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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Mar 08. 2022

나에게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도 그렇지는 않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시작이다

am 6:27~7:27


어제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내켜서 한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그렇게 몰아졌다. 동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한 명이 말을 꺼내자 '어, 샘이 하면 되겠네~!!' 라고 쉽게 말했다. 그들은 왠지 신나보였다.


나도 영어샘의 수업을 돕는 것이 싫지는 않기 때문에(월요일은 시간상 가능하고, 솔직히 재미있다) 일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너무 당연해하며(영어 선생님 본인 제외)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시는 팀장님이 섭섭했다.


개인별 수업을 하기 때문에 가장 늦게 오는 아이의 수업 시간을 가지고도 누군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다툼이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럴 땐 가장 집이 먼 나의 수업이 가장 늦게 끝난다.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는 내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게 마음이 편하다. 그들은 고마워까지는 하지 않지만, 내가 양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같이 지내다보면 소소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거나 치워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도 나나 영어선생님이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반응한다. 우리는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하지만 일할 때는 둘다 센 편이어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나에게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소소한 선물(혹은 행위)을 받으면 고맙다고 마음을 전한다거나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 할 때 먼저 나서주는(적어도 비슷한 비율로 돌아가면서 한다거나) 매너가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마음처럼 모두가 그럴 것이라 상정하고 살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유전자가 다른데 어떻게 모두 같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모두 비슷하다면 삶의 즐거움이나 다채로움이 많이 옅어질 것이다. 15년 넘게 같이 살아온 남편과도 이렇게나 다른데(그래도 서로 조금씩은 닮아갔다. 현재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오죽할까. 그들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예 인간성이 더러운 경우는 차치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거의 이해 가능한 범주에 있으니까.


예전에는 '화'가 많았는데, 요즈음은 화가 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러다 꽤나 장수하지 싶다.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 나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하는 일만 없다면, 대부분의 일은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환경을 구축해 왔다. 투쟁의 역사, 라고나 할까.


인간은 자신이 현재 갖고 있지 못한 소중한 것을 가장 열망한다. (친정)어머니와 지낼 때는 그것이 '자유'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하고 싶었으니까(대학 가고 싶어서 꾹꾹 참았다). 지금의 본인이 가장 바라는 것은 흔한 로 '자아실현'이다. '꿈'에 다가서는 것. 그러고보면 어느 정도의 자유는 보장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가 멀리 와버렸지만, 좀 황당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툭툭 털어낼 수 있는 마인드를 갖고 있으면 사는 것이 편하다. 그동안의 상처도, 현재 일어나는 어이없는 일들도 서로 다르다거나 상대편이 좀 힘들어서 그럴 것이라 이해하면 그만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갈 뿐이다.


맞닥뜨린 현실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면, 기쁜 일들도 꽤나 생긴다. 이쁜 장면들이 자꾸 나온다. 감사한 일들이 많다. 어찌보면 너무 물렁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주변의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또한 감사하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의 원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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