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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May 22. 2023

젊은 경상도인의 슬픔

오랜만에 본진에 간 이중언어 구사자의 안도

엄마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으로 향한 오 양. 두 시간 가까이 달려 고향에서 가장 큰 기차역에 내렸다. 기차역에서 그녀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익숙한 기차역의 모습도 아니요, 반가운 사람의 얼굴도 아니었다. 따박-따박- 귀에 박히는 억양과 단출한 단어의 조합이 비로소 ‘네 고향에 돌아왔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 jjik_da, 출처 Unsplash


“아↗니 이↗쪽으↘로 와↗봐~”

“여-가?”(여가활동 아님. 여기가 맞냐는 질문.)

“어↗어↘어~”

이 땅에서는 ‘어’라는 한 음절의 길이와 억양변화로 YES와 NO의 뜻이 갈린다.


‘가가!’ (이거 가져가.)

‘가가?’ (걔가?)

‘가가 가가?’ (걔가 아까 걔야?)

‘가가 가가가?’ (걔가 성이 ‘가’씨야?)

처럼 너무 유명한 사투리는 사투리인 줄을 알고 지냈지만. 어↗어↘어조차 사투리일 줄이야. (사람에 따라 으↗으↘으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하지만, 편의상 어↗어↘어로 통일함.)


평생을 고향에서만 살아온 오 양은 처음 상경하였을 때 ‘어↗어↘어’를 자연스레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사용했다. 너무나 당당하게 ‘아니’가 아닌 ‘어↗어↘어’를 내뱉고 지냈으나, 그럭저럭 소통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라고는 ‘지금부터 내가 네 말을 반박하겠다, 레츠 고!’의 신호로밖에 사용해오지 않은 오 양의 주변 세계는 정말 ‘어↗어↘어’ 만으로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이제 ‘어↗어↘어’의 고장에 온 것이다. 잠이 오면 ‘졸려’ 대신에 ‘잠온다’고 말하면 되는 땅에 닿은 것이다. ‘맞나?’가 ‘그거 하면 한 대 맞을까?’가 아니라 ‘그래?’ 정도 말 잇는 추임새로 사용되는 세상에 온 것이다.


이~마트 대신에 이!마트를 갈 것이고 카페에서도 블루베리 스무디를 억양을 5회 정도 튀겨가며 주문해 마실 것이다. 부추전 말고 정구지전을 얼음 막걸리와 함께 뜯어 먹을 것이다. 언어는 생각의 통로라고 하던데. 나를 2%나마 옥죄던 서울말의 세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자 마음이 완벽하게 푸근해졌다.


“수정 씨는 사투리를 좀 고쳐야겠어?”

첫 회사 입사 직후 팀장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마구 혼란스러워졌다.

“사투리는 틀린 게 아닌 데 왜 고치라고 하지? 미친놈인가?


서울에 6년쯤 발을 걸친 지금. 그가 어떤 의도로 내게 그 말을 건넨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어↘어’에서 두 번이나 꺾이는 그 억양을 네 말에서 지우지 못하면 너는 영원히 이방인 티가 날 것이라는. 이 서울 땅에 발붙이고 살려면 성조 변화를 조금은 줄이는 게 너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말의 ‘거친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어쩐지 청개구리 같은 면모가 있는 오 양은 그 말을 듣자, 절대 그 사투리를 ‘고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런 모순적인 면모도 보였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는 종업원에게 꽤 서울말스러운 한 두 마디로 주문을 마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완전 서울말 같았지?”

“아니...”

“그래...?”

사투리를 고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사는 동네에서 번번이 타지인 취급을 받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고나길 청개구리인 오 양조차 세월 앞에서는 약이 없었다. 한없이 부드러운 말씨의 소유자들과 어울려 살며, 시나브로 오 양의 억양도 조금씩 깎이어나가고 있었다. 고향에 주말 동안이라도 다녀올라치면 98% 정도 기존 억양으로 회귀 되곤 하더니. 어느새 주변인 다수의 말투에 물들고 있음을 종종 체감한다. 자연히 억양 없는 표현을 내뱉으며, 절대 ‘고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지난날의 각오가 생각나 소름 돋을 때도 있다. ‘어제 아래’ 대신에 ‘그저께’라는 표현을, ‘커피 한잔 태울까요?’ 대신에 커피 한잔 탈까요?를 자연스레 사용하는 자신이 여전히 종종 놀랍다.


틀려서 고치는 게 아니라, 오래 머무르며 자연히 물드는 중이라고.

서울말을 쓰는 것은 서울에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닐 거라고.


영어는 뜻만 통하면 ‘나 영어 말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표준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함에 슬퍼하기보다는, 서울말을 비슷하게나마 구사할 수 있음에 자부심 가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대한민국 말을 두 종류나 사용할 줄 아는 이중언어 구사자임을 잊지 않기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다짐했다.


© rawkkim,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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