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전주도 좋은데, 서울과 달리 새벽 2시까지 술집을 여는 천국이니, 휴가 같은 꿀출장.
오후 6시부터 노란 가죽나물전에 빨간 파김치를 곁들여 뽀얀 막걸리를,
오후 9시쯤엔 나홀로 휘적휘적 to the 남부시장
깐깐한 30대 여성 마스터가 만든 봄 특제 벚꽃 분홍(!) 김렛을 마셨다.
맞다.
혼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남편도, 아이도 없으니 느낄 수 있는 bittersweet 한 자유의 맛.
Freedom is not free처럼, 자유엔 대가가 따른다.
MZ세대를 완벽히 표현한 말 아닐까. 브라보! by SJ
여하튼, back to 전주.
Bar hopping을 하고 돌아와, 새벽 3시까지 일했다. 다음날 로컬 맛집을 순회하며 일일 오끼를 할 요량이었으니 기사를 미리 써두기 위해. But 아뿔싸. 새벽에 요란한 푸시 알람이 떴다.
Bill and Melinda Gates are splitting up.
전날 마감한 기사는 무기 연기.
Can't complain이다. 세계 최대의 갑부 중 한 명이 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 이만한 국제뉴스가 있으랴. 온갖 드라마의 집합체다.
27년이나 함께 살고도, 아이를 셋이나 기르고도, 이들은 결국 bittersweet 한 자유를 택했다. 전 세계적으로 왜 이혼을 한 걸까 누가 바람을 피운 건가 아님 둘이 대체 왜 싸웠을까 위자료는 얼마나 받을까 등등의 관심을 받아낼 각오를 하고.
기사에도 썼지만 이 둘이 굳이 divorce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은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물론 둘은 prenuptial agreement, 즉 혼전 계약서를 쓰고 결혼을 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겠지만 인간사 어찌 될지 모르니 이혼을 하게 되면 재산은 이렇게 분할하고 만약 아이가 있으면 양육권은 이렇게 한다 등등의 계약. 10대 시절 prenuptial agreement라는 걸 처음 들었을 땐 로맨틱의 대척점이라고, 나는 절대 반대,라고 생각했더랬다.
지금은
나도 쓸 걸,
후회한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의 이혼은 gray divorce다. 쌍방이 50대 이상이 되어 갈라선다는,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literally는 중년이혼이겠지만 의미상으로 보면 황혼이혼과 가깝지 않을까. 굳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됐는데도 서로를 못 견디고 난 혼자 살겠다고 갈라서는 것.
속사정은 모르겠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고 여하튼 멀린다 언니, 많이 받아내시길.
1994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philanthropist로서의 성취와 이미지는 멀린다가 만들어준 것이나 진배없으므로.
정작 궁금한 것은 멀린다가 받을 위자료 액수가 아니다. 앞으로 멀린다가 자유를 만끽하며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게 궁금하다. 멀린다는 최근 몇 년간 여성과 10대 소녀들의 교육 등에 목소리를 키워왔다. 아마존 창업자와 이혼하며 위자료만으로 손꼽히는 부자가 된 맥켄지 스캇과 손잡고 관련 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전주엔 장미도 한창이었다. by SJ
덧 하나.
기사 작성을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대다수 한국인 (아마도 남자들)이 작성한 블로그 등의 자료엔 “빌 게이츠가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은 멀린다를 선택해서 놀랐다”는 논조가 많았다. 촌스러워라. 성공한 남자들이 다 trophy wife만 바라는 줄 아나. 사람의 글은 그 사람의 사고의 한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버린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심스럽지만.
이혼은 사실 일정 부분 liberating 하다.
결혼생활이 주는 안정감이 박살난 뒤,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적어도 내가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어서다.
결혼생활도 물론 제각각이다. 농장 안에서 자유 방사의 라이프를 즐겼을 수도 있고, 숨 쉴 틈도 없는 꽉 막힌 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혼은 일단 그 농장의 울타리 자체를 거둬가 버린다. 방목 all the way.
이런 남자 어디 없나 [Michele Morrone 인스타그램]
사실 나는 혼자로 돌아온 뒤 나를 더 잘 알게 됐다. 혼자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도 바란다. 혼자가 아니기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되 내가 더 좋은 나로 성장할 수 있는 상대가 있기를. 하지만 그런 건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걸 깨달은 지금,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혼자가 편하다. 영원히 혼자일 수 있다는 현실엔 몸서리치며, 그래서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 경제적 자유와 신체적 건강을 되도록 확보하려 발버둥 치는 중이다.
