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완독 / 리뷰
자수성가인 줄 알았지만 부모님과 와이프, 장인어른까지 모두 교수셔서 놀람
이 책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출신의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과 저널리스트 안희경 님과의 대담을 엮은 기록이다. 최재천 교수님은 자유롭고 통섭적인 사고로 지속적으로 좋은 교육이란, 공부란, 지식과 지혜란,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시는 분 같다.
우리 나라도 환경 교육을 시켜야 한다. 유럽 사람들은 비행기도 안 타려고 하고 비닐도 안 쓴다던데 그 영향은 교육에서 왔다. 김대중 정부에서 만들었던 환경 교사 제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도서관 만들기 운동' 덕에 생겼던 사서 교사처럼 말이다. 인간으로 인한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환경 파괴가 지구를 좀 먹고 있음을 잊지 말고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자.
박쥐는 주로 열대에 사는데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박쥐가 우리가 사는 온대로 이동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박쥐는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인간은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며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이다. 인류 최대의 실수라 불리우는 농경으로 인한 인간과 인간이 키우는 동물 개체 수의 폭발적 증가는 결국 생태계를 파괴했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적자 생존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살아갈 때 강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우리의 뉴딜은 아동 빈곤 해소와 무상 교육이어야만 한다.
가르치지 말고 질문하자. 스스로 알아갈 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하자. 같이 놀면서 교육해 보자.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납득할 수 있도록 하자. 아이가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하자.
미국과 우리 교육의 다른 점은 몇 주의 시간을 주고 도서관에서 미적분학 책을 펴놓고라도 문제를 풀어오라고 했을 때 풀 수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미적분학 책을 읽을 능력의 유무인 것이다. 평가 방법이 달라지면 아이들의 공부방법도 달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최교수님의 수업은 시험없이 평소의 토론 참여와 과제 점수로 성적이 매겨진다. 엄청나게 빡세긴 하지만, 그 만큼 학생들의 가치관과 인생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 좀 더 공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되는 제자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진짜 공부를 하게 되는 탓, 아니 덕이다.
최교수님은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어 쓰신다고 한다. 오늘 할 일은 전날 저녁에 점검하는 습관을 유지한다. 호기심이 너무나 강한 그는 딴짓의 달인이다. 박사학위를 받는 데에도 오래 걸렸다(미국에서 석사 시작 후 11년만에 달성). 하지만 그의 그런 딴짓들이 결국은 그의 삶을 너무나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양하게 배우면서 쌓아가고 어설프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정.말.로.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긴다. 그럴 때 심도있게 들어가면 된다.
영국과 독일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유를 많이 주기 때문에, 조금 헛점이 보이더라도 진짜 될성부른 나무는 쭉쭉 뻗어나갈 수 있다. 공부란 결국 호기심이 권하는 곳으로 뱃심을 갖고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뭐든 한참을 하면 엉성한 곳들이 메워지는 법이다.
최재천 교수님은 어떻게 그 많은 글을 쓰셨을까. 시간을 만들기 위해 오후 9시에는 억지로라도 아들을 재우고 새벽 1시까지의 서너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에도 그 생활은 계속 되었다. 저녁 식사 설거지와 뒷정리 후, 오후 9시에는 책상에 앉는다. 그렇게 밤의 황태자(?)는 저녁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우선 순위와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혼자 몰입하는 시간이 만들어낸다.
최교수님은 원래 몰입의 달인이고 호기심과 끌림이 이끄는 대로 가는 분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간 관리를 하지 않고 미리 실행하지 않으면 안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철저한 시간 관리의 습관을 들였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5일 후 마감인 리포트를 위해 자리를 뜨는 학생에게서 영감을 받은 덕분이었다. 왜 5일 전에 끝내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미리 해놓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 고치거나 돌발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었다. 그 사건과 본인의 지독한 독감 사건(?)으로 인해 모든 일은 무조건 일주일 전에 끝내기로 하고 있다. 마감을 일주일 전에 해놓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결과물의 질도 높일 수 있다. 혼자 있을 때를 즐기는 교수님은 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살고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의 글쓰기는 이렇다. 핵심을 툭 치고 난 뒤의 뒷수습이다. 대체로 1주일 전에 끝내고 3~4일 전에 송고를 한다. 그 대신 상대방이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을 주기 때문에 고칠 것이 있으면 본인에게 연락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온종일 작은 표현에도 고민하는 작가에 대한 예의니까. 1주일 전에 탈고 하고 3~4일 동안 고친다. 소리내어 읽어보며 또 고친다. 그 작업을 읽어줄 만한 글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계속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중국, 미국 대학생들처럼 무섭게 공부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발견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한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이 읽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니까.
