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것도 능력이다

브런치 feat. 외국어 by SJ 51번째

by Sujiney

“그러니까 남편이 떠났지. 다 여자 탓이야, 남편 탓 말아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지난 10년간 다녔던 발레학원 원장님이 바로 어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폭격.


“계속 그렇게 차갑게만 살면 두 번째 남편이 생겨도 지구 밖으로 도망갈 거야. 그리 알아 둬요.”


'크루엘라' 영화의 한 장면.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조교 역할 하며 서류작업 해드리고, 때론 밤 늦게까지 얘기도 했던 분. 아무리 내가 더 이상 조교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돌변하다니. 물론 그분 입장에선 내가 돌변했고 차갑게 변해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기에 이랬을 거다. 사실, 어제 해프닝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월부터 단체 수업 시간에도 “키가 커서 걸리적거리지 않느냐, 뒤로 가서 해라”거나 핸드폰으로 기사 대장을 확인하고 있으면 “그렇게까지 바쁘신 분이면 그냥 집에 가라”고 남들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오죽하면 대깨문 식으로 원장님의 편인 3인을 제외하고는 나에게 “힘내요”라고들 할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미울까.


그리고, 아무리 밉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표현을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 그래도 관심이 있으니 미워하는 것, 이라고.


무슨 대단한 성인군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밉다는 건 일단 그 사람에게 or 그 사람을 통해 제3자에게 배신감/증오/실망 등의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감정과 시간이라는 자산과 에너지의 투입이 전제조건이니까.



미국의 쿨한 언니의 표본, 프랜 레보위츠도 최근 말했다. 뉴욕을 싫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실은 뉴욕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뉴욕을 싫어할 수 있는 거다, 라고.

From 타임아웃 뉴욕과의 지난 7일 인터뷰. 링크는 요기.

https://www.timeout.com/newyork/news/fran-lebowitz-on-what-makes-new-york-so-damn-special-060721


<해당 부문 원문>

“Also: almost everyone has heard of New York and almost everyone has an interest in New York. Even people who hate New York have an interest in New York—or else why would they bother to hate it? I don't know why, exactly, the show was successful and, by the way, no one does. If everyone knew what makes something popular, then everything would be popular."




각국 언어의 ‘미워하다’ 표현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아름다운 우리말.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다”고 하지 않나.

남 미워하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영어도 일맥상통한다.

“She hates her like poison.”

독이 될 정도로 미워하다, 라니 뭐 말 다했다.


미움을 받는 존재인 나도 처음엔 미웠다. 하지만 이젠 솔직히, 별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엔 물론 미웠다가, 서운했다가, 억울했지만 이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 내 노력을 바꿀 수가 없다면 그저 무시하고 차분히, 놓아두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다 우연히 or 필연적으로 만난 문장.

미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다시, 올리브’ 중 하나다.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책 제목, ‘미움 받을 용기(嫌われる勇気)’처럼, 나는 그런 용기를 내마음속에서 캐내기로 한다. 하지만 동시에 되돌아본다. 실제로 내가 남들을 차갑게 대한 것도 사실이라고. 한때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 범절도 없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경원시할 필요는 없다고. 남을 미워하면 결국 나만 괴롭다고. 내 감정을 밝고 맑고 보송보송하게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심으로 나를 미워하는 이에겐

무심,

마음을 없애는 것이 답인듯.


그리고 이 말을 새겨본다.

Everyone you meet is going through a battle you know nothing about. Be kind. Always.


한때 플라톤이 남긴 말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은 20세 초 영국의 작가 이언 맥클라렌이 남겼다는 말이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은 누구나, 당신은 짐작도 못 할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니 타인에게 친절해지자. 언제나.”


다가오는 한주, 당신이 친절하고 친절을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두 번째 남편이 존재하긴 한다면,

안드로메다로 가지 말고 내 곁에 꼭 같이 있어주기를.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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