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도리진 Feb 20. 2022

죽음에 관하여

하루 1시간 글쓰기(6) pm 10:55~11:55

우리는 임신이 가능한 나이에는 아이를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40대 초반에야 신랑의 부탁으로 병원에 갔는데, 기적처럼 이미 임신이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유산이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빈집, 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몇 번 시험관을 해 보았지만 실패했고, 결국은 포기했다.

나는 신랑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거였으면 나와 신랑의 몸 상태가 좋을 때 노력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결혼 초기에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꽤 힘든 상황이었고, 어머니와의 오랜 불화로 나는 아이 문제를 회피했다. 자연 임신이 되었다면 당연히 낳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 겨우 집을 장만하고 또 하루하루 회사를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집을 장만하고 보니, 기쁜 마음도 잠시였고 마음에는 허무함이 쌓여갔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나와 의외로 생각하는 지점이 비슷한 사람이기에)하고 조심스럽게 그를 탐색하기도 한다.


오늘은 차를 타고 가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하루라도 더 많이 살아서 신랑을 챙겨주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자신이 나를 장례 치뤄줘야 하니 본인이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한다.


왠지 웃픈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프고 아팠다. 2세를 갖지 못한 자들의 쓸쓸함이랄까. 평소에도 세상에 약간 빚진 기분(2명이 왔다가 0명을 남기고 사라지기에)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꽤나 서글프다. 그는 고아원에 후원을 해야 겠다고 한다. 자신의 아는 형들 중에 그쪽 출신이 있으니, 그 분들께 이야기 해 보겠다고 한다.


세상에 별다른 공헌을 하지 못하고 떠날 지도 모르는 우리의 죽음이 값있게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가치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장례 치루고 뼈만 좀 어디에 뿌려 달라고 J군에게 부탁해 놓아야 겠다고도 느꼈다. 남편은 J군에게 부탁해도 소용없을 거라며 웃었다. 나는 그를 믿어 보자고 했다.


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둥바둥 살아보아도, 그다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인식이 들어서인 것 같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발견해야,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살 맛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의 아이는 크지 않고(없으니까), 우리는 늙어간다는 것을,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점점 없어져 가는 무서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고, 아이가 없어도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도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고 여긴다.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고 그런 허무함에 지지 않는 것이 삶의 또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리하여 잠든 신랑을 바라보며, 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왠지 안도한다.

아직 살아있고, 의미를 추구하며, 새로움을 기다리는 탓이다.

요즘 나이 계산법으로는 마이너스 10살씩 해야 한다고 하니, 우리는 아직 젊다.

나날이 청춘이고 사랑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채워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에게서 반짝이는 것 찾아보기 연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