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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Nov 29. 2022

세스 고딘의 <린치핀> 완독 리뷰

린치핀, 처음 들어 봤다

야마구치 마유의 <7번 읽기 공부법>을 읽고 있다.

뜬금없이 다른 책 이야기로 시작하는 완독 리뷰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쓴다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것은 꼭 해야하는 일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다.

왜? 당연히 지식과 생각의 휘발을 막기 위해서다.

야마구치 마유처럼 7번 읽기를 할 인내심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 훑어보며 리뷰라도 해야 한다.

모처럼 애써 읽은 책에 대한 성찰을 그렇게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쓰고 있다. <린치핀> 완독 리뷰.



각설하고.


이 책은 뉴욕타임즈 10년 연속 베스트셀러이며, 마케팅 쪽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세스 고딘의 저서이다. <보랏빛 소가 온다>,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 <더 딥> 등의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다. 온라인 다이렉트 마케팅 기법을 전파했으며, 늘 새로운 길을 열어 사람들을 이어주고 일을 창조하는 예술가이자 린치핀이다.


우리가 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톱니바퀴가 아닌 꼭 필요한 사람, 대체 불가능한 사람, 즉, 린치핀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규칙의 본질을 이해하고, 남과 다른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의 교육은 톱니바퀴 속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한 것이며, 이전의 생활 방식으로는 같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사회가 제시하는 모범을 내면화하지 말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예술을 창조하라고 작가는 말한다.


관리자와 노동자가 아닌 새로운 집단, 린치핀이 되려면 남과는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이끌고 관계를 맺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시받은 일만 하거나 규율을 꼼꼼히 따지며 안전한 선택만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살다보면 고통과 낮은 보상 속에서 인내하며 지내야 한다. 사실 아무도 그런 생활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하루하루 견디는 것일 뿐.


효율성만을 생각하며 분업을 강조해왔기에, 인간은 점점 톱니바퀴, 늘 대체 가능한 존재로 변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보수를 조금만 주어도 굴러가는 이런 체재 속에서는 공장 주인과 관료만 행복하다.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사람, 세상을 뒤집을 만한 사람, 조직을 이끄는 기획자, 위험을 무릎쓰고 인간 관계를 만들어내는 판매자, 미움을 받더라도 감수하는 혁신가 등이 린치핀이다. 이들은 성공으로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예술가이다.


기존 시스템은 경제적인 요인을 미끼로 수많은 사람들을 조종한다. 혹자는 이는 정말 놀랍고 신비로운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을 세뇌하는 또다른 선물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맡은 일만 하면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이 먹고 살 수 있다. 놀랍지만 이런 안전지향적 성향은 우리의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앗아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내면의 자유로움을 박제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탐구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발휘하면서.


사냥꾼, 농사꾼, 공장노동자로서의 횡보를 멈출 수 있다. 예술가가 되어 성공을 손에 넣자.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지만 그들이 일하는 곳은 사실 공장이다. 계획과 통제에 따라 일하며 성과도 측정된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매뉴얼로 만들 수 있다면 아웃소싱이 가능하다. 아웃소싱이 가능하면 더 싸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결국 노동자를 좌절하게 하며 개개인의 재능이 묻힌다. 이들을 위한 정당한 보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남보다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인 린치핀이 되어야 한다.


시스템은 결국 대체되고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을 이해하고 만들어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부르주아는 생산수단과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으로 노동자를 지배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이제 프롤레타리아도 생산수단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스스로 조직을 만들 수 있고, 통찰과 창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날은 차이를 만드는 사람, 대중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시대다. 크리에이터, 블로거, 음악가, 작가들을 보자. 그들은 제작과 유통의 과정을 지배한다. 자본가이자 노동자인 셈이다. 교체될 수 없는 린치핀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은 성장할 수 밖에 없다. 가치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가치의 서열은 채집-사냥-성장-생산-판매-관계-창조, 이다.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일은 쉬워지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 중 어떤 일을 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뛰어난 직원은 자신의 가치보다 훨씬 적은 보수를 받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들은 결국 조직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평균적 계산은 상당히 위험하다. 성장하려면 튀어야 하므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사람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사람, 린치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규칙에 따라 맡은 일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린치핀이 될 수 없다.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비범한 통찰, 생산성, 관대함을 지녀야만 한다. 더 많이 내줄수록 시장은 더 많이 돌려줄 것이다.


우리는 아마존을 세운 제프 베조스나 애플을 세운 스티븐 잡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천재성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동하기로 선택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세뇌에 의해 그 가능성을 스스로 닫을 뿐이다. 중요한 일을 원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면서 골치 아픈 것이 싫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훈련도 되어 있지 않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린치핀이 되는 것은 상당히 번거롭고 힘든 일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고 무섭다. 굴레를 벗어던지면 자유를 얻지만 무척이나 버겁기도 하다. 다만 그 압박을 견뎌내야만 스스로를 자유케 할 수 있다. 즐겁고 달콤한 일보다 어렵고 고단한 일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것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물론 또다른 미션이 주어지겠지만).


