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선과 평판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욕심이 덜하며, 철학적(?)이며,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어머니와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이 있었다.
실행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녀에게 이번에도 한 수 배웠다.
절대 열심히 하지 않고(때로는 몰입, 집중하지만 멈추는 방법을 아니까 괜찮다), 너무 심하게 달리게 될 때는 끝을 생각해보며 멈출 줄 안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실천해왔다. 타인의 평가보다 나의 가치(가족들과의 낄낄거리는 즐거움을 누리며 흙만지며 사는 삶)를 붙잡는 사람인 것을 아는 박혜윤 작가님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과 의미있게 사는 것은 다르며, 자신의 '나다움'을 찾아가는 의미있는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시골은 그것을 가능케하는 넉넉한 시공간과 적은 생활비를 의미했고, 남편의 퇴사를 계기로 가족들과 과감하게 미국 시골행을 택했다. 넓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 조립식 주택을 택했던 그녀는 계획했던 유기농 재배를 포기하고 어느정도는 타협했고, 대신 빵을 구웠고(통밀빵과 천연 발효빵), 아이들과 자신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이런 삶의 방식은 내게는 [월든]의 소로만큼이나 용감해 보인다.
똑같이 살아갈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녀는 나와 많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많이 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의 욕망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존재하니까.
끌림을 주는, 호기심이 생기는 일은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라는 식으로 접기도 한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 있기에 이것저것 해보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패나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용감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실행해야 잡을 수 있는 성과다.
까뮈는 끝까지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성찰을 강조했다. 그러니 진짜 가치는 '개인'이 고독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가난과 결핍, 고통은 인간의 고독과 자발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풍요로운 바다가 되고 모든 것은 명쾌하게 비춰볼 수 있는 태양빛이 될 수 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134~135쪽
저자가 겪었던 고통은 그녀에게 성찰을 불러왔고, 인생의 찐 의미에 다가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각자가 느끼는 삶의 의미나 목적은 다르다. 심지어 그녀는 인생의 큰 목적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녀도 방향을 정하고 실행해 왔고, 계속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책을 펴내고 있다. 스스로가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의 삶과 철학과 행복을 응원함과 동시에, 우리 또한 삶의 가치와 의미, 방향성을 타진했으면 한다. 결론은 좋은 책이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