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feat. 환불원정대

놀면서 외국어 by SJ 27번째

by Sujiney


브런치 없는 한 주를 보냈다. 브런치에 글을 처음으로 쓴 뒤, 26주간을 매주 빠짐없이 글 하나씩은 올리자고 다짐했건만.

안 썼던 건 아니다. 썼는데 내 편협함이 과도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고민 끝에 대폭 고쳤다. 이렇게.



한국인이어서 자랑스러운 요즘이다.


K방역 때문에? God no.

BTS 때문에? Perhaps.


한국 여자여서 다행, 이라는 생각이 진실로 오랜만에 든 것, 이 여자들 덕이다.

환불원정대. The Refund S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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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데뷔곡 ‘Don’t Touch Me’는 적어도 내게는 2020년 최고의 명곡이다. 가사를 보자.


세 보인대 어쩔래 // (중략) 불편한 말들이 또 선을 넘어 /난 또 보란 듯 해내서 보여줘 버려 // 나도 사랑을 원해 /나도 평화가 편해 // 하지만 모두가 자꾸 건드리네 don't touch me // 내 멋대로 해 // (중략) 괜찮아 걱정 마 So good 난 즐거워 / 몇 살을 먹는대도 절대로 난 안 꿀리는 걸 // 따라 하고 싶지 않아 / Wanna be original // 남의 눈치 보지 않아 // (중략) 어디 와서 싸구려를 팔아 / 참지 않아 you don't want no problems // 맘대로 맘대로 hey / 누가 뭐래도 나대로 hey / 내가 문제라면 답 없지 // (중략) 때론 눈물이 쏟아지기도 해 / 결국 날 만든 게 눈물이기도 해 익숙해 / 남들 신경 쓰지 마 절대로 / Never never 누가 뭐래도 멈추지 마


https://www.youtube.com/watch?v=mLxd2eU9L8o


일본과 중국의 대중음악계에선 나오기 어려운 가사와 음악, 퍼포먼스다. 한국이라고 젠더 사정이 더 나은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숨통이 대중문화계에서 트일 수 있다는 건 blessing이다. 물론 일본과 중국에도 gender conscious 한 음악들은 있겠지. 하지만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 민영방송인 TBS가 대표 간판 음악 프로그램 뮤직 스테이션에서 위와 같은 가사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라는 데 500원.


이 노래의 진짜 보석은 가사가 아닐까. 어쩜 내가 수십 년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아오면서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을 쏙쏙 빼냈는지 감탄스럽다.


나도 평화가 편한데 자꾸 욱하도록 건드리는 상황들. 차고 넘친다.

며칠 전.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녁 자리에 늦었다. 그렇잖아도 "나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라며 온갖 자괴감에 자리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사회적 지위가 높으신 분의 표정이 안 좋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대학생 때 학교 근처에 여자애들이 짧은 치마 입고 서빙하던 데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럼 그런 곳으로 가시던지요.


그 하루 전엔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업계 타사 남자 선배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SJ기자님이 영어 좀 하잖아요? 우린 그냥 가만히 있을게. 얘기를 좀 끌어가 주셔. 우리가 이 나이 돼서 질문 같은 걸 해야겠나."


그럼 그냥, 집에 가서 쉬세요.


여기까지 적고 생각한다.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 것은 뭘까.




결국 나는, 한국 남자 중 특정 그룹이 싫다고 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을 하며, 자기들이 절대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 이런 남자들은 대개, 자기를 찬양해주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매력은 거의 없고, 돈은 좀 있고 자만심은 하늘을 찌른다. 근데 왜 쓰기가 힘들까.


그런 이야기는 팔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적어도 절반 이상은 한국 남자가 독자일 이 글에서. 난 한국 남자가 싫어요,라고 쓰는 건 나같이 드센 여자에게도 무서운 일이다.


그럼에도 쓸 수밖에.


자꾸 불편한 말들을 해서 선을 넘는 이들. 나더러 자꾸 “그렇게 세면 안 된다”고 타이르는, 남성 중심 사회에 길들여져서 그들의 기수 노릇을 하는 여성들. “그래도 네가 참아야지”라던가 “원래부터 그냥 그런 거야”라는 사람들.


불행 중 다행으로, 모든 남자가 다 남성 oriented 되어 있진 않다. 그렇지 않은 멋진 남성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걸 가사 일을 '돕는' 것이라 표현하고, 자신보다 경력이 긴 와이프가 자신보다 적은 월급을 받는 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자신의 아들이 동급생 딸보다 성적이 나쁘면 분하게 생각할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결국은 대다수의 마초적인 남자들과 그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혜택을 받고 있는 여자들이 만든 말.


웃긴 것. 난 남자가 좋다. 귀엽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남자는 정말 소중한 존재다. 별로 없어서 문제지. 모든 남자를 villify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남자가 얼마나 훌륭할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건데.




갑자기 떠오르는 도발적 제목의 이 책.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의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예전에 ‘한국인은 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을 때도, 활용했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7726601


개인적으론 제목에 반대한다. 남자는 필요하다. 전구를 갈고 커튼봉을 달 때 필요한 게 아니라 (솔직히 그런 건 여자들이 더 잘한다), 남자라는 존재엔 대개의 경우,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다. 여자는 솔직히 남자 없어도 잘 사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주변에도 보면 혼자여도, 아니, 혼자여서 멋진 여성이 참 많다. 그 반대는? 글쎄. 남자가 혼자여도 멋있으려면 돈과 시간뿐 아니라 센스까지 옵션 아닌 필수다.


그런 남자가 별로 없어서 문제지.




얘기가 길어져서 더 지루해지기 전에, 이번 주는 그냥 여기에서 끝내야겠다. 환불원정대의 노래나 다시 무한 반복해야지. 퍼텐트 레더, 일명 반짝이 가죽, 의상도 사고 싶다.


환불원정대도 있지만 그전에 이 노래도 있었음을 기억하자.


MissA의 ‘Bad Girl Good Girl.’

앞에선 한마디도 못하더니 뒤에선 내 얘길 안 좋게 해 / 어이가 없어 // 나 같은 여잔 처음으로 본 것 같은데 왜 나를 판단하니 내가 혹시 두려운 거니 // (중략)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 춤출 땐 bad girl 사랑은 good girl /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 “이런 옷 이런 머리 모양으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해” / 네가 더 뻔해 / 자신 없으면 저 뒤로 뒤로 뒤로 / 물러서면 되지 왜 자꾸 떠드니 네 속이 훤히 보이는 건 아니

(날 감당) 할 수 있는 남잘 찾아요 진짜 남자를 찾아요
(말로만) 남자다운 척할 남자 말고
(날 불안)해 하지 않을 남잔 없나요 자신감이 넘쳐서
내가 나일 수 있게 자유롭게 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https://www.youtube.com/watch?v=8TeeJvcBdLA


이제 그냥 접고 다시 시작해야지. 이탈리아어 공부와 투스카니 지역 부동산 서치.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해. [Michele Morrone 인스타그램]


다음 주도 열심히 숨 쉬며 살아내자.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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