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 안 풀리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만났다.
성과를 나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행정업무는 그대로 쌓였고,
성과는 성과대로, 업무는 업무대로 나를 압박했다.
무엇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작년, 매주 팀 회의가 진행될 때 팀장님은 성과지표를 들고 오셨다.
우리 지점의 실적과 함께 각 개인의 수치가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실적 관련 회의 시간은 긴장된다.
변화 없는 수치는 답답하고, 떨어진 수치는 목이 바짝 말랐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회의 시간에는 늘 두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퇴사하면 이 상황도 끝날까.'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
팀장님이 지표에 따른 성과 방향을 제시해주고 나면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9시 회의로 시작한 날은 오후 내내 긴장감이 내려가지 않았다.
작년 한 해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팀원 이동이 반복되었고, 교육일정에 대학교 출장상담까지 정신없었다.
우수기관 준비에 중간 지도점검까지 이어졌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성과는 숫자일 뿐인데 나는 그 숫자 그대로 나의 가치로 받아들였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자책했고,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다시 비난했다.
'어차피 이렇게 힘든데'라며 회피하는 날도 있었고, 다시 마음을 붙잡고 시도해 보는 날도 있었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실적 내지 못하는 시기는 금방 지나갔다.
1년이 넘자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시작되었다.
그 압박은 점점 내려놓기가 어려웠고, 나는 그 무게에 눌렸다.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고,
업무를 하다 숨이 가빠지는 날도 있었다.
주말에는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성과를 나 자체로 받아들이고, 구분하지 못했다는 걸.
다르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결과 대신 과정에 집중해 보기로.
숫자 대신 내가 시도한 순간을 기록해 보기로.
과정에 집중하니 내가 어디에서 막히는지, 무엇을 더 해볼 수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과에 매달릴 때보다 과정에 집중하니 오히려 숨이 덜 막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조금씩 결과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참여자들이 취업이 이어졌고, 2월임에도 작년 한 해 내가 했던 성과에 가까운 수치를 냈다.
여전히 성과는 기관 운영에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숫자로 나의 가치를 대신하지 않는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작아지는 나를 다시 만나겠지만, 이제는 안다.
성과가 떨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다.
그 과정에 있어, 내가 위에 그저 서 있으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