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온전히 쉬는 하루인 토요일이지만 7시에 일어났다. 연희동 달동네 집에서 산 넘고 강 건너야 당도하는 청담동에서 열리는 강의 때문. 전날 새벽 3시까지 못 자면서도 일어나지 못할까 전전긍긍, 급기야 지각하는 꿈까지 꿨다. 그렇게 간 강의가…
쓰레기였다.
내용인즉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드디어 일본보다 더 훌륭한 국가가 됐으며,
곧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 분명한데,
이는 사무라이 출신 일본인에겐 강한 자에겐 고개를 숙이는 DNA가 있어서다.
無논리 열정only 싸구려 국뽕 복음.
나도 올림픽에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코끝이 찡해온다.
But 국뽕은 놉.
국가라는 어쩌다 타고난 정체성에 기대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는 채,
특정 국가 소속 국민을 매도하거나 추종하고,
자신의 국가를 맹목적으로 좋고 착하고 능력 있고, 능력이 없다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우기는 것.
이런 게 정말 잠 못 이루는 여름밤 모기보다 10억 배는 더 싫다. 1000억 배라고 쓰려다 모기도 정말진짜너무 싫으니까 10억 배로 고침
뜬금없이 왜 이 책 표지를 올리나 싶지만, 읽다 보시면 나옵니다. 읽어주세요, 제발 please.
강의 후엔 이런저런 일로 서울을 계속 동서로 횡단했다. 혹시 모를 업무 처리를 위해 항상 노트북이며 각종 전자기기 & 충전지 s를 갖고 다니는 터라, 가방 무게는 8.5kg에 육박(집에서 체중계로 재 봄).
귀갓길에 갑자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 강의가 뭐라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일을 당하면
그 행위자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한 뒤,
열까지 세고 나서도 화가 나면, 감정을 잘 다스려 표현하자
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은 못 따라가는 나.
그 강사가,
아니, 그 강의에 간 내가 미친 듯이 미웠다.
그리고 지겨웠다.
사는 게.
안다. 대단치 않다. 다 지나간다.
이런저런 불행은 누구에게나 온다. 사는 건 행복 아닌 고통이다. 다들 행복하지 않으니 다들 행복 타령하고 사는 거. 죽지 못해 사는 거.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남긴 말 중 최애 명언.
"Just to be alive is a grand thing."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와인 한 잔 하고 나면 나아지겠지. 잘 자고 나면 기분 좋아질 거야. 하지만 그래서 뭐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 but 이 또한 또 올 게 100%. 불행의 쳇바퀴를 무엇하러 돌려야 하는 걸까. 어차피 다 끝날 텐데.
그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알람도 지겨워,라고 생각하던 나는 곧 외쳤다.
할렐루야.
신은 믿지만 어떤 신을 믿어야 할지는 아직 모른다.
어쨌든 신이 있긴 있는 모양. 자신이 주신 삶에 심드렁한 피조물을 보곤 옛다, 하고 굿늬우스를 투척하셨으니,
두둥, 영화 ‘365일’ 2편의 촬영 시작 소식이다.
미켈레 모로네 인스타 피드 알람. 브라보. 그라지에. 띠아모.
We missed you, too. 페북 업로드 8분 만에 공유 1000회 이상, 좋아요 1만 개 이상. 인스타는 말해 뭐해. [미켈레 모로네 페북]
심오한 무언가를 기대하셨다면,
"에게게~" or "한심하군"
이러실 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겐, 적어도 2022년까지는 세상을 등지지 않을 거의 유일한 이유다. 모로네 더러 머리는 비고 연기력은 제로인 몸뿐인 배우라고 폄하하는 시선이 (일부 남성들 사이) 존재하지만, 그럼 또 어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탈 재목이어서 모로네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몸매주연상은 당근 10관왕이라도 받아야 할 이런 아름다운 남자사람이 지구에 존재한다니 감사할 따름. 인스타 팔로워 숫자만 16일 현재 1250만이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시민 숫자보다 더 많음.
물론 출연진(특히 여주인공ㅜ, 미키도 포함ㅠ)의 불완전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발음이 좋다고 착각하는 듯한ㅠㅠ) 영어를 듣는 건 조금 (아니 많이) 괴롭겠지만…
돌아와 줘서 고마워 미키.
마시모는 싫지만 미키는 사랑해 [미켈레 모로네 인스타]
모로네뿐이 아니다.
돌아온 오빠가 또 있으니,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
더 정확히 정확히 말하면 유카와 마나부(湯川学) 교수.
