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혼나는 기쁨

75번째 브런치 by SJ - 토종 영어 레시피

by Sujiney

선배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나라는 후배, 참 힘들었겠다.

초년병 시절엔 혼나는 게 힘들었는데, 이젠 알겠다.

혼내는 것도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참 많이 혼났다. 1진(=직속) 선배에게도, 부장에게도, 기사를 데스킹(=수정)하는 에디터들에게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 혼난 덕에 오늘의 내가 있다.


오해 방지를 위해 덧붙이자면, 혼을 낸다는 것은 짜증을 내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제대로 혼을 내려면 ,

1) 상대방의 성장을 바라는 진심이 있어야 하고 2) 상대의 잘못을 감별하는 지식을 갖춰야 하며 3)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권위를 갖춰야 한다.


귀찮으면, 또는 아예 성장의 싹이 보이지 않으면 혼내지 않는다. 혼을 낼 필요가 없으니까. 혼내는 건 사실 꽤나 에너지가 드는 일인 것이다. 내가 속한 업계에선 “OO를 사람 만들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조직에 필요한 한 명의 몫을 잘할 수 있도록 단련시켰다는 의미. 비단 언론계뿐이랴. 어디든 마찬가지일 터.




토비 스미스(Toby Smith).


영어신문에서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애증의 존재였다.

미국 산타페 출신인 에디터로, 지독한 글쟁이. 나폴레옹의 사전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었다지만, 토비의 사전엔 두 단어가 없었다. ‘불가능’과 ‘타협.’

(내가 기자라서 하는 말이지만 기자만큼 성격이 안 좋아야 잘하는 직업도 드물다. 내가 그래서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토비의 전문 분야는 feature, 한국식으론 심층 기획 기사로, 신문 한 면을 빼곡히 채우는 전면이었다. 당시 ‘토종’인 데다가 신입이었던 나는 TV 편성표와 개봉작 리뷰(라고 해 봤자 300 단어, 즉 A4 1장 정도) 담당하던 당시의 내겐 넘사벽. 그래도 편성표를 매일 열심히 챙겼고, 거의 외다시피 했을 정도인 어느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오던 토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이 꼬맹이, 피처 한 번 도전해보지?”


그렇다. 토비는 나를 ‘kiddo’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꼬맹이 or 애송이. 당시의 나는 영문 기사의 ABC도 몰랐으니까.


영어로 글쓰기는 말하기 또는 듣기와는 또 다르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하는데, 잘 읽는다고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한국인이라고 다 한국어 글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 않나. 모국어로도 힘든 게 글쓰기다. 정세랑 작가와 최은영 작가와 같은 모국어를 쓴다고 해서 그들과 같이 기발하고 따스한 글을 짓는 건 어렵듯이.


책 뒷표지의 추천사 중 세번째에 있는 그 이름, Toby Smith. 나를 기자로 만들어준 은인. 감사합니다.





잠시, 샛길로 빠져보자. 세계적 명작 소설 중 꽤 여러 작품이 해당 작가가 모국어 아닌 외국어로 쓰였다는 점은 흥미가 꽤나 진진하다. 명불허전 작가, 조셉 콘래드(1857~1924)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콘래드는 폴란드, 나보코프는 러시아 출신으로, 모국어 아닌 영어로 집필 활동을 했다.


먼저 콘래드.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콘래드를 “영어로 글을 쓴 소설가 중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영국으로 이주한 20대 이전까지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한마디로 폴란드 토종이 영어로 소설을 썼다는 것.


폴란드 토종으로 영어로 소설을 쓰며 대가의 반열에 오른, 조셉 콘래드. [위키피디아 캡처]


비결은 뭐였을까. 그는 영어가 외국어라는 점을 단점 아닌 무기로 활용했던 듯하다. 위키피디아는 그에 대해 “비(非) 영어적인 감각을 영문학에 녹여내는 방식의 산문체의 달인”이라고 적고 있다. 즉,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은 오히려 놓치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스타일을 구사했다는 의미. 폴란드어라는 모국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외국어인 영어로 글을 쓰며 둘을 혼합하는 매끄러운 기술을 가졌다는 의미이겠다. 물론, 글을 쓰는 재능과 영어를 연마하는 노력이 우선이었겠지만.


