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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Apr 11. 2022

쑥국을 남김없이 떠먹는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저녁은 쑥국이야.”

“아 왜! 쑥국 진짜 싫다고!”

“쑥국이 어때서?”

“으,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냄새도 싫고 느낌도 싫고! 그냥 다 싫어. 나 안 먹어!”

“그럼 국은 네 것 안 뜰게. 다른 반찬이랑 밥 먹어.”

“다른 반찬? 뭔데?”


불과 10년 전까지의 봄철 밥상 앞 내 모습이다. 된장국은 그럭저럭 잘 먹어도 쑥국은 기어코 마다하던 사람이. 여기에 있다. 쑥떡은 어찌어찌 먹으면서도, 물에 들어간 흐물거리는 쑥은 한사코 거부하던 나다.     

쑥도, 된장도, 들깻가루도 먹을 수 있는데. 어찌 그 셋의 미묘한 조합은 내 감각을 종합적으로 어지럽혔다. 냄새 때문일지, 식감 때문일지, 익숙지 않은 색감 때문일지. 한 숟가락만 떠먹어보라는 권유에도 절대로 그 요구를 거부하곤 했다.      


봄이면 ‘쑥국-어택’은 집 식탁 위를 넘어 학교에서도 발생했다. 급식에서 쑥국이 나오는 날이면 그 초록과 갈색의 중간쯤 되는 국물이 내 소중한 쌀밥을 한 톨이라도 물들일세라 조심조심 식판을 옮겼다. 선생님의 잔반 검사란 두려웠지만, 쑥국에 관한 내 심지를 꺾지는 못하였다. 매운 김치도, 미끌거리는 미역줄기도, 비릿한 해파리냉채도 ‘한 입은’ 먹을 수 있었지만, 쑥국은 절대로 아니었다.      


지난 주말 만발한 벚꽃과 개나리로 인해 꽃놀이 명소마다 차가 붐비었다. 나도 그 틈바구니에 끼어보려 북적대는 공원으로 나갔다. 4월치곤 이상하니 뜨겁다는 날씨. 온난화의 영향인지 뭔지 굳이 파악하고 싶지 않을 만큼, 훈훈하게 매끈한 공기가 옷소매 아래로 닿는 느낌이 좋았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각자 겪은 주중의 걱정, 수많을 개인의 힘듦. 바람이 방향 바꿀 때마다 꽃비가 내리우는 이 공원 나무 아래에서는, 모두 그런 걱정일랑 잠시 잊은 듯 보였다. 부모들도 체면치레를 잊고 아이들과 같이 대형 비누방울을 만들기 위해 달렸고, 커다란 비누방울 사이를 온 동네의 애견들이 거닐었다.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에 끼어있자니 나도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어린 자식이 아닌, 그렇다고 부모도 아닌. 딱 그 사이에 끼인 세대인 나. 부모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쉴새없이 비눗방울을 불어대는 모습이 짐짓 우습다가도, 그 모습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모만큼 크지 않았고 아이만큼 어리지도 않은 지금. 아직은 어리다고 울부짖고 싶지만 결코 어리다고만은 주장할 수 없는 지금. 나는 어른이 된 걸까, 아직은 어리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행복했던 지난 주말의 꽃 나들이는 월요일 아침 알람과 함께 물거품같이 잊혀졌고, 내 앞에는 현실이 일렁거렸다. 아침부터 새 업무와 지난주에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그렇지만 봄은 봄인지, 4월의 어느 날인 오늘 회사 급식에 쑥국이 나왔다. 쑥국이라니. 절대로 스스로 요리할 일은 없다. 쑥은 어디서 사며 쑥국은 또 어떻게 끓인담. 제철 음식을 내어놓고자 하는 취지인가. 으, 옛날 생각이 났다. 이상한 향과 미끄덩거리는 젖은 풀의 식감. 식당 가까이에 가자 잊고 지냈던 그 냄새가 났다.      


“국은 조금만 주세요.”

학교와 회사는 다르다. 여기서는 원치 않는 메뉴는 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런데도 무슨 심산인지 조금은 그 이상한 국이 받아보고 싶어졌다. 왠지 이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약간 들었다.      


초록과 연갈색의 가운데쯤 되는 국물을 반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된장국 맛에 쑥 향이 조금 나는 듯했다. 

‘음 된장국이네. 먹을 수는 있겠는데?’

다시 반 수저쯤 더 떠서 홀짝였다. 

‘쑥 향 나는 된장국이네. 이걸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아무렇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던 그 악마의 스프가 그리 역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 ‘역겹다’라고 생각했던 감상이 미안할 만큼 ‘아무렇지가’ 않았다. 쑥 향이 나는 된장국. 이걸 왜 그리도 싫어했을까?     


줄기째 숭덩숭덩 뜯어져 삶아진 쑥도 숟가락으로 떴다. 입에 넣었다. 몇 번 씹을 새도 없이 미끈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미끈하고 부들부들한 식감은 맞았지만 ‘미끄덩거리는 젖은 풀’로 격하할 만큼 나쁜 식감은 아니었다. 단체 급식에 자주 나오는 ‘근대 된장국’ 속 풀 식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쑥은 죄가 없다

지금 먹어보니 그냥 쑥 향이 나는 된장국이었다. 내 의지로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상상만큼 이상하지 않아서 쑥을 모두 건져 먹었다. 제철 음식이 내게 기운을 불어넣어 줄 거라는 미신 같은 상상과 함께. 쑥을 남김없이 먹으면 나른하니 날아간 나의 기운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와 함께.      


입맛이 변한 걸까? 

‘제철 음식은 몸에 좋다’는 사상이 그리 미신같이만 느껴지지는 않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걸까. 

매일 알람을 맞춰놓고 비타민을 한 알씩 먹어대야 생존이 가능한 사회인이 되어서 그런 걸까. 

솔직히 말해 처음 먹어본 쑥국은 맛있었다. 나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쑥국을 먹을 수 있겠다. 어쩌면 즐겨 먹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문득, 부모님이 시원하다며 쑥국을 드시던 모습이 떠올라

‘이제 나는 어른인 것 같다’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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