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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Jan 09. 2023

나를 갉아먹는 습관을 멈추기

신년에 모닝페이지를 다시 시작했다. 매번 시작하고 얼마간 지속하다가 멈췄던 습관이지만, 이번에는 같이 쓸 동료가 생겨 조금 더 오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 연필로 생각의 흐름을 휘갈기다가, 올해의 목표가 떠올랐다.      


나를 갉아먹는 일을 멈추기. 

이 표현은 대개 마음을 갉아먹는 일을 뜻하지만, 나는 말 그대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약간이라도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마다, 앞니로 입술을 뜯는 습관이 오늘 포착되었다.     

 

입술 물어뜯는 그 습관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알고는 있었으나 오늘 아침 그 행위를 포착한 이후 그 빈도를 세어보니 심각했다. 한 줄을 쓰고 다음 줄로 갈 때마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껍질을 물었다. 나는 예상보다 더 중증의 ‘입술 물기 환자’였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습관은 코로나19가 시작되며 더 공고해졌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입과 코를 가리고 살아가는 시대. 나 역시 커다란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는 표정의 자유를 얻었다. 회사에서 점점 눈만 웃는 웃음에 익숙해졌으며 초조할 때는 마음껏 마스크 속 보이지 않을 입술을 깨물었다. 타인에게 내어 보일 수 없는 불안이 날 갉아먹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입술 주변의 거무튀튀한 착색은 점점 더 심해졌고 화장으로도 잘 가려지지 않기에 반쯤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입술 주변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날이 많아지니 점점 더 깨물기가 만만해졌다. 마스크 속은 내가 불안을 오롯이 표현해도 되는 유일한 세상이 됐다.      


돌이켜보니 내가 나를 갉아먹는 습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만큼 어릴 때, 나는 내 불안을 손톱에 투사했다. 마음이 콩닥대는 일이 생기면 여지없이 손톱을 물어뜯었고 손톱의 세로 폭보다 가로 폭이 훨씬 넓어질 때까지 손톱을 물고 또 물었다. 남에게 보이는 부분이라 그 습관을 가까스로 고쳐낸 뒤에는 다른 부분으로 불안이 튀었다. 발톱을 손톱깎이로 바짝 깎거나 머리칼을 잡아 뜯는 형태로 그 불안을 풀어내곤 했다. 결국 보이는 곳은 타인 시선을 의식해 어떻게든 고쳐냈는데. 3년이나 남에게 보이지 않는 영역이 생겨나자 결국 내 불안은 그 부위로 향했다. 지금도 한 줄을 쓰고 스페이스 바를 친 뒤 왼손이 입술로 향하는 걸 느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는 가운데도 멈추지 못하는 일. 의식의 영역으로 절대 다스려지지 않는 일. 그게 습관의 무서움인가 보다.      


신년 목표는 거창할 것 없이, ‘입술 뜯는 습관 고치기’로 해야겠다. 오늘 알아차렸으니까. 그리고 글로 다짐을 남겼으니까.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입술을 물지 않는다고, 내 안의 불안이 멈추지 않을 걸 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도, 욕심도 많은 나날 가운데니까. 욕심이 많은 만큼 초조한 순간도 많다. 더 잘하고 싶어 입술을 물어뜯고, 진도가 빨리 나아가지 않아 두 입술을 모아 깨문다. 이젠 빠르지 않아도 좋은 걸 알았으니까. 인생은 길 것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든 나날이 목표에 닿은 날이란 걸 아니까. 빠르지 않아도 좋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좋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 생각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내 입술에도 평화를 선물하기를. 이제는 내 몸을 실제로 갉고 마음조차 닳게 하는 일을 멈추기를. 초조함을 자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결국 몸과 마음이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작은 신년 소망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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