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빌리기 발품

우동네 도서관 찾아다닌 이야기

by 별빛수

어제의 일이다. 책 한 권을 빌리겠다고 나선 길이 이렇게까지 험난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단순한 외출일 줄 알았던 그 하루는, 발품으로 읽어낸 삶의 장(章)이 되었다.


남편과 함께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집에서 약 7km 떨어진 구립상림도서관. 하지만 도서관 문에는 조용히 한 장의 종이만 붙어 있었다. “소장도서 정리 중(19~23일)”. 허탈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돌아서는 일뿐이었다.


돌아오는 길, 애써 위안 삼듯 순두부를 테이크아웃했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순수식탁’이라는 반찬 가게에 들러 비빔밥 재료와 반찬 여섯 가지를 샀다. 다행히 남편이 좋아하는 ‘펑 과자’가 있어서 마음 한켠이 놓였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이름도 아름다운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조용하고 깔끔한 주차장이 있어 잠시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막상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니 빌리고 싶었던 그 책은 조금 전에 대출되었다고 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다행히도 친절한 직원분이 응암도서관에 책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셨다. 한 줄기 희망을 안고 다시 차를 몰았다. 하지만 아뿔싸, 도서관은 오후 3시까지만 운영되어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다시 검색. 신사어린이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부랴부랴 달려갔건만 이번엔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은 5층. 잠시 멈칫했지만, 책이 있다고 하니 포기할 수 없었다. 무릎이 오도독거릴 정도로 아프긴 했지만, 간절히 원했던 그 책을 드디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책 표지는 낡아 있었지만, 그 낡음마저 반가웠다.


이렇게 도서관 4곳을 돌아다니며, 총 32km를 이동했다. 거리상으로는 모두 7km 반경 안이었지만, 마음으로는 훨씬 더 먼 길을 돌아온 듯한 하루였다.


그래도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다. 무뚝뚝하지만 말없이 따라나서준 남편, 책이 방금 대출되었다며 같이 아쉬워하던 도서관 직원, 다른 도서관 위치를 찾아보겠다며 빠르게 검색해준 또 다른 직원, 내가 책 제목을 말하자마자 얼른 일어나 책을 찾아다준 친절한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도—그 하루의 수고로움 덕분에 책이 더욱 깊고 천천히 읽혔다는 것.


집에 돌아와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만난 문장 하나마저 내 마음을 붙잡았다.


“부모가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들이면, 사랑하고 용서하는 하나님을 믿게 되기가 쉽다. 부모가 혹독하게 벌주는 사람들이면, 그와 마찬가지로 괴물 같은 하나님을 떠올리며 성장하기 쉽다. 또한 부모가 잘 돌봐주지 않는다면, 세상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 스캇 펙


그 문장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수고로움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영혼이 그 책을 만나기 위해 움직인 거예요.”


책 한 권을 빌리기 위해 이토록 마음과 시간을 쏟은 하루.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작지만 반짝이던 순간들이 나를 더 부드럽고 넓은 어른으로 만들어주었다. 인생은 때로 책 한 권을 향한 발품에서도 충분히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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