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않다면 글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는 방법
즐겁지 않다면 글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저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책읽고 글쓰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의미도 없고,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지속하지 못하면 결과도 나오지 않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려면 우리는 어떤 자세나 방법을 취해야 할까요.
그 일이 전업이 되기 전에는,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아무래도 다른 주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스스로의 생활(최소한의 생계)을 해결할 수 있어야 내가 즐겨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고 합니다(저도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루틴입니다. 커피만 마시다가 속이 쓰리면 바나나를 먹기도 하는데요, 이 순서를 바꿔 보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하지만 하루키도 처음부터 이런 시스템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생활을 위해 매일 재즈바(좋아하는 음악은 실컷 들을 수 있는)를 운영하며 양파를 두 망씩 썰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밤에 장사를 정리하고 부엌 식탁에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 이유로 짤막짤막하고 간결한 형태의 소설을 썼고, 그 소설로 신인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긴 호흡의 소설을 쓰고 싶어서 깨끗하게 가게를 접은 그의 결단력은 대단합니다. 잘 되지 않았더라도 가게를 다시 열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운영하며, 밤마다 부엌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고양이를 쓸어주고 맥주를 마시며) 살아갔을 거라고 합니다. 너무 멋지죠?(그는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아이도 낳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신의 성향대로 결대로 한 선택입니다)
작가로 대성한 부분보다 이런 사고 방식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어차피 모든 이들이 하루키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을 고뇌하고 인내하면서 찾아야겠지요. 물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런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아끼고 재화를 집중하기 위해) 시내의 좋은 집이나 고급 세단, 아이들의 어마어마한 학원비라든지, 값비싼 옷이나 신발, 시계나 장신구, 현란한 요리의 식탁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즐겁지 않다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물론 고통도 동반됩니다만). 아니, 사실 견딜 이유가 없는 것이죠.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사랑(우정, 습관, 유대?)인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다른 엉뚱한 곳에서 의미를 찾게 될 런지도 모릅니다. 하고 후회할 짓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요, 주업을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자는 것입니다. 결과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부담을 덜고 계속 할 수 있잖아요. 의미도 찾을 수 있구요. 누군가는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빵을 굽습니다. 축구를 하고, 스마트스토어나 부동산(재태크를 정말 좋아하면요)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림, 음악, 여행 등 우리가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식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다가 시간과 노력이 쌓여서 주업이 되어 덕업일치를 이루면 너무나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방식이 싫다면 몇 년 바짝 일하고 다시 올인을 하거나 조력자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가능한 방법을 찾고 이득과 손해를 따져 선택해야 하겠지요.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다만 그 선택이 누군가의 강요나 종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야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다시 길을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더 갖기 위해 부모님과 같이 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아까 말씀드린 조력자가 부모님이 되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 때도 자신의 벌이는 스스로 해야 겠지만, 운신의 폭은 훨씬 넓을 것입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죠.
인생이란 가장 자신답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살아가면 그뿐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니까 그 부분은 조심해야겠지만요. 추구하는 가치나 자신다움이 모두 같을 수는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가장 강하고 길게 유지된다고 해요. 개체든 집단이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합리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되, 가족들이나 주변인들과도 제대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다른 것이지 옳고 그름이 아님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