수년간 알고 지냈지만, 인터뷰는 최근에서야 했던 임경선 작가. 그가 펴낸 책 ‘평범한 결혼생활’은 모든 비범한 결혼 생활자들의 필독서다. 적어도 평범한 결혼생활 유지에 실패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임경선 작가는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 “결혼해보고 안 좋으면, check and balance가 안 맞으면 탈혼 하는 거죠.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결혼이 좋아요, 꼭 하세요 이런 교훈적 얘기를 하려고 쓴 게 아니거든요. 어떤 선택을 하던지, 중요한 건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태도인 거죠.”
그리곤 덧붙였다.
“결혼은 복잡하게 불행하고, 복잡하게 행복한 것 같아요.”
명언이로세.
임경선 작가의 책s by SJ
우연의 일치일까. 30대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성공한 동생 L을 최근 만나서도 이상하게 결혼 얘기를 주로 했다. 나보다 어리지만 정신은 성숙한 그 친구가 불쑥 ‘Before Midnight’ 얘기를 꺼내면서. 나의 평범하지 못한 결혼생활 얘기를 어렴풋이 짐작은 하되, 캐묻지 않으며. 그 영화 엔딩의 대사를 꺼냈다.
‘Before Sunrise’에서 20대 낭만적 배낭여행족으로 만나 사랑을 불태우지만 결국 중년의 부부가 되어 헤어짐을 고민하는 ‘Before Midnight.’ 마지막 장면의 대사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출처는 영화 스크립트 전문을 아카이브로 해놓은 웹사이트, https://www.scriptslug.com/assets/uploads/scripts/before-midnight-2013.pdf.
헤어지자고 거의 마음먹은 줄리 델피(Celine)에게 에단 호크(Jesse)는 이렇게 말한다(의역 有).
“그래, 들었어.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진짜로 그렇다는 건 아니라는 건 아는데, 만약 진짜 그렇다면, 젠장, 알게 뭐야. 이거 알아? 너 지금 꼬마 여자애들처럼 굴고 있어. 동화 속에 살고 싶은 거지. 나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널 조건 없이 사랑하고, 네가 예쁘다고 말하고, 네가 여든 살이 돼도 엉덩이가 섹시할 거라고 말하고 있다고. 널 웃게 해 주려고 노력 중이라고. 너도 최악이지만 난 견디려고 꽤나 노력 중이고, 만약 네가 나를 영원히 너의 곁으로 돌아올 강아지 정도로만 여긴다면 글쎄, 넌 틀렸어. 하지만 말이야, 네가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그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원문: Yes, I heard you - that you don't love me anymore. I figured you didn't mean it but if you did, then fuck it. You know something? You're just like the little girls and everybody else - you want to live in some fairy tale. I'm just trying to make things better here. I tell you I love you unconditionally, I tell you that you're beautiful, I tell you that your ass looks great when you're 80. I'm trying to make you laugh. I put up with plenty of your shit, and if you think I'm just some dog who's gonna keep coming back then, you're wrong. But if you want true love - this is it.
그리고는 다음 대사.
“이게 진짜 삶이야. 완벽하진 않지, 하지만 진짜라고. 그걸 네가 깨닫지 못한다면, 넌 눈이 먼 거나 마찬가지야 알아? 나도 포기하겠어.”
(원문: This is real life. It's not perfect, but it's real. And if you can't see it, then you're blind, alright? I give up.)
'Before Midnight' 공식 스틸컷.
결국 둘은 해피엔드로 마무리되는 듯한 분위기로 fade out.
현실을 받아들이는 어른의 사랑이다.
주구장창 이혼에 대해 썼지만, 사실 난 지금 곧 10년 지기 외국인 남사친의 결혼식에 갈 생각에 두근두근하다. 그의 한국인 신부도 참 예뻐하는 친구라서, 이들의 결혼을 축하할 생각에 설렌다.
결혼은 싫지만 결혼식은 좋아한다.
아름다우니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보겠습니다, 라고 두 사람이 으쌰으쌰 하는 장면, 흐뭇하다.
깨질 게 뻔하지만 되도록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설사 깨지더라도 잘 살아볼게요, 이런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