근한 테일러링으로 멋을 낸다. 해외 보그지에 가끔 나오는 표현대로 effortless chic, 우리말로 하면 꾸안꾸(꾸미지 않은 듯하게 꾸민) 스타일이랄까.


Sylvie가 하는 말.

You don’t even bother to learn the language. You treat the city like it’s your amusement park.

넷플릭스 캡처.


재수는 없지만 멋은 있다. 나는 왜 B에게 이렇게 말해주지 못했을까.


에밀리가 왕따를 당하고 혼밥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친구, 한국계 중국인 민디는 이렇게 말한다.

Paris is the most exciting city in the world. But the people…so mean. Chinese people are mean behind your back. But the French people, they are mean to your face.

중국인들은 뒤에서 뒷담화를 하는데, 프랑스인들은 앞담화를 한다는 정도로 의역할 수 있겠다.


민디(오른쪽)의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설정, 흥미롭다. 넷플릭스 캡처.


이런 말도 맘에 든다. 프랑스인 동료가 에밀리에게 “너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라며 하는 말.

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

너네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지. 우리 프랑스인들은 살기 위해 일해.


한국인은 말해 뭣해. 당연히 전자다. 짧은 인생 일만 하다 소진되면 안 될 일.


여기에서 갑자기 나는 오스카 와일드가 떠오른다.


"To live is the rarest thing. Most people just exist. That’s all."

산다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뿐.


당신은 살고 있는가, 존재하고 있는가?




Back to 에밀리. 이 드라마에 완전히 빠지게 된 순간이 온다.


프랑스어도 그렇고 이탈리아어도 그렇고,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있다. 동료들 등쌀에 못 이겨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에밀리가 어느 날 업무 때문에 여성의 질을 의미하는 vagina가 le vagin, 즉 남성형인 걸 알게 된 것. Political correctness로 똘똘 뭉친 신세대 미국 여성 에밀리에겐 말도 안 되는 일. 실비는 Maybe it’s because women own it and men possess it이라고 눙치지만 에밀리는 “말도 안 돼!”라며 인스타 피드를 올린다.



카메라는 엘리제궁(우리로 따지면 청와대)으로 급 이동.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고교 선생님이자 현 영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의 뒷모습이 나오고. 그녀의 스마트폰에 알람이 뜨는데, 송신자가 무려 카를라 브루니. 전 영부인인 카를라 브루니가 “브리지트, 이거 꼭 봐야 해”라면서 그 인스타를 보내준 거다. 물론 픽션. 근데 또, 네버에버 없을 일은 또 아니다. 이 멋진 두 언니라면 핍진성과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그 인스타를 리트윗한다. “Exactement!”(Exactly!)라는 동감의 말과 함께.


한국이라면 가능한 설정일까. 나이대가 있는 여성의 성관계를 돕기 위한 제품을 선전하면서 “질이 어떻게 남성형일 수 있어!”라는 듣보잡 마케터의 인스타를 전 영부인이 현 영부인에게 추천하고, 현 영부인은 그걸 리트윗? 한국에서 이거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 한국에선 청와대가 나서서 고소고발하지 않으면 다행일세. 쏘쿨 베리 쿨 투쿨 and very, very French.


사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면서 나도 에밀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던 중이다. 아니 왜 crisi(위기)라는 명사는 여성이지? ‘낮’을 뜻하는 giorno가 남성형인데 ‘밤’인 notte는 여성형이라니, 이렇게 typical 해서야 이탈리아어도 별 거 없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도 passione (열정)이나 azione (행동)이 여성형인 건 좀 맘에 들기도 하고.


이탈리아어, 어렵지만 재미있다. 남성 여성 이런 구분은 영원할까? 궁금. 악필인 거 다 들통나는군. By SJ


고백한다. 슬그머니, 아래와 같은 구글링을 해보았다.

Learning French in Paris, intensive course.


각종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온다. 물론 현재는 악랄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홀드된 상태이지만 내년 후반부에서부턴 가능할 것 같다는 팁들도 나온다.


자본주의의 몇 안 되는 장점이 뭔가.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거.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은 안 되겠지만. 구글 캡처.