맞다. 후지TV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갈릴레오’의 괴짜 천재 물리학자 주인공. 최근 촬영을 재개했다고.
초짜 여성 경찰 수사관과 파트너가 되어 미궁에 빠진 범죄 사건을 풀어나가는 물리학자인 유카와 교수는 후쿠야마에게 그야말로 찰떡인 캐릭터다. 극강의 연기력도 필요 없을뿐더러 오빠 미안 but 사실이잖아 후쿠야마의 꿀 목소리에다, 흰 가운을 걸친 큰 키면 뭐가 더 필요하랴. 여기에 ‘정말이지 흥미롭군(実に面白い)’라는 단골 대사(특유의 핸드 제스처와 함께ㅋ)가 더해지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일본 웹에 떠도는 '갈릴레오' 드라마 촬영 현장 사진. [디어 마샤 팬블로그]
여기에 한국 예능에서도 오빠들이 속속 귀환 중이다. ‘불꽃미남’이라는 프로그램.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빠들의 컴백이다. From 손지창 to 신성우. 중력의 힘과 세월의 폭력에 나름 열심히 저항한 오빠들의 귀여운 도전들을 위한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읽고 싶네.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
이 글을 쓰는 북카페에 마침 이렇게 나란히 놓인 책들. by SJ
이쯤 되니 강의에 상한 마음이 좀 다스려진다. 그래 그 강사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겠지.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그 맥락의 협소함은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주변과 나누고 싶어 강의도 하는 거겠지.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어야 이 세상은 돌아가는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사가 그런 강의를 할 권리는 옹호하고 인정하지만(급 볼테르 코스프레)
그 주장엔 동의하지 않으면서, 최은영 작가의 ‘씬짜오 씬짜오’를 다시 찾아본다.
<아래 파란 볼드체 부분 모두 최은영 작가 소설 발췌>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엄마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다는 듯이 내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고, 엄마는 조용히 하라는 투의 눈빛을 보냈다. “국물이 짜지는 않은지 모르겠네.” 호 아저씨가 말을 돌렸다. 모두들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정말이에요. 우린 정말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한국은 선한 나라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어른들의 대화에 자연스레 참여해서 칭찬받고 싶었다. 난 맞은편에 앉은 아빠에게 인정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넌 어른들 말하는 데 끼어들지 마. 네가 대체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아빠가 한국어로 소리쳤다. 모두들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봤다. 투이네 식구들 앞에서 아빠에게 그런 식으로 야단맞은 것이 부끄럽고 억울해서 귀가 먹먹해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서 독일어로 말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우린 아무에게도 잘못한 게 없다고. 우린 당하기만 했다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투이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식탁의 분위기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를 다 죽였다고 했어. 할머니도, 아기였던 이모까지도 그냥 다 죽였다고 했어. 엄마 고향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대.” 투이가 말했다.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투이 넌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 말을 하고 아줌마는 나를 봤다. “넌 신경 쓸 것 없어.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응웬 아줌마의 말은 투이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정말로 신경 쓸 일 아니야.” 어린 마음에 혹여 상처를 입었을까 걱정하는 아줌마의 두 눈, 내가 결코 잊지 못할 얼굴. 투이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나는 응웬 아줌마의 그 얼굴을 보고 이해했다. 그때 내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응웬 아줌마의 상처에 대한 가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야.” 아줌마가 속삭였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엄마가 말했다. “응웬 씨가 겪었던 일,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엄마는 호 아저씨와 응웬 아줌마에게 고개 숙였다. “저는 모든 걸 제 눈으로 다 봤답니다. 투이 나이 때였죠.” 그렇게 말하고 호 아저씨는 붉어진 눈시울로 애써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 아저씨는 거기까지 말하고 힘껏 웃어 보였다. 응웬 아줌마는 호 아저씨에게 베트남어로 속삭이듯이 이야기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마음을 다독이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말의 진동이 내 마음까지 위로하는 것 같았으니까. (중략)
그녀는 아빠의 태도에 실망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라는 마음이 그날 밤, 아줌마와 우리 사이를 안전하게 갈라놓았다. 그건 서로를 미워하고 싶지도, 서로로 인해 더는 다치고 싶지도 않은 어른들의 평범한 선택이었다.
최은영 같은 작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글에는 잔뜩 살아 뭣하냐고 해놓고, 이런 건강식을 요리해서 먹는 나라는 이중적 인간. 요리 사진 자랑하고픈데 마땅한 데가 없어서 올리는 저를 용서해주시길...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