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걸 종잡을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할 때는 발레로 몸을 뚝딱거리며 마음을 정돈했다.
그렇게,
첫 ISBN 번호를 받을 때까지 걸린 시간,
만 2년.
제목은 ‘North Korean Women in Power’, 부제는 ‘Daughters of the Sun.’ 이다.
표지엔 표독스러운 표정의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 얼굴을 라면 냄비 받침을 쓸 수 있다고”라고 호기롭게 책 선전을 했지만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부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책 마지막에 쓴 나의 소원,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을 들어주기를.
구입하시는 모든 분들께 건강 행복 사랑이 함께 하시길.
만화책과 메뉴판을 포함,
모든 읽는 것을 편애하는 나로선, 책은 읽는 것이지 쓰는 게 아니었다. 가뜩이나 지구에 미안한 일이 잔뜩인데 나까지 종이를 축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썼다.
원래대로라면 추운 겨울에 나왔어야 하지만
순전히 나의 게으름 덕에 6월 25일이 출간일이 됐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이라는 한국 전쟁 발발일,
북한 책이 6.25에 나온 셈.
책을 썼다는 수줍은(or 꽤나 뻔뻔했을) 내 고백에 지인들 열에 아홉은 “발레 책이에요?”라고 물었다. 언젠가는 쓰고 싶다, 발레 책.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더블 턴도 돌지 못하면서 무슨 책. 그러나 북한은, 영어는 달랐다.
내 생의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함께 해왔고 어제-오늘-내일의 나를 빚어줬기에. 책을 쓴 과정에 대해 다시 책을 쓰는 건 많이 쑥스럽지만, 그래도 남겨두고 싶다.
직접 촬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그 측근들 in 블라디보스토크. by SJ
먼저, 왜 북한인가.
어린 시절 명절 때 기억부터. 명절은 내게 곧 차멀미와 키미테였다.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놀고 싶은데 굳이 임진각이라는 곳까지 가야 했기에. 차 안의 공기가 유독 무거웠기에 불평은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임진각에서 북녘을 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차멀미의 고통 따위 호소할 계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초등학교 입학 전인 내게도 들었을 정도. 저 너머를 가리키며 부모님은 “저기, 원래 우리 고향”이라고 하셨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왜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침묵.
설날엔 갈비 대신 가자미식해('혜', 아님!)와 녹두전이 올랐다. 주말마다 실향민들이 유독 많이 다닌 교회까지 찾아가 예배를 본 뒤엔 굳이 또 을지로에 있는 유명한 냉면집에서 식사를 하는 게 우리 가족의 루틴.
평안도 출신 가족의 맏딸이었던 엄마는 “냉면은 사실 평양냉면이 으뜸이란다”라고 내게 속삭였고, 아빠는 모르는 척 “너도 이제 컸으니 물냉(면) 말고 비(빔)냉(면)으로 먹어라, 대신 설탕은 치고”라고 했다. 내 소울푸드는 함흥식 회냉면과 평양냉면인 까닭. 장기 출장을 가면 김치 생각은 안 나는 데 참기름 넉넉히 두른 회냉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난 더 이상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엔 꼭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미술 실력은 형편없었음에도 칭찬을 받는 법을 터득했는데, 북한 사람들을 도깨비처럼 묘사하고 “멸공” 등의 문구를 큼지막하게 그리는 게 핵심이다. 미술로 상을 탄 건 반공 포스터가 유일했다. 어떤 선생님은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열변을 토했다. 마음 한 켠이 서늘했다. 우리 집 고향이 원래 북한이라고 했잖아. 그럼 나는?
어디 냉면인지 아시는 분, 댓글 or 메일 주시면 선물 보내드립니닷ㅋ by SJ
기자가 되기로 한 것도 어린 시절의 이런 기억이 축적된 결과다. 학창 시절 나는 해외에서 살 형편은 되지 못했지만 (이것 때문에 어찌나 부모님이 내게 미안해하셨는지 내가 더 미안할 지경이다), 영어만큼은 꽤 했다. 영어 선생님들이 “너, 수학도 공부해야 대학 간다”고 하셨을 정도. 그만큼 수학을 못했던 것도, 물론 팩트.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랐는데
100%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한국어가 모국어인데 영어가 모국어만큼,
아니 때론 그보다 더, 좋다는 감정.