회사 시스템에 오류가 났을 때 해결하거나 박물관 화장실에 휴지통이 부족할 때 휴지통을 더 비치하는 일은 누가 하는가. 린치핀이 되려면 자신이 맡은 업무가 아니어도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예술적이고 열정적이며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눈에 띄게 되어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소비는 행복을 얻는 방법이 아니며 일이나 고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자신을 끼워맞추기에 급급하면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현재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며 스스로가 그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 여겨지면 과감히 탈출해야 한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평범한 가정은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살았다. 이것은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이다. 소비의 힘이 사회적 성공의 척도라는 가르침을 거부하고 먼저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자신의 능력을 가두지만 않는다면 누구라도 린치핀이 될 수 있다(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일,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사실 무척 힘든 일이다).


진정한 창조성이란 게임의 틀을 바꾸고, 상호작용 방식을 변형시키고, 질문을 다시 하는 것이다. 사실 학교에서는 흥미로운 문제를 푸는 법과 사람을 이끄는 법만 가르치면 된다. 그럴 리 없지만(대부분의 학교는 노동자 양성소이니까).


사람을 이끄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다. 리더십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공요인들과 마찬가지로 배울 수 있다. 학교에서 순응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법을 가르친다면, 사회적 지능을 올리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무리를 형성하는 매커니즘을 터득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면 우리는 보다 쉽게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쓰고, 솔선해서 기여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물과 가치를 나누어주는 사람(자신의 전문 지식과 생각을 퍼트리는 사람, 쉬는 날에도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 단골 손님에게 공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등)은 린치핀이다. 그들은 결코 시키는 일만 하지 않는다. 탁월함은 미묘한 차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루에 5분씩만 시간을 내어 하는 일로 수천억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탁월함을 지니려면 수많은 헛발질과 수준 낮은 작업, 그 분야의 지식들이 쌓여야만 한다. 그러다 임계점을 넘으면 마치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시장이 보상하는 것은 예술, 통찰, 가치를 창조하는 용기다. 더이상 평범한 척하지 말고 자유롭게 참여하고 마음껏 기여하자.


회사는 해야할 일을 일일이 지시하고 지적해서는 안된다. 직원들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이해하도록 조직을 개편하는 편이 낫다. 자기 분야의 관습에 도전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일터는 우리가 급여를 받는 곳이지만 예술이나 관대함을 표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구조적 한계를 파악하고 새로운 길이나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면 린치핀이 될 수 있다. 구글 서비스에 접속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페이스를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고 텅빈 여백을 첫 페이지로 유지하도록 한 머리사의 경우가 그러하다.


린치핀도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도마뱀뇌(먹는 것과 안전만을 원하는)가 만든 가짜 위협이라는 것을 알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도 피곤함도 제쳐두고 매달린다. 그리고 성과를 만들어낸다. 완벽보다는 파격을 추구하며, 비난을 견딘다. 쉬운 일에는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린치핀이다.


우리는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위층에도 화장실이 있다고 안내하거나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를 분주하게 청소하고 정리할 수도 있다. 친절하게 인사하고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면 스스로 예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력서 대신 추천서나 포트폴리오, 평판, 통찰력 가득한 블로그를 준비할 수도 있다. 특별한 일을 해서 내 이름의 포털 검색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책을 내거나 다른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린치핀이 되는 길이다. 다만 끈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내가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세상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만든다. 고객의 반응에 관심을 갖고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낙관적인 태도는 생각대로 실현되는 힘을 떠올리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불평을 한다면 그대로 될 것이다.


예술은 자신의 인간성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그것이 어떻게 어디에서 발현되는지는 문화적인 환경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것이 그림이 될지, 소설이 될지, 트위터나 유튜브에 쓰여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용기를 가지고 끝을 내고 세상에 내보내는 예술가가 되어 보자. 때론 완벽하지 못할 지라도, 피카소의 1,000점 이상의 그림이나 세스 고딘의 100권 이상의 책처럼 그 작품들은 우리를 린치핀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일정을 마무리해야 세상은 변화한다(채찍질은 미리미리, 빠르게/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책임있게).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 소질을 타고나지 않았다. 당시 고흐가 활용할 매개체가 그림이었을 뿐이다. 자신의 예술은 자신이 선택해야만 한다. 미리 운명지어지거나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예술은 없다. 다만 쉽게 해낼 수 있는 예술보다는 짧지도 쉽지도 않은 길이 더 가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오늘부터 예술을 위한 하루 한 시간(물론 전력질주도 필요하지만), 을 위해 노력하자. 하고자 하는 일을 완수하는 습관을 기르자. 도마뱀뇌에 지지 말고 일을 완수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것들은 잘라내버리자.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쏟지 말자.


일상에서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야 정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일 잠깐의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성공과 실패는 아이디어가 나온 이후의 행동에 달렸다.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면 실행력과 불안을 이기는 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행시킬 용기가 없을 때는 도마뱀뇌를 기억하자. 실패는 포기할 때까지는 실패가 아닌 성공의 과정이다. 실패를 해보아야 수정을 해서 다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해보지 않으면 길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러한 반복적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릇을 키우고, 성장하여, 마침내 성과를 낼 것이다.


마감일을 글로 써 붙이거나 저항이 끼어들 수 없는 시스템(습관, 구조)을 구축하자. 다만, 어디서 자신의 능력을 반겨주는지 알아야 한다. 언제 자신이 충분히 노력을 쏟지 못하는지, 어떤 일에 열정적이어야 제대로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살피자. 자신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한 프로젝트를 찾자.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물은 유대를 만들고, 주는 이에게 더 많은 것들을 돌려준다.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은 그 이전에 이미 자신의 예술을 마음껏 발휘하는, 탁월성과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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