이래 봬도 고교 시절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프랑스인이었던 Jacques 선생님에게 “불어 예쁘게 한다. 전공해봐라”고 칭찬도 들었는데. 엄마 책상에 소중히 꽂혀있던 김화영 불문학과 교수님의 프로방스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랐는데. 불문학과도 합격했지만 먹고 사는덴 영어가 나을 것 같아 영어 전공을 택했는데. 이제라도 프랑스어 다시 배워볼까나. 이래서야 이탈리아에 대한 정조는커녕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서 길을 잃을 판. 이놈의 팔랑귀.


하지만, 존경하는 박세리 언니께서 ‘나 혼자 산다’에서 말씀하셨다. 로제 떡볶이와 국물 떡볶이 중 뭘 고를지 모르겠다면 그냥, 둘 다 시켜!


떡볶이 갑툭튀 비유가 좀 거시기하지만, 그래서 나도 결정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둘 다 정한다. 구글링으로 찍어뒀던 이탈리아 Barolo 지역에서의 와이너리 스테이도 찾아두었고.


1년은 아무래도 너무 짧을 것 같다. 4월쯤 출발해 한 달은 교토에서 벚꽃비를 맞으며 지내고, 5월에 파리+프로방스 코스로 3달, 그 뒤는 이탈리아로 가면 어떨까.


존경하는 오드리 헵번의 명언도 있다.

Paris is always a good idea.


무슨 일이 있어도, 파리는 파리일 거라는, 에어프랑스의 광고 피드. 인스타그램 캡처


그나저나 에밀리에게 프랑스의 (남자) 상사가 해주는 팁은 이렇다.


You need to find yourself a nice French boyfriend. It’s the best way to learn the language.


개인적 경험으론 동의하기 어렵다. 외국어는 동성에게 배우는 게 낫다. 남성과 여성의 말엔 차별이 아닌 구별이 있으니까. 매력적인 여성의 프랑스어는 카를라 브루니 또는 브리지트 마크롱, 샬럿 갱스부르, 화니 아르당 등에게 배우면 된다. 미투 운동을 반대하면서 남자들의 성희롱을 정당화하는데 앞장선 까뜨린느 드뇌브는 제외.


일본어로 따지자면 개인적으론 여배우 중에서 마츠시마 나나코(松嶋菜々子) 또는 스즈키 교카(鈴木京香)를 추천. ‘수박’ ‘안경’ 카모메 식당’ 등에 나온 고바야시 사토미(小林聡美)도 좋다. 여성적이고 똑 부러진 말투는 마츠시마, 어른스러운 여성의 우아한 발음은 스즈키, 건조하지만 적확한 말하기는 고바야시.


영화 '카모메 식당' 공식 스틸컷 중 하나. 고바야시 사토미(가운데)는 영화감독 미타니 코키와 2011년 이혼하면서 "서로를 더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 주 글은 유난히 장황했다. 사과드린다. 이게 다 옆자리 남자 때문이라고, 비겁하게 변명을 해본다.


앉고 보니 내 첫사랑과 너무 닮았던 그 남자. 3시간 동안 그 남자 때문에 썼다 지웠다를 얼마나 반복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필 화장 1도 안 하고 온 날 재회하는 건가, 내가 먼저 말 걸어 볼까, 네가 감독한 드라마 대박 난 거 축하해라고 할까 아니면 드라이하게 잘 지냈어라고 해볼까. 결국 3시간 동안 글도 못쓰고 말도 못 붙였는데 그가 일어섰다. 닮았지만 그 애는 아니었다. 안도감도 들면서도 뭔가 아쉬운 이 기분. 그리운 건 아닌데, 궁금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이렇게 동요하는구나. 그런 사람을 가졌기에 할머니가 돼서 와인 낮술 할때도 심심하지는 않겠네. 다행이야.


어 잠깐. 이런 way of thinking, 좀 French 스럽지 않나ㅋ


다음 주엔 그 카페 안 갈 작정이니, 깔끔한 글쓰기로 돌아오겠다. 미국인 에디터 B와 친구는 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말, “Show. Don’t tell”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만나요, 제발.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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