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MBC, 1994)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부터 꼬맹이들까지 모두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경부선 스텝을 밟게 만들었던 드라마가 있다. 지금은 사멸되다시피 한 단어인 ‘제비족’을 주인공으로 한 <서울의 달>. 1994년 1월부터 10월까지 장장 10개월간 81부작에 걸쳐 방영한 이 드라마는 여러모로 놀랍다. ‘카바레’를 전전하며 돈 많은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가 주인공에, 여주인공이 우직하고 착한 남자와 이어지는 게 아니라 뺀질뺀질한 제비를 사랑하게 된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병 같은 드라마 공식 같은 ‘막장’ 요소도, 남녀 주인공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희망찬 해피엔딩도 없다.
이쯤 되면 21세기 한국 드라마에 충실한 시청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런 드라마가 어떻게 그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 도덕군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분기탱천할지도 모른다. 전 국민이 보는 드라마에서 이런 부도덕한 이야기를 내보내다니!
<서울의 달>은 여자를 등쳐 먹어서라도 성공하고픈 제비 김홍식(한석규)과 그에게 사기를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순박하고 고지식한 고향친구 박춘섭(최민식), 춘섭의 짝사랑을 받지만 홍식을 사랑하게 되는 콧대 높은 깍쟁이 차영숙(채시라)을 중심으로 서울 달동네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비춘다.
홍식과 춘섭이 세 들어 사는 주인집 장영감(이대근)과 부인(나문희), 이혼하고 커피 전문점을 차린 백치미 충만한 주인집 딸 옥희(윤미라)와 그녀의 딸 명선(이주희), 세 들어 사는 늙은 제비이자 춤꾼 박 선생(김용건)과 문간방에 사는 상국이네, 이들의 앞집에서 홀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사는 영숙이네, 주인집 영감의 친구이자 재야 운동권 출신 슈퍼집 아저씨네 등등.
생김새도 처지도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지만 공통된 염원은 있다. 지금은 달동네에 살지만 언젠가는 뜨거운 물 펑펑 나오는 아파트에 살면서 자가용 몰고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남들 보란 듯 번듯하게 잘살고 싶다는 욕망. 서울 태생이든 지방 태생이든, 1990년대 초반 사람이든 2020년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본능적인 욕망. 재벌도, 번듯한 전문직 종사자도, 도깨비 같은 전지전능한 캐릭터도 없지만 단단히 땅 위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꿈이 이 드라마에는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달>을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상경한 청춘들, 내 집 장만해 가족과 오손도손 살고 싶은 부모들이 <서울의 달>을 보며 웃고 울었다. 1994년의 나는 기껏해야 홍식이 밟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 같은 경부선 스텝(블루스 스텝으로, 6박자인 지루박을 출 때는 광주와 목포를 더한 호남선 스텝을 밟는 것이 포인트)이나 ‘닭대가리’라 불리던 주인집 딸 커피 전문점 ‘뭉크’ 사장 옥희와 ‘변태’라 불리는 그의 남편인 미술선생(백윤식)의 시트콤 같은 연기에 키득거렸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서울의 달>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특히 주무대인 장영감 집 문간방에 사는 상국이네 이야기가 틈만 나면 심장을 친다. 본래 건어물 가게를 하던 상국이네는 화재로 가게를 잃고 문간방에 세 들어 살며 아빠(박경순)는 일용직 노가다로, 엄마(김해숙)는 파출부로 일하며 방 한 칸에서 시어머니(여운계)와 어린 아들 상국이까지 기거하며 치열하게 사는 가족이다.
부부싸움이라도 할라 치면 주인집 눈치 보여 뒷산으로 올라가는 부부의 모습이며, 친정엄마가 와도 단칸방이라 재워 보낼 수 없어 눈물을 삼키는 상국엄마의 모습이 애달프기 그지없다. 아랫동네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며 아들과 놀다가 경비원에게 수모를 당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기는 나중에 돈이 있어도 아파트로 이사가지 않겠다는 어린 상국이를 볼 때는 어찌나 짠하던지.
그리하여 드라마 결말부에 끝내 아파트를 분양 받아 이사 나가는 상국이네를 보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에 그랬듯, 2020년의 보통 사람들도 내 집 장만은 참으로 힘든 일이니까. 이젠 그걸 너무나 잘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아니,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억억, 소리 나게 집값이며 전세값이 오르니 1990년대의 희망마저 사그라진 느낌이다.
생생한 인물들을 화면으로 불러들인 김운경 작가의 필력과 함께 <서울의 달>의 성공 요인을 꼽자면 구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배우들의 찰진 연기에 있다. 반지르르한 낯짝으로 여자를 홀리는 ‘나쁜 남자’를 연기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갓 잡아 올린 활어처럼 펄떡펄떡 요동친다. 속물의 눈으로 남자를 고르려 했지만 ‘제 팔자 제가 꼬는’ 속수무책의 사랑에 빠지는 여자를 놀랍게 표현한 채시라, 지금 보면 답답하고 옹졸한 구석도 있는 시골 촌놈을 우직하게 연기한 최민식 등 주연 삼인방은 말할 것도 없다.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 장남에서 ‘올빽’ 차림으로 손만 잡으면 여자들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준다는 늙은 제비로 변신한 김용건이나 무표정에 억양 없는 톤으로 상식적임에도 불구하고 변태로 오인 받는 미술선생을 연기한 백윤식은 이 작품이 건져낸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오매불망 춘섭만 바라보는 순진한 ‘호순이’를 맡은 김원희나 영숙의 동생으로 나와 ‘벌크업’ 되기 전의 풋풋한 모습을 보인 이훈도 이 작품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케이스.
여전히 <서울의 달>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우리 모두가 홍식, 영숙, 춘섭 그리고 상국아빠와 상국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비나 노가다 일용직은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어떻게든 성공하고자,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것은 그들과 같다. 다만 ‘보이즈,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를 외치던 홍식처럼 허망하게 죽지 않고, 송별잔치를 받으며 성공해 떠난 상국이네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2020년의 상국이네들은 1994년의 상국이네처럼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의 아파트에 살게 될 수 있을까? 이 미친 집값에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걱정이 드네.
*이 글은 2018년 8월 <비즈한국>에 게재했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