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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May 01. 2022

나는 글쓰기의 기적을 믿는가

한자와 아웃풋에 관하여

글쓰기의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이렇게 괴로운(?) 일을 계속할 리가 없다.


그렇다.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나 괴롭고도 기쁜 일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속하면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도 있다. 그 희망이 비록 희망고문으로 끝날 지라도 이런(이렇게 생겨먹은) 나는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로 엄마, 나, 오빠 세 식구가 똘똘 뭉쳐(는 아니고 오빠와 나만 똘똘 뭉쳐서) 살아왔다. 엄마는 늘 몸이 좋지 않아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화를 풀 길이 없었고, 그 화살은 거의 나에게 날아왔다. 온몸과 정신으로 (정신적 고통을) 맞으며, 견디면서 나는 도망칠 장소가 필요했고 그곳은 바로 책이었다. 오빠가 같은 이유로 책을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오빠는 사촌 오빠인 J오빠의 영향으로 책을 좋아했고, 나는 오빠의 영향으로 그랬던 같다. 이런 확신의 근거는 있다. 나는 오빠가 좋아했던 야구, 축구, 농구, 무협지, 대하소설 보기 등의 모든 취미를 똑같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모방 감각이란 리도 무서운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고 살아야만 했다. 그것도 온전한 정신으로. 무엇이든 흡수하고 도망칠 거리가 필요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는 몰입해야만 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다면 스카이는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수학을 가장 못하고 싫어했다. 책을 좋아하고 엄마가 공부에 관심없는 남매의 숙명은 영수를 잘 못하고 국어만 잘하며, 국어의 영향으로 다른 암기과목도 잘하는 것이었다. 영어도 잔머리로 만큼은 따라갔지만 수학만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흔한 학습지라도 좀 시켜주지, 라고 나중에는 조금 원망 비슷한 감정도 들었지만, 그 덕분에 실컷 책을 읽어 하나라도 잘했으니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 재주로 지금도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이고.


각설하고.

책을 그렇게 많이 보았음에도 나는 속독이 되지 않았다. 국어 시험은 잘 봤지만 푸는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한자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27살 때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처음 알았다. 일본어를 하자면 반드시 한자를 외워야 하는데, 한자를 외우면서 책을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왠지 좀, 아니 많이 억울했다. 한자 좀 미리 시켜주지. 그랬으면 대학 간판과 나의 직업 레벨이 달라졌을 텐데, 라는 멍청한 생각이 또 들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20년 쯤 또 하게 되었다. 한자를 만큼 알고, 책도 엄청 많이 읽던 나는 내가 두가지의 이유로 머리가 생각보다 좋지 못한 인간(읽은 책의 양에 비해)임을 알았다. 첫째, 내가 읽는 책의 종류에 비문학이 별로 없었다는 점. 둘째, 아웃풋을 전혀 하지 않고 책을 읽어왔다는 점이다.


 역시 학교 등등의 장소에서 여러번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책을 읽으라, 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귀찮은 일을 할 리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게 인풋만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그 힘든 아웃풋을 하며 골치를 썩여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알지 못했다. 그 골치 섞이는 일을 해야만 뇌가 발전한다는 것을 말이다. 귀찮은 한자를 외우고 머리아프게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내 생각을 써내는 일이 본인을 무한 성장시키는 동력인 것을 어리석은 나는 깨닫지 못했다.


2020년 경부터 아웃풋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중간한 머리를 가진 나는 금방은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일에서나 가정에서 점점 편히 살아가게 됨을 느끼고 신기해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여유로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타인에게도 인자해지기 마련이다. 성경에는 타인을 자비롭게 대하면 하나님도 나를 자비롭게 대해 주신다는 금쪽같은 말씀이 나온다. 정말 세상 이치는 그런 것 같다. 하루하루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짧은 글의, 오늘의 결론은,

1. 한자를 공부하자

2. 책을 많이 읽고(비문학도 좀 봅시다!!) 아웃풋을 꼭 하자,

라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런데 한자나 아웃풋을 하지 않으신다면, 꼭꼭 조금 괴로워도 실천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맘도 편해지지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이건 진짜다.


원래도 그런 편이지만, 요즈음은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혹시 요런 비법(?)을 모르시는 분이 계시면 꼭꼭 알려드리고 싶은 할머니와 같은 마음에 몇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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