내가 사는 곳과 하는 말에 대한 이런 모순된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을 택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자가 됐다. 사회와 세계에 대해 글을 쓰면서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겁이 많은 인간인 나는,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채울 수 있는 직업을 찾은 셈이다.
국내 정치도 취재해봤지만 역시나 북한을 다루는 외교안보가 운명이었던 듯.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이 되신 모 회사 선배가 나를 갑자기 불러 “외교안보팀으로 가라”고 지시한 이후(왜인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나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조직도를 외웠고 김일성 일가의 가계도를 컬러로 프린트해서 붙여놓았다. “김정은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매일 생각하면서 발제를 하란 말이다”라는 호통을 치는 부장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
세계 곳곳도 누볐다. 김정남 암살 사건 땐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앞에서 낮밤을 보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선 바위 위에 앉아 마감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전 오른팔인 현송월이 2018년 겨울 강릉에 왔을 때, 그가 묵는 호텔에 잠입해서 창문 틈 사이로 기어들어가 아메리칸 조식을 먹는 그의 사진을 찍었고, 김정은에게 빙의(?)해서 내러티브 형식의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 현장에서도 노트북 배터리가 닳을까 전전긍긍하며 기사를 썼다.
그럼에도, 기사에는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어딘가에 담고 싶었다.
무엇보다, 북한에 진심인, 나보다 훨씬 훌륭한 한국 선후배 기자들의 이야기도 남겨야 했다. 이왕이면 글로벌 독자를 위해서. 한반도의 기자들만큼 북한 문제에 진심인 기자들은 드물 수밖에 없으니까. 제아무리 외신 기자들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들의 소울푸드가 회냉일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멋진 사진 촬영해주신 인디님, 잊지 못할 북 파티 호스트 해주신 Coffee Choi.s 감사합니다. 와주신 모든 분들도! by SJ
이건 좀 웃긴 얘기. 느닷없고도 뜬금없지만, 2pm 이야기. 일명 ‘짐승돌’ 그 아이돌 그룹, 맞다. 때는 2011년 12월 17일. 당시만 해도 새 앨범을 내거나 데뷔를 하는 연예인들이 신문사 편집국에 인사를 오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다. 문제는 그날이 하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연 사망한 날이었다는 것. 짧지 않은 기자 인생 중 가장 바빴던 날 톱5 중 하나. 하필 그날, 2pm이 편집국에 인사를 왔다.
당시 내 상태로 말할 것 같으면, 엄마에게도 보여드리기 싫은 몰골을 하고 이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졌다는 듯 온갖 인상을 다 쓴 채 애꿎은 키보드를 쿵쾅거리는 중이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건 하필 오전 11시 50분경. 갈비탕을 한 숟갈 뜨려던 순간 바로 숟가락을 던지고 편집국으로 돌아온 차였다.
신도 무심하시지.
바로 그때 “안녕하십니까”라는 중저음 목소리가 등 뒤에 들려왔다. 판단력 상실의 상태였던 나는 뒤돌아보는 동시에 이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아 진짜 시끄…”
“끄”까지 발음한 뒤 “러워”라는 말은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옥택연의 어깨와 준호의 미소와 준케이의 눈웃음이었으니.
쿠오바디스. 앗살람 알라이쿰. 나무아미타불.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성격 더티한 기자의 전형을 이들에게 시전한 나는 분루를 삼키고 다시 모니터로 돌아왔다.
월급은 힘이 세다.
미친 척하고, 해사한 미소를 날리는 2pm과 사진을 찍고 마감을 하면 안 될까, 진짜 0.1초 간 생각한 것은, 이제는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땐 있을 수 없는 일. 난 당시 영어신문에서 한국어 신문으로 넘어온 지 3년째이자, 북한 및 외교안보를 담당한 지 1년째였다.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한창이었던 때였다.
서슬 퍼런 부장의 “야!” 소리에 정신줄 다잡고 김정일의 사망이 동북아 정세에 가져올 지각변동 및 한미일 동맹에 끼칠 여파를 분석하는 기사를 썼다. 강산이 한 번 변한 지금, 내가 쓴 기사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2pm에게 시끄럽다고 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데도.
그냥 뭐, 북한 때문에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과 제대로 인사할 천재일우의 기회도 놓쳤다는 하소연도 하고 싶었다.
왜 영어인가, 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암욜맨(I’m Your Man)’ 뮤비나 보러 가야겠다. 괜스레 나 혼자 쓸데없이 면구스러워지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