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성 민원인의 상담사였다

국취상담사가 만난 참여자#2

by 나로서다

선을 넘은 날들의 기록

25년 11월, 여섯 날.

12월 여섯 날.

26년 1월, 일곱 날.

그리고 2월, 여덟 날.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민원을 제기한 날들을 세워보았다.

얼마나 많은 날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숫자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타기관 이관 신청서를 작성하던 날, 나는 그 사람과 관련된 상담일지 45개 정도를 남겼다.




원래 그 참여자는 다른 상담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담당 상담사의 전배로 인해 내가 새로 맡게 되었다.


이미 제도 참여 전부터 몇 차례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고, '악성 민원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고용센터에서도 유명한 참여자였다. 팀장님은 상담사 변경을 누구에게 할지 고민하다가, 미안하다며 나에게 담당을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고했다.

저연차 상담사가 맡게 되면 고용센터에서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해했다.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게 내가 된 것뿐이었다.


민원인이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리고, 제도상 불가한 것은 단호하게 설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감정이 올라온 날은 출장 상담을 나가 있던 날이었다.


내선으로 착신된 전화를 휴대폰으로 받았다.

"상담사가 중단을 하라고 했다."

화가 난 상태로 지점에 연락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취업지원서비스 참여가 어렵다면 제도상 중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이유였다.

그날 이후로, 그 참여자의 연락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점심시간에도 전화가 왔다.

점심시간은 고려되지 않았다.


한 번 시작된 민원은 멈추지 않았다.

오전, 오후, 그리고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담당 상담사가 아니어도 누군가 전화를 받는 순간,

그 참여자의 민원은 기본 10분에서 15분씩 이어졌다.




주로 이야기하는 내용은 불만과 불평이었다.

어디에 민원을 넣겠다는 말, 신문고에 글을 쓰겠다는 말, 고용센터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말.


때로는 협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통화를 반복하면서, 다른 감정도 함께 느껴졌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대화의 방식은 일방적이었다.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설명도 반복했다.

하지만 대화는 해결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불만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걸, 돕기 위해 애썼다는 걸, 그 사람은 알까.

자신이 정말로 손꼽히는 민원인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선을 넘어선 상태였다.




2월, 연휴가 있었던 달이었다.

공휴일을 제외한 13일 중, 그 사람은 8일 동안 연락을 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수화기를 들고, 내렸다.

감정이 요동치는 날이 많았다.


차분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참여자의 욕설과 공격적인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상담사 보호 조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결국 제도는, 명확한 기준을 넘어서지 않는 한 상담사를 보호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난 참여자가 되었다.


다른 기관에 가서도, 같은 방식으로 민원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정말 안타깝지만.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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