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하는 것도 힘들다

발라레 인생(24) 86번째 브런치 by Sujiney

by Sujiney

발레를 하면 몸이 아프다.
발레를 안 하면 맘이 아프다.

발레하면 몸이 아픈 이유. 많은 경우엔 몸을 잘못 써서 그렇다. 단련이 덜 된 근육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용을 쓰고 발버둥을 치니, 몸이 화를 낼 수밖에. 또는 잘 안 쓰던 몸을 쓰니 그렇다. 숨어 있던 근육에 갑자기 역할을 주려니 어버버 하는 건 당연지사.

그래서, 발레를 진심으로 배우는 이라면 공통적으로 통감한다. 내 몸이 내 맘처럼 안 된다는 것. 거울 속 나와 머릿속 나의 불일치로부터 오는 어이없음+웃김+슬픔.
몸은 쓸데없이 정직하다. 마음과 다르게.

재미있는 건 이 몸이라는 존재의 성질이다. 처음엔 온몸이 아우성이다. 안 하던 프런트 스트레칭 왜 하냐고, 어차피 데벨로뻬 드방 120도는 이번 생엔 불가능하다고 저항한다. 저항의 형태는 몸이 찢어지는 거 같은 고통.
그런데 어느 순간, 몸도 포기를 한다. 이 인간,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도 계속하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도 적응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그래서일까. 처음 스트레칭을 할 땐 이렇게 하다가 죽는 거 아닌가 심히 고민했다. 하지만 나이키 저스트 두 잇 정신으로 그냥 매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각도가 늘어간다. 역시 그 과정의 핵심 재료는 꾸준함.




2023년 1월 인터뷰했던 유니버설발레단 강미선 수석무용수의 말이 떠오른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 출산 후 복귀를 했을 당시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

"솔직히 힘들긴 하더라고요. 골반도 굳고 허리도 예전처럼 꺾이질 않는 거예요. 꺾이지 않으면... 별수 없죠. 연습해서 꺾어야죠(웃음). 스트레칭은 매일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찌나 쿨하고 명확한가. "꺾이지 않으면... 꺾어야죠"라니. 이때 갓미선님의 표정을 나는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다. 개구리 자세를 할 때, 내 안의 악마가 속삭여오는 달콤한 타협에 굴복할락 말락 할 때마다, 갓미선님의 표정이 떠오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5571



그러고 보면,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도 같은 말씀.
"스트레칭은 매일 꾸준히 0.1cm씩,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늘어나는 거예요."
발레조아 코어스트레칭반에서 여름선생님이 늘려주시고 눌러주신 덕도 컸다.

왜 안 될까, 대체 언제 되지, 이렇게 아픈 데 되기는 할까. 이런 생각 자체를 할 필요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레그 레이즈를 하나라도 더 하면 된다. 머리는 비우고, 몸을 움직이는 것. 영어표현의 lose yourself처럼. 자신의 에고를 지우고 몸에 집중하는 것.
내가 스스로를 잃음으로써 내 몸의 본질, 내 존재의 정수에 가깝게 스며드는 게 발레 클래스인 셈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여전히 거울 속의 나는 처참하다.
몸과 맘의 불일치 덕. 그래서 발레조아에 출강하시는 유니버설발레단 정훈일 선생님의 다음 말씀에 최근 완전 베리 머치 뜨끔했다.
"잘 안 되면 어떡하지, 아픈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하세요.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며 해도 잘 될까 말 까잖아요."
이거, 발레에서만 그런 거 아니지 않나. 인생 자체가 그렇다. 그냥 하자. 잘 될 거라 믿고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 한 인생. 이게 될까,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창피한데, 아픈데 등등은 어찌 보면 비겁한 시간 낭비다.

이 맥락에서 또 떠오르는, 국립발레단 이영철 전 수석무용수/현 발레마스터가 인터뷰에서 해줬던 말.
"발레는 참 신기한 게, 계단식으로 늘어요. 꾸준히 하다 보면 훌쩍 올라가는 단계가 와요. 그전까진 고통스럽지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78102



아프고 잘 안 되고 거울 속 나 자신이 한심해도 우직하게 꾸준히 매일 같은 동작을 계속하다 보면, 몸이 스르륵 항복을 해오겠지. 몸과 맘의 타협점을 찾는 날까지, 저스트 두 잇. 힘들어 죽겠지만 힘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게 핵심이거늘.


결국,

발레를 안 해도 몸은 아프고
발레를 해도 맘은 아프다.
하지만 덜 아프다.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