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외국어 공부를 가장한 넷플릭스 리뷰 38번째 브런치 by SJ

by Sujiney

꼭 7년 전 이맘때, 김연아 선수가 울었다.

2011년 2월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의 여성 피겨 마지막 무대.


모두가 김 선수의 금빛 은퇴를 기정 사실화했지만 금메달은 개최국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의 목에 걸렸다. 입으론 간신히 웃고 있었지만 눈에선 눈물이 주룩주룩. 우리도 다 울었더랬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가있던 나도 그랬다.


김연아 선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게 개인적으론 기자 된 보람이자 기쁨이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분투했던 그에게 “IOC 프레젠테이션 힘들었겠다”라고 인사를 건넸다가 그가 특유의 당찬 표정으로 “(오래 서있었더니) 발을 잘라버리고 싶더라고요” 농담을 했던 때는 잊을 수 없음.


김연아 선수의 소치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 [IOC 올림픽 유튜브 공식 계정 캡처]


매년 2월 말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김연아 선수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넷플릭스에서 피겨 스케이팅 작품을 발굴(?)했을 때는 어찌나 반갑던지.


‘스핀 아웃(원제: Spinning Out).’


'스핀 아웃' 메인 화면 캡처. [넷플릭스]


한때 잘 나가던 피겨 스케이터인 캣(카야 스코델라리오♡)이 경기에서 넘어진 트라우마로 고생하다 페어로 새 출발 하면서 또 겪는 우여곡절 얘기다. 캣의 엄마인 캐럴(잘 나갔던 스케이터였지만 캣을 임신하면서 경단녀가 된다), 여동생 세리나(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이지만 엄마와 언니에게 치여 힘들어한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다.


프로 스케이터들이 대역으로 투입되긴 했지만 실제 배우들도 열연한 스케이팅 장면은 보너스. 전직 피겨 스케이터였던 사만다 스트래튼이 만들어낸 작품이니 스케이팅 장면의 완성도만큼은 10점 만점에 10점.


'스핀 아웃' 미국판의 공식 포스터. [넷플릭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1월 공개됐지만 기대가 과했던 탓일까. 반응은 반반이었다. 결국 Mixed reviews 끝에 시즌1로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게 미국 뉴스위크의 지난해 2월 보도다. 팬들이 시즌2 제작 청원을 했다는 내용이 골자였지만 그런 일은 없는 듯.


10회까지 찬찬히 다 보다 보면 사실, 수긍은 간다. 시즌2가 왜 취소됐는지. 5회로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캣과 엄마 캐럴이 벌이는 갈등이 버겁다. 둘 모두 bipolar disorder 즉 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전개되는 상황들이 과한 면이 없지 않다.


소치 겨울올림픽 현장에서 구매했던 기념품. 금메달 모양 초콜릿이다. [by SJ]

그러나 그럼에도 새벽 3시까지 이 시리즈를 binge watching(내리 보기) 한 이유. 이런 대사들 덕분이다.


“It’s all about the long game.”

피겨의 쇼트/롱 프로그램에 빗댄 표현이기도 하지만, 의역하자면 “중요한 건 인생은 장기전이라는 거야” 정도가 될 듯. 캣의 엄마가 캣에게 해주는 조언.


“Sometimes you have to forgive the rest of the world for not being so perfect.”

캣의 남자 친구이자 페어 파트너의 대사 to (부자) 아버지. “때론 완벽하지 않아도 용서를 할 필요가 있어요.” 캣이 정신적으론 문제가 있을 수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씀 되시겠다.



그 외에도 캣의 절친인 젠의 좌절 스토리도 인상적. 올림픽 메달만을 꿈꾸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연습에 매진했지만 부상으로 더 이상은 스케이트를 탈 수 없게 된 젠. 배경음악의 가사가 그의 맘을 대변한다.


“Don’t wanna pretend it’s okay when it’s not.”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싶진 않아.”


"산산조각 난 엉덩이뼈와 산산조각 난 꿈을 위해 건배"라는 젠. [넷플릭스 캡처]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평범한 즐거움을 포기하고 혹독한 훈련을 소화해내야 하는 선수들. 김연아 선수를 포함해 모든 선수들에게 경외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쯤에서 살짝 궁금해진다. 김연아 선수는 ‘스핀 아웃’을 봤을까. 조심스럽지만, 보지 않았을까에 한 표. 김 선수의 절친 중 한 명이자, 소치 올림픽에서 “소트니코바는 홈그라운드 이점 때문에 금메달을 땄을 뿐,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는 김연아”라고 열변을 토했던 남자 스케이터 조니 위어가 출연하니까. 조니 위어는 주인공 페어의 경쟁자로 출연해 아주 진짜 약간은 잔망스럽지만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


조니 위어(오른쪽). 그의 점프와 스핀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스핀 아웃'은 볼만하다. [넷플릭스 캡처]


김연아 선수가 동감할 만한 대사도 있다. 캣의 코치이자 올림픽 챔피언 출신인 러시아인 코치, 다샤의 대사.


“You know, after the Olympics, I thought, ‘What? That’s all?’”

올림픽이 끝난 뒤, ‘뭐야 이게 다야?’라며 허무함을 느꼈다는 것.




시즌2는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스핀 아웃’은 매년 2월마다 생각이 날 듯하다. 사람들은 피겨 스케이터의 화려함과 아름다움만을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 스케이터들도 사람이다. 트리플 액셀 점프를 소화하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엉덩방아를 찧어야 할까. 새벽 훈련은 얼마나 괴로울까. 아파 죽겠고 힘들어 관두고 싶은데 참아야 하고. 괜찮지 않은 데 괜찮은 척 웃어야 한다.


‘스핀 아웃’은 조금 거칠지만 그래도 솔직히 전해준다. 결국 우리도 다 마찬가지 아닐지.


얼마 전 작고 10주기였던(벌써! ㅠ) 박완서 작가가 남긴 글귀가 떠오른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 from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우리 모두는 아무렇지 않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살아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떠올린다. 김연아 선수의 이 미소.


2011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클린 연기를 선보인 김연아 선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IOC 올림픽 유튜브 공식 계정 캡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누가 뭐래도 금메달이 확실한 연기를 끝냈을 때. ‘해냈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때도 김연아 선수는 미소를 지으며 울고 있었다.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은 척해야 했을 김연아 선수. 이 글의 마지막은 그의 소치 올림픽 연기 동영상으로 갈음.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다가오는 2021년의 봄은 따스하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hgXKJvTVW9g


By SJ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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