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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Jan 08. 2023

각자 덜 좋아하는 만두를 먹는 일

요 며칠 감기를 호되게 앓았다. 드디어 코로나인가 싶어, 코를 세 번까지 쑤셔봤지만 테스트기에는 늘 한 줄만이 번졌다. 3년간 마스크를 꼼꼼히 껴 왔기에. 오래간만에 겪은 ‘코로나 아닌 감기’가 낯설다. 감기니까 괜찮겠지 싶어 꿀물 한 잔 타 먹고 잠든 다음 날 아침, 간만에 ‘아프다’ 소리도 못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코안이 부었는지 숨쉬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입으로 숨을 쉬자니 입이 바짝 말랐다. 만만한 감기가 아니다 싶어, 집 근처 이비인후과로 터벅터벅 향했다. 후기가 좋던 그 병원은 듣던 대로 의사 선생님이 몹시 친절했다. 내 증상을 찬찬히 들어주는 그의 눈빛만으로도 약간은 이 몽롱함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도 나와 같은 직업인의 기준으로 본다면, 매일 같은 책상에 앉아 비슷한 류의 아픔을 보는 중일 텐데. 오랜만에 만난 ‘그럼에도 친절함을 잃지 않은’ 원장님의 존재가 신비로웠다. 개인 병원 진료실에서 마치 종교 공간의 작은 방 안에서처럼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끼며, 3일 치 약을 들고 집으로 얼른 걸어왔다. 다음에도 혹시 감기에 걸리게 된다면 꼭 그의 병원에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행히 일을 쉬는 날이라, 이 아픈 날 아픈 몸을 푸욱- 놀릴 수 있었다. 약봉지를 찢어 약부터 털어 넣었다. 이번에 느낀 점이지만, 현대 의학은 참으로 놀랍다. 약을 삼키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열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고 찢어질 것 같던 목구멍도 덜 아파졌다. 약으로 이미 치유된 것일지, 네 알의 알약 가운데 하나일 진통제의 효능일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약발’이 대단하다. 그래도 아픈 오늘은 빈둥거릴 특권이 있기에. 유튜브 쇼츠를 쉴 새 없이 넘기며 무한한 오후를 흘려보냈다. 무작위로 띄워진 영상을 흐린 의지로 넘기다 보니 잠이 와 내키는 대로 잠도 잤다.      


그럼에도 밤이 되니 배는 고파왔다. 퇴근 후 아프다고 주장하는 내 집에 온 남자친구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목구멍이 답답한 날에는 국물 요리가 먹고 싶다. 등촌 샤브칼국수가 가장 먼저 떠 올랐으나. 이내 집 근처의 딱 한 번 가본 만두전골이 머릿속의 그 왕좌를 빼앗았다. 뜨끈하지만 가볍고 아주 약간만 칼칼한 맛이 오늘같이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날 딱 적당할 것 같다. 강렬한 고춧가루 베이스인 등촌 샤브 칼국수보다는 맑은 국물의 만두전골이 더 건강한 느낌이랄까. 사실 이 모든 공상은 그냥, 만두전골을 먹기 위한 합리화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만두전골 가게에 갔다. 오늘도 저녁 식사 시간엔 호떡집 아니 만두전골 집에 불이 났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골목을 크게 세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차를 댔고, 스무 개도 넘는 테이블 역시 거의 만석이었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물과 컵을 가져다주며 종업원이 ‘전골 2개죠?’를 물어왔다. 고민할 게 없어 좋다. 주문한 지 3분이나 지났을까, 커다란 전골냄비가 나왔고 한번 훅- 끓으면 바로 먹으면 된다고 했다.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온 수많은 얼굴이 둘 혹은 셋 혹은 넷씩 테이블에 둘러앉아 전골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쪽은 말이 많았고 이미 먹는 쪽은 말이 없었다. 어차피 목이 아파 말을 많이 할 수 없던 나는, 빨리 이 커다란 냄비가 끓기를 바랐다. 저 주먹만 한 만두를 한 알 떠먹어보고 싶어, 가스레인지의 불을 최대한 점화 방향으로 돌렸다. 이내 육수가 끓었고 드디어 먹어도 되는 즈음이 됐다.  

    

만두는 고기와 김치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이 하는 대로 반반으로 주문했다. 먼저 간이 덜 강할 고기만두를 앞접시에 덜었다. 많이 씹을 것도 없이 훌훌 넘어가는 것이 죽만큼이나 편안하게 들어간다. 오늘 메뉴 선택이 훌륭했다. 다음으로는 김치만두를 떴다. 늘 고기만두보단 김치만두를 선호해온 나지만, 이 집은 고기만두가 더 내 입맛이다. 한 알 한 알 고기와 김치만두를 번갈아 가며 먹었고, 마지막으로 냄비에는 고기와 김치가 한 알씩 남았다. 남자친구는 김치만두를 내 앞접시에 떠 주었고, 나는 그도 이 집 고기만두가 입맛에 맞는구나 싶어 잠자코 김치만두를 먹었다. 그렇게 너덜거리는 목구멍 안을 달래주는 듯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약 기운 때문일지, 든든한 국물 때문일지 조금은 말할 힘이 생겼다. 


“오빠는 저 집 김치만두랑 고기만두 중에서 뭐가 더 맛있어?”

“나는 김치만두.”

“응? 근데 왜 나 아까 마지막에 김치 준 거야?”

“김치가 더 맛있잖아.”

“나는 저 집은 고기만두가 더 맛있던데?”

“그래? 너 평소에 김치만두 더 좋아하길래.”


상대가 더 맛있는 것을 먹게 해 주리라는 배려로, 각자 덜 좋아하는 만두를 묵묵히 먹는 일. 어쩌면 이게 사랑일까? 이 재미없는 남자와의 연애 가운데, 종종 이렇게 조용한 깨달음을 얻고 한다. 자기 입에 맛있는 것을 내 앞접시에 덜어주는, 늘 고등어를 바르면 내 밥 위에 먼저 올려주는 이 유머 없는 남자의 묵묵한 사랑법에 만두전골보다도 더 속이 따스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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