아기 때부터 책을 읽어주며 키운 아들은 책벌레가 되었고 학교 성적은 별로인데, SAT 같은 시험은 거의 만점을 받았다. 내용을 파악하고 답을 유추할 수 있다. 자기 생각을 키웠으니까. 글도 잘 쓴다. 미국 대학 교육은 거의 다 글쓰기다. 글쓰기 훈련을 따로 받지 않아도 결국 많이 읽은 사람을 당해내기는 어렵다.
독서는 빡세게 일로 해야 한다. 말랑말랑하게 위로하는 책은 사양이다. 책은 기획해서 읽어야 한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 주제가 내 지식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실 독서량이 늘어날 수록 완전히 새로운 분야여도 전보다 힘이 덜 들게 된다. 학문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다. 지식의 영토는 점점 확장되고, 수월성과 탁월성을 지닌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약한 지점은 토론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정규 교육을 마치게 된다. 이 점을 빨리 개선해야 한다. 투표 연령 하향의 영향으로 곧 바뀔 것이다.
마음이 가는 방향을 쫓아 공부하고 책을 읽자. 또한 딴짓이 교수님께 준 긍정적 영향처럼 특별한 사람이 다재다능한 것이 아니라 다재다능 자체가 인간의 특질이니, 스스로를 한계짓지 말고 무엇이든 마음껏 해보자.
하버드 대학교는 '다양성'을 위해 다른 배경을 가진 괴짜 아이들도 선발한다. 그들은 리더를 위한 거름이 될 잡초를 뽑는 것이지만, 그 아이들은 리더를 더욱 발전시켜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단단해진다. 우리나라 교육은 다양성 자체에 대한 고려가 아예 없다. 서울대학교도 모범생들을 자극시킬 아이들 10%만 뽑아보자(하버드는 20% 정도 뽑는다). 교수 임용도 마찬가지다. 다른 피를 수혈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은 12명을 뽑으면 10명은 타 대학 지원자를 선발한다. 서울대의 내 식구 챙기기는 너무 과하다. 공부하는 사람이 마음껏 나아갈 수 있고 편견없이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엘리트 세습의 문제는 경제적 자산과 문화적 자산이 교육을 통해 자식에게 전해져 사회 전체의 이동성이 막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자독식이 당연시 되고 나누지 않게 되면, 그 체제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다만 사회 시스템이 변화하고 있어 스카이 출신들의 권력과 재생산 능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도권이 바뀔 수도 있다. 최교수님 아들도 마흔 살 전에 은퇴해서 남태평양 가서 놀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으로 성공한 나라이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좋다. 잘되는 것을 집어던지고 다른 걸 하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잘된 걸 계속 하면서 시대 흐름을 읽고 다음 행보를 준비하면 된다.
하버드 대학교는 튜터 제도 덕분에 자살률이 현저히 낮다. 튜터가 부모처럼 열몇 명의 학생들을 부모처럼 돌본다. 미국의 정신과 진료는 심리 상담사를 먼저 만나고, 약물이 필요할 경우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난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최교수님은 하버드에서 튜터를 했던 경험이 교수 생활이나 조직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자세나 훈련은 인생 전체에 꼭 필요하다. 리더가 입을 열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고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말을 먼저 시작하도록 주도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 상승의 열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악착같이 찾아야 한다.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보고 강의듣고 책도 읽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 봐야 한다. 열심히 찾다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가 펼쳐지면 맘껏 내달리면 된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를 스스로에게 계속 묻자.
공부란 한 사람을 성숙시키는 길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체들의 세상을 더 사려깊게 만드는 도구이다. 공부가 익을수록 관계를 보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를 위해 시작한 공부라 할지라도 '모두'로 뻗어가는 공부가 되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