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좌천도 몇 번 겪어보고 지나고보니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겪은 좌천의 경험은 일천하기 그지없습니다. 부족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연말 인사철에 괴로움의 쓴 잔을 들이켜고 계실 많은 분들께 조용하지만 강렬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This too shall pass. 이또한 지나가리라. 또 온다는 건 안 비밀
어린 시절의 달콤함. 얘들아 이거 다 예쁜 뻥이야 라고 쓰면 안되겠지. [사진 라플란드마을 홈페이지]
나이가 들수록 연말은 반갑지 않죠.
어렸을 땐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한 행복의 시간이었건만. 그건 롱롱 타임 어고우. 연말은 생업 전선에 있는 대부분의 이들에겐 연말 인사와 고과, 그리고 (있다면) 연말 인센티브의 시간입니다. 인사 방이 붙는 날을 앞두고, 그 당일, 그 이후 며칠간은 온 신경이 바짝 곤두서죠. 웃는 이만큼, 아니 그 이상의 우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웃어도 내일 울 수 있는 게 조직 생활이죠. 영전도 때로는 순전히 운일 수 있음을 – 물론 그 운도 능력이라지만요 – 되새겨야 할 것 같다고 써야할 것만 같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 동안 약 5번의 좌천을 경험했습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제 인사권자라고 해도 똑같이 했을 거라고 생각되는 좌천이 과반이 넘네요. 노파심에 미리 적어두지만 이건 제 회사 뒷담화가 아닙니다. 차라리 제 앞담화(?)에 가깝죠. 회사에게 많은 걸 배웠고 또 얻은 건 행운입니다. 어디서 라떼 냄새 안 나요?
일본 웹 검색을 했더니 이런 망가가...ㅋ 제목인즉슨 '좌천도 나쁘지는 않아'. [구글 재팬]
각설하고, 백 투 더 좌천 스토리.
당시엔 '넘어간 김에 쉬어가라', 는 주변의 위로도 솔직히 귀에 안 들어왔습니다 너나 쉬세요.
제 생의 가장 큰 좌천을 겪었던 때는 좀 다르더군요. 방이 붙은 날, 저는 묵묵히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몸을 다스려서 마음을 다스려야지, 뭐 이런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무도 불러주지를 않았어요.
집에 바로 들어가기는 싫고, 갈 곳이 발레 스튜디오밖에는 없었죠. 그 정도로 왕따 인사였습니다. 당시는 정규 인사 시즌도 아니었고, 일간지에서 갑자기 월간지로 저만 혼자 보내는, 그야말로 핀셋 인사였거든요. 나름 핵심 출입처를 맡고 있다가 돌연 아무런 특정한 일도 담당하지 않는 월간지로 보내진 거죠. 건물도 달랐기에 말 그대로 짐을 빼야 했습니다. 비참하더군요. 당시 인사권자가 저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신 게 이유였는데요. 그렇다고 그분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말이죠.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제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후벼팠던 건, 그 분이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 톱10 중 하나였다는 것. 지금도 그분의 글은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나저나...
핀셋 좌천.
굴욕이죠.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 직원은 넘 고소했나봐요. 제 딋담화 문자를 실수로 제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답장은 깔끔하게.
잘못 보내셨습니다.
덕분에 명확해졌죠.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평생 볼 친구와 그렇지 않은 지인의 경계가.
생각해보면외려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매일 새벽 혹시나 물 먹은 게 없나 가슴을 두근두근하며 보던 조간의 사이클, 실제로 물을 먹으면 어김없이 떨어지던 불호령, 취재원에게 뭐라도 하나 더 들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루틴에서도 멀어진 게 말이죠. 그런 루틴, 물론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지금 권력을 잡은 분이 제가 싫다는 데. 일단 그냥 찌그러져 있자,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와우,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좌천 와중에 미국 워싱턴D.C.에서 본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지금 보니 해피 좌천 투 유? By SJ
월간지는 한 달에 1주일은 거의 빈사 상태로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합니다. 일간지에서 하루에 많으면 2500자의 글을 썼다면, 월간지에선 한 달에 약 2만자 가량의 글을 세 꼭지 정도 쓰죠. 그랬더니 호흡이 긴 글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됐습니다. 일간지에서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땐 만약 4~5000자 전면 기사가 잡히면 “이 긴 글을 어떻게 쓰나”라는 걱정이 앞섰거든요. 월급은 그대로인데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니, 이건 어찌 보면 횡재 아닐까요.
여기에다, 일간지의 바쁜 사이클에선 누릴 수 없었던 이점도 얻었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매년 각 동맹국에서 10명 이내의 인원을 특정 주제로 뽑아 미국 내 연수를 4주 동안 보내주는 게 있습니다. 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IVLP)이라는 건데요, 영국에선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대표적 alumna입니다. 일간지라면 4주를 빠지고 연수를 간다? 언감생심 불가능이죠. 돌아오면 제 책상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월간지에선, 게다가 다들 저를 좌천당한 뒤 희망도 끈도 없는 가여운 자로 여기는 때였던 터라,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7년 IVLP 장학생이 되어 무료로, 워싱턴 DC부터 켄터키주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를 누비며 미국을 동에서 서로 횡단했습니다. 미국 재무부 대북제재 담당 핵심 관료들을 직접 만나고, 케네디센터에선 꿈꾸던 공연을 보고, 켄터키주에선 최고의 위스키를 맛보았습니다. 미국 국민의 혈세로 말이죠. 눈누난나~
IVLP 연수생으로 방문했던 미국 재무부. By SJ
물론 연수만 받고 맘 편히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계속 “날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신호는 일간지 선배들에게 보냈죠. 죽으란 법은 없습니다. 기명칼럼 기회도 감사히 계속 주셔서 3주에 한 번씩 썼고, 때가 되면 일간지 선후배들에게 안부 톡이며 연락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인사철, 새로 長이 되실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슬슬 돌아올 때 됐지? 준비해.”
그냥 운이 좋았을 뿐 아니냐고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이 스토리는 어떠신가요. 자세한 내역은 사랑하고 감사하는 제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모종의 오해로 인해 저에게 전 회사 경영팀의 신임 부장이 부당한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수당을 부당 착복했다는 요지였는데요.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었던 저는 감정부터 터뜨렸습니다. 회사가 어쩜 제게 이럴 수 있냐고 말이죠.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건 회사의 생각이나 방침이 아니라 그 신임 부장의 개인적 판단이었던 건데 말이죠. 그때 제가 길길이 날뛰었던 모습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아직도 귀가 빨개지네요.
재미있는 건, 그해 연말입니다. 저를 오해했던 그 부장과 저는 똑같이 그러나 다른 이유로 표창장을 받았죠. 그 부장도 나름의 입장에선 경영 미스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 겁니다. 저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었던 거죠. 그래도 다시 만나고 싶진 않음
좌천 또는 팽을 당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건, 조직 생활자에겐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전화위복으로 삼는 건 나름의 능력인 것 같아요. 그냥 너무 힘들 땐 아래 드라마를 보시면 어떨까요?
일본 드라마 ‘집단 좌천’입니다.
국내에선 채널J에서 방영됐고, 다시보기도 제공하고 있네요. 좌천당한 은행원들의 고군분투기입니다. '한자와 나오키'와 같은 부류의 일본 특유 은행 드라마 특성상 빡빡할 정도로 강강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도 있죠.
제 하찮은 이야기 외에도, 조직 무림 고수들에겐 수많은 좌천과 부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난 척 따위 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회사도, 세상도 없습니다. 나를 소중히 하는 법을 배워보라고 세상이 준 시간, 그게 좌천의 시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