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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Jan 31. 2022

도서 [안자이 미즈마루] 리뷰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책

무라카미 하루키 님의 에세이 집에서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강한 끌림과 호기심을 느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보니 인간적인 매력이 그림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을 알겠다. 기술이 있어도 소용이 없으니 사람을 갈고 닦으라던 그의 지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뭔가를 깊이있게 생각하고 쓰고 그리는 것보다 대충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대충'이라는 것의 의미는 좀 생각해 볼만하다. 뭔가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되, 순간의 느낌과 감각, 순발력과 직관을 중시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현시점에서 최고의 완성도'라고 생각했을 때, 작업한 그림을 넘긴다. 그러지 않으면 실례다. 능률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잔업을 한다. 밖이 어두워지면 일을 멈추고 놀러 나간다.



자신의 장점 중에 하나는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장점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본인에게 전하면 기뻐한다. 본인이 그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발전시키면 진짜가 되어간다. 아무리 별볼일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사귀어보고 이야기해보면 함께 일을 하면서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을 회사에서 배웠다.



미즈마루의 그림은 단순한 듯이 보이지만 범접하기 힘든 그만의 강한 느낌이 있다. 간단한 그림에서 철학과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성품에서 기인한 일일 것이다. 그런 감각을 일깨우고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대단한 작가이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일 뿐 아니라 수필가, 번역가이기도 하며 엄청난 애주가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생각보다 복잡하고 흡인력 있는 인물인 것이다.



하루키님은 소설에서는 사사키 마키의 그림을 선호했고, 에세이 영역에서는 안자이 미즈마루와 영혼의 단짝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번의 동행 취재도 즐겁게 다니며 책을 내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이건 우연) 만나면 꼭 술을 마셨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고민할 것 없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자신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스타일을 가져라,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여겨라. 그것은 자신다워지는 동시에 행복으로 이어진다, 라는 말을 하곤 했던 미즈마루. 그를 다정하고 멋진 스승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에게는 또하나의 축복이리라.





이 책에는 하루키님과의 대담도 꽤 있어서 그 부분을 소개한다.



원래 딱히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문학을 지향하지도 않았다. 다만 생활 속에서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음악 듣는 것을 똑같이 좋아했다. 20대 내내 그렇게 살았고, 30대에 우연히 소설을 쓰게 되었다. 소설이 중심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를 더 낮게 보거나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쓰면 좋은 그림을 그리는 분에게 부탁해서 좋은 그림을 받아 기분 좋게 보고 싶기도 하다. 소설을 쓰고, 책을 내면 그것으로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의 장정이나 디자인에 엄청나게 신경쓰는 것 같다. 미학에 민감한 분인 듯)



그는 시각적인 기억력이 대단하다. 또한 세세한 부분이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틀리면 안되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놓고(방의 배치도 라든지, 양의 그림 등) 글을 쓴다. 그 그림을 그대로 책에 싣기도 한다.



미즈마루 님은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창 그림만 그렸다. 무라카미 님은 글은 별로 쓰지 않고 책 읽는 것은 좋아했다고.



하루키님의 집은 레코드와 책으로 발 디딜데가 없다. 그림책도 좋아하고. 그림이든 음악이든 의식해서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약간은 급진주의적이고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채의식도 지니고 있다).



마이 페이스로 살아가는 것을 중요시한다. 같은 문학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루에 3시간 일을 하고 나머지는 달리거나 게임 센터에 간다고 한다(이 책의 대담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당연히 이 정도로 일하고 끝났을 리가 없다. 소설가에게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마라톤을 하는 분이니까).



허세 부리고 점잔 빼는 것보다 아줌마가 터벅터벅 걸어나와 정통 요리를 내어 주는 고베의 양식을 좋아한다. 사진이나 그림에 얹혀 에세이 쓰는 것도 좋아한다. 미즈마루 씨와는 정말 환상적이고 놀라운 콤비네이션을 보여주었다. 세간에서는 미즈마루를 만난 것이 그의 대중성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잡지나 신문을 보면 짜증나고, 도시에서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것도 피곤해진다고. 되도록 진짜인 것만 보고 살아가고 싶고, 레스토랑에서 엉터리로 만든 걸 먹기보다는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 좋고, 달리고 있을 때가 좋다고 한다(그의 수필을 보면 혼자 영화보고 나서 밖에서 간단한 식사와 맥주를 곁들여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또한 집에서도 꽤나 만들어 먹는 듯 하다). 탁자에 앉아 좋아하는 책과 함께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며, 고양이를 쓸어주는 하루키님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 미소지어지게 하는 책이었다(실제로 이런 삽화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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