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효과

이름표를 붙여주다

by 수윤

질문을 가래떡처럼 길게 늘여 찹찹 우물거려 본다. 입에서 떡이 없어질 때까지 곱씹어보아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이 없다. 이 질문에서 말하는 ‘바뀌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변화’ 일 것이다. 예를 들면, 글쓰기를 통해서 사고가 깊어지기를 바란다거나, 글쓰기로 업무 스킬을 늘리고 싶다거나. 인성이 개차반이 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글쓰기를 하며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원하는가?’


20대 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인간관계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명확한 기준과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수학을 좋아했던 나는 사람 사이에도 공식이 있어 딱 떨어지는 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애매한 경계에서 상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에게 달려 있었다. 그렇다, 내게는 상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이렇게 감옥 같은 자유라니. 흰 것은 백지요 검은 것은 글자라고, 관계의 수를 전혀 읽을 수 없어 답답해질 때면, 주변 친구들에게 넌지시 답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정답지가 다 달라서 그 속에서 나의 정답을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비슷했다. 수많은 사람 중 나와 생각과 성향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니까. 그럴 때 가장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노트에 쓰는 것이었다. 한 줄, 한 줄 써내려 갈 때마다 신기하게 머릿속에 부옇게 드리워진 안개가 조금씩 걷혔다. 그리고 결국엔 내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정답을 펄에서 진주 찾듯 발굴해내곤 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면 나만의 시선이 생긴다. 나만의 시선과 해석은 삶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지반이 되어 준다. 튼튼한 지반 위에 서면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타인이 아닌 내가 중심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단단한 심지를 부러워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그들을 그렇게 단단하게 세워준 건 타고난 성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글의 덕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며 위로한다.


글쓰기의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는 근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손가락 절단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였다. 접합 수술이 성공하고 나서도 유리 피판술과 피부이식, 재활 치료 등의 과정이 내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시간을 하루하루 견뎌내는 건 마른입에 건빵을 욱여넣는 것처럼 답답하고 삼켜지지 않는 일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블로그에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다시 오지 않을 소재 거리야! 잘 기록해 두자.’


하루하루 쓰는 병원일지는 팍팍한 건빵들을 녹여주는 우유 같았다. 우울할 때도 우울한 마음을 잘 기록해 두려고 노력했고, 스쳐 지나갔던 병원 풍경과 사람들도 최대한 기록했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로 풀어내야지!’ 다짐하면서. ‘다 지나간다.’는 마음이 들면 어떤 일이든 견딜만하다. 지금의 어려움이 소재거리가 되겠거니 생각하면 현재를 회피하지 않게 된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택배 상자와 같은 것이라 제때 보내주어야 할 곳으로 잘 보내주어야 한다. 오래된 택배 상자들을 쌓아두고 있으면 새로운 택배를 받을 수도 없고, 퀴퀴한 먼지만 쌓여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빛이 바래니까.

택배 상자들에 이름표를 붙여 보내주는 과정이 우리가 글을 쓰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