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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Feb 22. 2022

자가 치료 이야기

하루 1시간 글쓰기(7) am 6:38~7:38

나의 대학교 전공은 교육학이다. 사실 국어교육과를 가서 국어 선생님이 되려고 있는데 재수를 할 수 없는 집안 형편상 안전하게 교육학과에 원서를 넣었다(나중에 점수를 대조해보니 사범대 모든 학과에 붙을 수 있는 점수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J모 선생님이 검지손가락으로 대학 점수표에서 우리 학교 교육학과를 찍어 주었다. 국어, 역사, 영어 중에 부전공을 선택하면 샘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하고 기뻤다.


하지만, 꼬이는 것이 다반사인 내 인생에서 그리 쉽게 일이 풀릴 리 없었다. 입학 후에(얼마나 지나서인지는 기억나지 않음. 부전공 선택할 때 들은 것 같다) 갑자기 우리 학번부터 영어와 사회복지만 선택 가능해졌고,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를 선택했다. 사회복지를 선택하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나의 성적표도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교육학이나 심리학 과목들은 수업 듣고 어설프게 공부해도 잔머리로 점수가 나왔지만, 영어는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4학년이 아니면 점수를 안준다고 정평이 나 있던 3시간 짜리 오픈북 시험을 보는 교육 통계도 나에게는 쉬웠고 우리 학번에서는 나와 과수석만 A를 받았다(A+는 4학년 아니면 절대 안 줌).


그렇다면 교육학과를 들어가게 된 것이 그렇게나 마이너스적인 선택이었나, 라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교육학과에 들어가서 심리학, 상담심리, 인지심리, 청소년 심리 등 무척이나 많은 심리학 과목을 들었는데(심리학과인 줄..), 그 중 많은 이야기가 나의 상황이나 심리 상태와 연결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이 컸던 건 일관성과 죄책감 관련 부분이었다.


아이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고 악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그것이 정말 심하셨는데, 그래서 나는 선악의 판단에 앞서 어머니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녀의 심리 상태에 따라 리액션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멀쩡한 행동을 하고서도 폭탄을 맞을 수도 있었다. 점점 어른들을 믿지 않고 상처받기 싫어서 깊은 관계를 회피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이어폰을 귀에 끼고 책을 봤다. 그 세계에서는 나도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하나는 부모에 대한 죄책감, 이다. 사람은 상대와 맞지 않거나 싫어하면 표면적인 관계만 유지하거나 그것도 힘들면 아예 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 대상이 부모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부모는 현실적으로 안보고 살기 어렵고, 안보고 살거나 부모를 미워하게 되면 그 마음이 자신을 상처입힌다. 뭔가 부도덕한 일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되고 그런 생각은 자신을 공격한다. 왠지 떳떳하지 못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난 우리 부모를 미워해, 싫어해,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또한 나도 그런 부모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타인을 거부하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똑같지만, 그 감정이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어서 스스로를 상처낸다.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또한 굉장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라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 많은 치유가 되었다(일관성 문제도 마찬가지).


상처를 가진 모든 사람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들을 겪게 되면 사람이나 인생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벼려지고 강해진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다리에 모래 주머리를 차고 뛴다는 느낌은 버릴 수 없다. 타인들에게는 쉽고 당연한 일들이 나에게만 어렵다는 감각은 꽤나 아프다.


인생의 참맛, 이랄까 즐거움은 알 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미카게는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직원들과는 다르다. 읽으면서 정말 많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 이 아이도 이를 악물고 살거나 견뎌야 했구나, 라고 느꼈다.


힘듦을 이겨낸 사람들은 그들만이 가지는 매력이나 흡인력이 있다. 인생에 공짜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풍파에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더 힘든 길을 택하기도 한다).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것은 진실이다.


대학에서의 심리학 강의와 방학 때 쌓아놓고 읽었던 심리학 서적과 무협지와 소설과 에세이가 나의 치료제였다. 신경정신과에 가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자가 치료에 돌입했던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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