나보코프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없을지라도 그 제목은 다 들어보았을 것. ‘롤리타’ 얘기다. 이 문제작을 그는 애당초 영어로 썼다. 그는 콘래드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영어에 노출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born with a silver spoon)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집안에서 함께 썼다고 한다. 물론, 모국어는 러시아어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3개 국어를 구사했던 셈. 이후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그는 영어로 집필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러시아어로 쓴 작품을 영어로, 반대로 영어로 쓴 작품을 러시아어로도 번역하기도 했다고.


나보코프에게도, 콘래드에게도, 영어는 놀이터이자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네이버 지식백과 캡쳐.


감히 콘래드에 댈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를 섞는 재미로 글을 쓰곤 한다. 몇 해 전 한국어 칼럼에서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쓴 건 영어 표현 compare apples with oranges에서, “공기를 읽어야 한다(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고 쓴 것은 일본어 표현 空気を読む 에서 빌려 오기도 했다. 한국어로 해도 말이 되는 외국어 표현은 한국어 글쓰기의 훌륭한 양념이 되어주기도 한다.


영어신문에서 한국어 신문으로 옮겼을 당시, 한 영국인 에디터가 해줬던 이 격려의 말이 떠오른다.


“Writing is writing - either in Korean or in English. What matters is that you write.”


영어로 쓰든 한국어로 쓰든, 글을 쓴다는 것은 같다는 얘기였다. 큰 힘이 됐다. 당시 나는 한국인임에도 한국어로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에 솔직히 좀 많이 쫄아 있었다. 한국어가 모국어이지만 한국어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새로운 곳에서 나를 다시 증명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언어가 무엇이든 본질이 같다는 것. 그의 말에 용기가 솟았다.


살까 말까 엄청 고민한 티셔츠. Peanuts의 대표 캐릭터 스누피의 이 말이 너무 귀엽다. "나는 내가 쓴 글이 엄청 좋아!"




Now, back to 토비.

사실, 한국어 신문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팔 할이 토비 덕 일터다. 그 덕에 feature 기사 아이디어를 냈던 날, 그는 “Now, you are one of them, kiddo”라고 격려를 해줬다. 선배 기자들과 너도 같은 급이 됐다는 격려. 처음 썼던 피처 기사가 뭐였는지, 부끄럽지만 바로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명히 기억에 남는, 아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있다. 1주일 간의 나름 맹렬한 취재와 이틀 밤을 새 가며 써낸 원고에 빼곡했던, 토비의 지적 사항들.


토비는 초록 펜을 썼는데, 검은색으로 프린트된 내 기사보다 초록색으로 적은 토비의 수정 지시가 더 많았다. 종이가 온통, 초록색. 사진을 찍어뒀다면 좋았겠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멘붕인 내게 그럴 여유 따윈 사치였다. 내 딴엔 퓰리처상까지는 못 받는다고 해도 꽤나 잘 쓴 기사라고 자부했건만, 돌아온 건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원고였으니. 마치 밖에서 흠씬 맞고 들어온 자식을 보는 기분이랄까.


토비가 유별난 케이스이긴 했다. 보통 에디터들은 시간의 효율을 위해 본인들이 (기자를 욕하거나 저주를 해가며) 기사를 빨리 수정한다. 토비는 예외. 그는 내가 보낸 원고를 직접 수정하는 대신, 프린트 아웃을 했다. 그 위에 직접 손으로 수정 사항을 빼곡히 채웠다. 여백이 온통 그의 글씨로 가득. 그리곤 나를 불러 초록 초록한 원고를 건넸다. “수정할 게 너무 많아서 내 핸드라이팅을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럴 땐 물어봐”라는 말과 함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수정 사항을 고치는 데만 꼬박 만 하루가 걸렸다. 작업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자정.


But 피곤한 것보다 더 괴로웠던 것.

내 기사는 더 이상 내 기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가 쓴 것 중 남아있는 건 고유명사와 숫자 정도. 바이라인을 by Chun Su-jin 이 아니라 by Toby Smith로 바꿔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수정본이 천만배는 더 훌륭했다. 그게, 팩트.


솔직히 야속했다.


다음날, 토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못난 나는 부루퉁한 목소리로 받았다.

그의 첫마디.


“헤이 키도, 솔직히 말해봐. 네 기사 그냥 내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이럴 거면 내가 그냥 쓰지 왜 너한테 기사를 쓰게 했냐고도 생각했지?”


오 마이 갓. 초록펜 선생님인 줄만 알았지, 무당인 줄은 몰랐다.


(To be continued,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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