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덜너덜 독서

by 별빛수

로스앤젤레스의 산불이 며칠째 타고 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는 강추위를 무릅쓰고 지켜야 할 가치를 몸으로 말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아직도 그 추웠다던 일제강점기는 끝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몰랐을 뿐 그 잔재들은 지금까지 호위호식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인다. 산에 난 불에서 잔불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번져갈 씨앗이 되듯,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하지 못한 불씨가 지금 다시 잿더미를 만들려 든다.


밤새 뒤척이며 잤다. 자꾸만 뉴스가 궁금해서다. 요새 두통이 그치지 않는 것도 이와 유관하지 싶다. 그래서, 10일 차 맥체인 성경을 읽었다.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어제 읽은 '독서의 뇌과학'에서 배운 대로,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연필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때론 동그라미도 치며 읽다 보니,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책의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뇌과학에 의하면, 소리 내어 활자를 읽을 때 뇌 전체가 활성화된다고 했는데, 아마 이런 경험을 설명함인 듯싶다.


그동안 나는 속독의 수준으로 글을 읽곤 했다. 많은 것을 빨리 읽고 싶어서였다. 책의 분량은 많아졌지만, 그다지 재미있다는 느낌은 없이 읽었다. 그런데, 오늘 새로움이 밀려든다. 내가 소리 내어 읽으면 내 귀는 그것을 뇌에 전달하고 뇌는 즉시 들리는 대로 영상으로 제작한다는 것, 그러니 재미라는 게 내 마음에 선물처럼 내려앉는 게 아닌가. 참 맛깔나다.


나의 뇌가 그려가는 그림 속에서 뭔지 모를 즐거움, 감탄, 믿음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아하, 이래서 그 옛날 서당에서는 소리 내어 읽게 하고, 따라 하게 하였던 건가? 그 옛날에는 과학적인 발견이 아니었을 것이다. 해보니 이 방법이 좋더라고 조상 대대로 전해 온, 즉, 몸으로 체득한 지혜였던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특히 성경을 읽을 때는 이 방법으로 이제는 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로 성경을 읽는 일은 지양하겠다. 낙서하며 소리 내며 읽는 방법으로 해봤더니 뇌과학 근거와 병행하여 '재미'를 주는 바람에 좋아져서다. 더불어 토끼 속독이 아니라 거북 독의 방법으로 해야 하니, 다시 내 선택은 전자책 아닌 종이책이다. 한 마디로 너덜너덜 독서를 해야겠다. 이 마음을 불러일으켜준 책의 저자 가와시마 류타 선생께 감사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리 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