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庾信)의 '매화(梅花)'
따뜻해질 법도 한 날이 영 풀리지 않고 바람이 거셉니다. 운동이라도 할 겸 나갔다가도 앞섶을 꽁꽁 싸매고 쫄래쫄래 돌아오게 됩니다. 봄이 오지 않으려는 걸까요. 유독 긴 듯한 겨울이 지겨워도 집니다. 남쪽 지방의 고향을 두고 상경한 사람들은 그 추위를 더욱 심하게 느끼곤 합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낮은 기온과 매서운 북풍이 가혹하기도 하지만, 그 추위에는 집을 저 멀리 두고 왔다는 정신적인 추위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유신(庾信)의 '매화(梅花)'는 그런 마음이 담긴 시입니다.
유신은 후베이성 장링(江陵), 양쯔강 남쪽의 따뜻한 지방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 시를 지을 때는 북쪽 허난성 뤄양(洛陽)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둘은 남북으로 500km 가량 떨어진 지역입니다. 매일의 날씨도, 흘러가는 계절도 모든 것이 다른 곳으로 옮겨온 그곳에서 시인은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시를 엽니다. 남쪽에 있을 때 화자가 경험하기로는, 음력 12월쯤이면 매화가 피어서 보름이 지날 때면 벌써 매화가 끝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에는 매화가 필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인과 여러 사람은 봄이 늦는 것인지 의심합니다. 북쪽이라면 봄이 늦기마련입니다. 하지만 화자는 이를 남쪽의 봄과 북쪽의 봄으로 비교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이전(當年)과 올봄(今春)으로 대비합니다. 북쪽 생활에 익숙해진 것인지, 북쪽에 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북쪽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계절감은 여전히 남쪽에 맞춰져 있어 남쪽 기준으로 봄을 생각하고, 봄이 늦는 것을 오히려 믿지 못합니다. 그런 시인은 밖으로 나가 봄을 확인하려 합니다.
밖의 풍경은 한겨울입니다. 남쪽이라면 나무를 흔들었을 때 꽃잎이 떨어질 즈음인데, 매달려 있던 얼음이 떨어집니다. 꽃도 잎도 보이지 않고 높은 가지까지 모두 보이는 나무를 괜히 흔들어보려 꺼내놓은 손만 찹니다. 그가 믿지 못하던 늦는 봄은 시각과 촉각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겨울과 함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고 맙니다.
봄을, 봄의 전령인 매화를 찾으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집니다. 희망이 가신 자리에는 추위가 찾아옵니다. 그 추위를 시인은 "홑옷 입은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쪽에서는 이맘때면 홑옷을 입고 매화구경을 갔었으니, 지금도 그래도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러 겹 옷을 입은들 따뜻했을까요? 그에게 몰아치는 정신적 추위는 고향까지의 머나먼 거리만큼이나 쉬이 극복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신이 느낀 추위, 매화에 담긴 그리움은 그가 북쪽으로 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 더 깊게 느껴집니다. 삼국지의 시대로부터 100년 뒤, 중국 대륙은 선비족 등 북방 이민족이 들어오며 둘로 나뉩니다. 북방 이민족이 지배하는 북조와 이들을 피해 양자강 일대로 남하한 이들이 세운 남조, 두 개의 정권이 대립하게 됩니다. 남조는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함께 화려한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귀족들의 잦은 내분에 점차 북조에게 땅을 빼앗겼고 끝내 북조 중심의 통일이 이뤄집니다. 유신은 남조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남조에 충성했지만, 북조에 포로로 잡혀가 살게 됩니다. 그의 '매화' 찾기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유신은 이 시에서 추위를 이야기하고, 그 뒤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는 고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진솔한 작품들을 남겨왔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자신의 마음을 주로 삼아 글을 지은 것이기에, 수식을 위주로 하던 남조의 시 문화를 극복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그의 작품은 중국 시의 정수라고 불리는 당시를 여는데 이바지했다고도 평가됩니다. 사무치는 북방과 정신의 추위에도 그는 꿋꿋이 적으며 살아갔고,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빛나고 있지요.
추운 날씨가, 혹은 추위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 언제쯤 가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꿋꿋이 살아낸다면, 여러분에게도 봄날의 햇살이 곧 따스하게 비칠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