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도 괜찮아, 발레학원이라면.

브런치 시즌2 by SJ (70) 발라레 인생 16=원정 발레

by Sujiney

실력이 없지 장비가 없냐.

My 취미 발레 생활 얘기다.


사들인 레오타드부터 워머, 스커트까지 발레 장비들만 보면 거의 프랑스 파리오페라 발레단 에투왈(수석 무용수) 급. 그런 나도 양심은 있어서, 지난달엔 레오타드를 한 벌도 사지 않았다.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은 여러 벌이었으나 결제 버튼은 어찌어찌 누르지 않았다.

셀프 우쭈쭈 중, 6월 1일 자정이 막 지난 시각. 취미발레인들의 커뮤니티 '레오타드를 입는 사람들'(일명 ‘레사’) 중고 거래 마켓에서 맘에 쏙 드는 레오를 발견.

정신 줄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자고 나도 생각나면 사자.”


그날 밤 꿈.

나는 그 레오를 입고 아래처럼 그랑주떼를 뛰었다.

신의 계시인 것이다. 사라.


애정하는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엔 발레 관련 삽화가 많이 등장한다. 위의 것도 그 중 하나. Copyright: the New Yorker



구매 성사 후, 학원 가방을 챙기는데 아뿔싸.

브랜드 중 드가(Degas) 레오타드만 모아둔(그렇다, 워낙 많아서 브랜드별로 정리했다는@_@) 섹션에서, 막 득템한 아이와 매우아주굉장히 비슷한 조합의 레오가 낑겨 있는 것을 발견.

아이고 두야. 엄마가 계셨다면 등짝 스매싱 각일세.


그리하여 6월 2일은 반성 모드.

버스비 1200원을 아껴보자 싶어 재택근무 중 출입처로 삼은 테일러커피에서 학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두 정거장 거리이지만, 날도 좋고 겸사겸사.

그러나 역시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

가는 길에 마주친 꽃집에 내가 지난해부터 탐냈던 ‘난타나’라는 꽃 화분이 수줍게 앉아있는 것 아닌가. 내 눈길을 읽은 사장님께서 식물적, 아니 동물적 감각으로 “1000원 깎아줄게”라고 하셨고, 그다음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싶지만 여튼 내 손엔 화분이 들려있었다.


이쯤 되면 더 이상의 구매욕은 들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 일터. 그럼에도 나는 학원 바로 곁 야채가게에서 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여름을 맞아 제철인 토마토가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무려 8알에 3000원. 이건 안 사면 후회하지. 그렇게 나는 또 토마토 8개를 이고, 화분을 지고, 학원으로 들어갔다. 결국 1200원 아끼려다 1만1000원을 써버린 나.

부끄럽도다.


난타나, 라는 이름의 꽃. 각기 다른 색상의 꽃이 사이 좋게 모여있는 게 넘 예쁘다. 어떻게 안 사, 라는 구차한 변명.


맹자님은 말씀하시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부끄러울 일을 더 안 만들어야 진짜 인간일 텐데 왜 나는 매일 매 순간 부끄러운 걸까.


수오지심 뜻은 (원래 기억하고 있었던 듯 잘난 척 쓰고 있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란다. 21세기하고도 22년이 지난 지금 맹자님 말씀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솔직히 물음표. 그럼에도 잘못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건 여전히 유효한 만고불변의 진리일 터. 거의 유일한 예외가 발레 학원 아닐까.


적어도, 발레 학원에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나란 존재다.


대단한 뭐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부끄러울 틈이 없다. 바워크부터 매트, 센터에 이르기까지, 90분(인데 우리 학원에선 대개 110분)이 휘몰아친다. 심지어 가만히 서있을 때도 풀업(pull up)으로 근육을 끌어올려 중력을 거스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티튀드 동작이 오늘 좀 잘 된다 싶으면 바로 프로미나드(아티튀드를 한 채 한 바퀴 도는 것)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본진 학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선생님께서 나의 실체(?)를 이미 알고 계시고, 순서 역시 오늘 망해도 내일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가능하므로.


문제는 원정 발레다.

레사에 종종 올라오는 원정 발레 관련 질문과 답을 읽으며 폭풍 공감. 레사의 원정 꿀팁 몇 가진 이렇다.


1. 원정은 한 레벨 다운해서 들을 것.

2. 원정 발레의 레오는 차분하게(=눈에 띄지 않도록).

3. 센터 순서에서 터줏대감들의 분위기를 잘 읽을 것.


원정을 가는 이유가 다양할 것. 본진이 휴강이거나, 꼭 들어보고 싶은 선생님 클래스가 있다거나. 이유야 어찌 됐건, 말 그대로 흡사 원정 경기를 가는 선수들처럼 무겁지만 나름의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한때 꽤 오래 내 인생에 원정 발레란 없었다. 수년을 다녔던 모 발레학원 원장님은 다른 발레학원에 가면 몸이 비뚤어지고, 자신의 노하우를 뺏기게 된다며 다른 학원을 가는 것을 금지하셨다. 그랑플리에조차 금기시했던 그 시절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귀를 열고 눈을 떠!


옛 학원에서 나갔던 콩쿠르. 클래식 발레 작품에선 부레부레 등 기본 동작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 창작으로 출전. 팔꿈치와 손목 모두 이상하다. 부끄럽다. by SJ


하지만 어쩌랴. 이미 지난 시간. 돌이킬 수 없다. 그 학원을 그만둔 뒤, 한때 나는 발레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몸이 비뚤어져도 괜찮아”라는 각오로 생애 첫 원정을 가본 학원. 신세계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원정으로 나는 새로운 홈그라운드를 찾았다. 그렇게 발레조아 학원과 호아나발레 클래스를 본진으로 삼았다. 나중엔 비너스 발레학원 (aka 훈련소) 역시 원정을 갔다가 멘털은 탈탈 털렸는데 너무 재미있는 마음에 존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실제 비너스 발레 학원의 장식(?). by SJ

내 첫 발레조아 수업 센터에서 내 모습을 표현하자면, 글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사람으로 빚으면 딱 그 모습 아니었을까. 나름 호기롭게 초~중급에 해당하는 클래스를 들었건만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은 거의 없었다. 거울 속 뚝딱 or 흐느적거리는 인간 비스무레한 존재가 나였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신났다.


하긴, 발레학원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마을버스 정류장에서도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1번 포지션으로 를르베 업을 해보곤 한다. 한 번은 통베 파드부레 동작이 너무 안 되어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해본 적도 있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내 곁을 피했다. 아주머니 죄송해요.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연남동 모 카페. 이어폰 꽂고 발레 작품 ‘에스메랄다’ 영상을 보며 이것저것 손동작을 나름 소심히 따라 하고 난 뒤인데 옆자리 뒷자리 앞자리 모든 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들 “저 사람 이상해”라는 눈빛.


나보다 점프력 백배인 냥이. 힘내라옹! 인스타


그러나, 그다지 부끄럽지가 않다. 외려 신난다. 부끄러우면 뭐 어때.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 말씀처럼,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지금을 즐겨 즐겨”의 마인드로 임하면 된다. 부끄럽다는 건 적어도 내가 뭔가를 시도했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용기를 쥐어짜서 첫 원정 발레를 갔던 2021년 가을의 나. 2022년 여름을 맞이한 지금. 그때의 나에게 새삼 고맙다. 지난 글에도 소개했지만, 두두 시(詩) 모임의 모토처럼.


부끄러워도 괜찮아!


By SJ

By 두두모자, 부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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