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 2월 초는 발레 팬들의 다크서클이 짙어지는 시기다. 스위스 로잔에서 매년 열리는 일명 '로잔 콩쿠르', 정식 명칭은 'Prix de Lausanne'이 열리기 때문. 한국과 스위스의 시차는 8시간.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꼬박 나흘, 새벽 4시에 잠들었다. 그래도, 행복하다,
라고 쓴 지 1주일 뒤인 지금에야 두 번째 문단을 쓴다. 그사이, Prix de Lausanne에서, 세 명의 한국인 학생이 수상을 했고, 나는 온갖 무리수를 둔 뒤 그 세 명과, 남학생 참가자 한 명을 인터뷰해서 기사를 냈다. 편집국에서 최우선 순위로 두고 총동원령을 내린 프로젝트가 엄연히 있음에도, 발레 기사를 연속으로 네 번 쓰겠다고 박박 우긴 건 리스크가 컸다.
프로젝트도 수행하면서 인터뷰를 잡고, 사진기자를 섭외하고, 인터뷰를 하고, 발제를 하고, 기사 마감을 하고, 편집자들의 제작 과정을 지원하는 과정이 네 명이니 곱하기 4.
이 탬버린 들고 언젠가 에스메랄다 다시 도전! By Sujiney
게다가 내가 속한 부서 이름은 '국제-외교안보-피플'.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인터뷰해와야 할 판에 한정된 시간 자산을 이렇게 소진하는 건, 상사 입장에서 보면 여러모로 무리수다. 내 직속 상사는 결국 저녁 회식 후 내게 소리를 지르며 혼을 냈다. 나이가 몇 갠데 수습 때 혼나는 것처럼 이렇게 혼날 일인가 싶지만 솔직히 상사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엎친 데 덮친 격. 마침 인사고과가 나오는 시즌. 미국 부통령과 그 남편을 한국 매체를 통틀어 단독 인터뷰한 성과가 있는데도 내 고과는 백분율로 계산하면 100점 만점에 50점. 분루를 삼키면서도 후회는 없었다. 월급쟁이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문화부 선배마저도 "너,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다. 로잔이니까.
로잔을 추앙하는 첫 번째 이유. 방구석 1열에서 보는 것도 힘든데 무대 위에서 약 1주일간 꼬박 매일 자기 인생 최고의 기량을 뽑아내야 하는 학생들의 투혼을 본다는 것의 숭고함이다. Prix de Lausanne은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더라도 특정 연령층이 아니라면 참가할 수 없다. 전 세계 15~18세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앳된 얼굴의 참가자들이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척주기립근을 바로 세우고 코어를 긴장하며 보게 된다.
전공자도, 전공자의 부모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보는 두 번째 이유. 로잔에 등장하는 세계적 지도자들의 코렉션(corrections, 지적사항, 거의 전 세계 발레 클래스에서 용어가 이렇게 영어로 굳어졌다)에 녹아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듣고 싶어서다. 어찌 보면 전공생이 될 수 없는 내겐 이 두 번째 매력이 더 클 수 있겠다.
실시간 감상 인증샷. 리얼타임 채팅 캡쳐. By Sujiney
학생들도 마찬가지.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은 인터뷰에서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클래스 센터워크에서 선생님이 'Travel! Fly into the air!'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고, 날아올라보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몸은 안되고 마음으로만 날아오를 수 있는 나로서는 아래의 말이 와닿았다.
"Work with yourself. Not against yourself."
남학생 클래스를 담당하신 남성 지도자분의 말씀. 세상만사가 다 그렇겠지만 발레는 유독, 내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게 인생과 닮았다. 재능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도 매일 연습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게 발레의 잔인한 아름다움이다. 재능 흙수저인 나는 하물며. 그러다 보니 때론 내 몸, 나 자신을 못 믿고, 원망하게 된다. 왜 내 발은 롱드잠에선 항상 1번이 아닌 6번이 되고 마는 것일까. 왜 내 팔꿈치는 꿋꿋이 턴인이 되고야 마는 것인가. 왜 내 축다리는 내 인생처럼 위태위태한 것인가. 그러다 보면 나를 이기려, 나를 누르려, 나를 압박하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나를 적으로 돌리면 결국 나만 힘들다. 나를 적으로 돌리지 말고 나를 받아들이며 나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 그렇게 해야 길게 꾸준히 즐겁게 할 수 있다. 위의 선생님 말씀도 그런 거 아니었을까.
두 번째 유레카 말씀은 아래. 파이널리스트 선정자들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올해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몬테카를로발레단장이 한 말이다.
"Some of you will hate me, and some of you will love me. But you are young. Your life will be very long. Don't be too upset. Don't be too happy."
살짝 윤활유를 쳐서 번역하자면, "파이널리스트가 된 이들은 내게 고마워서 행복할 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내가 진짜 미울 거다. 하지만 기억하렴.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는 걸. 너희 앞엔 아주 긴 인생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지금 당장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기를."
로잔이라는 무대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의 무대에서 통하는 말이다.
이 시도 생각이 났다. 김채임 시인의 시. "지금 좋다고 좋아하지 말고 지금 슬프다고 슬퍼하지 말라."
김채임이라는 이름 석자가 귀에 설다면.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가수 하춘화 씨의 어머니 성함. 그가 지은 시의 제목은 '딸들에게'였다. 아래 옛 중앙일보 기사 참조.
힘든 일투성이라도 지금 괴롭다고 괴로워말고 나를 적으로 돌리지 말자.
사람과 함께 살면 괴롭고, 사람과 함께 살지 않으면 외롭다. 둘 다일 순 있어도 둘 중 어느 하나도 아닐 순 없는 법. 인생이 그런 거고 바꿀 수 없는 거면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보려고 노력이라도 하자. 그 누구도 아닌나를 위해.
이젠 갈 시간. 지금 머물고 있는 도쿄의 발레학원 클래스로. 나 자신과 함께 턴아웃을 잘 만들기 위해. 천천히, 꾸준히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