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과 산불

by 수윤

비가 내린다. 비는 꼭 나가려고 하면 쏟아부어 발목을 붙잡는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을 때는 해가 쨍쨍하기만 하더니 마음을 굳게 먹으면 약 올리듯 얼굴을 구긴다.


나가지 못한 김에 가족들과의 여행을 한 번 떠올려보려 한다. 아주 쨍쨍한 가을날이었다.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페이지에 끼워진 갈피 같은 날이었다. 단풍을 보기 위해 주왕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날이 아직 더워서인지 아직 이파리들은 챙챙하니 나뭇가지에 붙어 햇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 엄마와 아빠는 뒤에서 손을 잡고 천천히 구경하며 걸었다. 동생과 나는 까불며 앞으로, 앞으로 힘 있게 걸어갔다. 20대의 나이였지만 이렇게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올 때면, 아직 내가 초등학생인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주왕산은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시원한 계곡물로 마음을 씻어줄 것 같은 기운을 보여주기도 했고, 구불진 산새의 모양으로 넋을 놓고 산등성이를 바라보게도 했다. 가다가 더울 때면, 앉아갈 수 있는 그늘을 내어주는 포용도 겸비하고 있었다. 산의 전채요리들을 맛보며 걷던 우리는 메인 디쉬를 내어놓는 자연에게 경탄했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협곡이었다. 양쪽에 떡하니 버티고 선 산 사이에서 자연의 광활함과 아름다움에 절로 겸손해졌다. 압도적인 감동을 받으면 겸손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협곡에서 더 올라가는 등산객들도 많았다. 우리는 배가 고팠으므로 다음을 기약하고 산 중심에서 바깥으로 밀려 나왔다. 그늘에 앉아 쉬며, 산새 소리에 귀를 맡기며. 주왕산 입구 쪽엔 식당과 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꼭 조선시대 시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세 걸음 가다 멈추고, 또 두 걸음 가다 멈추었다. 그에 맞춰 우리도 네 걸음씩 걷다 뒤를 돌아보았다. 즐비한 식당 중 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으로 홀린 듯 들어갔다. 비빔밥과 국수, 감자전을 먹었다. 운동하고 난 후라 그런지, 아니면 거기가 진짜 맛집이었던 건지 끝내주게 맛있었다. 시원한 물 한 잔과 따끈한 음식은 다리의 피로마저 씻어주었다. 우리는 이날의 여행을 두고두고 기억했다. 다시 오자고 이야기했고, 기어코 다시 방문했다. 다시 가서도 이야기했다. 주왕산은 참 좋다고. 우리 또 오자고.

이제 우리가 사랑하던 주왕산을 당분간, 어쩌면 더 오래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성에서 산불이 났다. 바람은 성실히 불씨들을 여기저기로 갖다 날랐고, 기어코 주왕산까지 잡아먹었다. 의성에서부터 영덕, 안동까지 불길이 번졌고, 산 밑에 살던 사람들은 집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화마’라는 단어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 이번 산불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마귀처럼, 귀신처럼 삽시간에 달려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대피가 쉽지 않았다. 대피하면서도 눈앞에서 스러져가는 평생의 삶에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부모, 자식, 이웃, 친척, 친구의 안전을 걱정하며 기다릴 사람들을 생각하니 속이 탄다. 불이 바람을 등에 입고 활활 타는 것처럼 새까맣게.

뉴스를 튼다. 모 정치인의 무죄 판결로 떠들썩하다. 산불 문제는 그들에게 뒷전인 것 같다. 심지어 누군가는 산불을 정당 문제와 연결시켜 말한다.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물어보고 싶다. 심각한 산불 사태에 비해 생각보다 뉴스판은 조용하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산불 실시간’을 검색해야 현재 심각한 상황이 속속들이 보인다. 과연 산불 난 지역이 지방이 아니라 서울이었다면? 고령의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고위 정치인과 재력가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면?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보도와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입 안이 씁쓸하다.


화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안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비가 내린다. 나의 발목을 붙들었듯, 화마의 발도 붙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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