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인도에.. 좋은 사람 많다... 진짜다...
함피 관광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비루팍샤 사원과 함피바자르가 있는 중부
로투스마할과 여왕의 목욕탕이 있는 남부
인도인의 자부심인 돌-전차가 전시된 빗딸라 사원이 있는 북부
웬만하면 드넓은 함피에서는 툭툭을 타자
어제는 중앙부를 탐색했고 오늘은 남부와 북부를 제대로 돌아볼 생각이다. 그런데 각 파트의 거리가 꽤 멀다(!) 숙소가 있는 중앙부에서 남부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또 그다음으로 가야 할 북부까지도 남부에서 걸어서는 2시간 가까이 걸리기에, 보통은 효율적인 관광을 위해 툭툭 기사를 하루쯤 고용하곤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함피에 간다고 해도 누구나 숙소 밖으로 가면 1초 만에 이 정보를 알게 된다. 어리숙한 여행자를 낚아채고자 하는 툭툭 기사가 코팅한 지도를 펴내어 속사포로 위 정보를 읊어주는데, 결론은 ‘그러니 내 툭툭을 타고 일일(혹은 반일) 투어를 하자’는 것이다. 관광객만 들르는 함피에 대중교통 같은 것은 없기에, 툭툭 투어가 시간-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투어가 내키지 않아 (은근 비쌈) 오늘 그저 걸어서 남부와 북부를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선택이나, 나와 같은 우연한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고통스러울 계획이다.
걷겠다면 아침에 출발합시다
나무라고는 없는 돌밭의 도시 함피. 겨울이지만 해만 뜨면 살벌하게 뜨거워진다. 어제 그 사실을 절절히 느꼈기에 오늘은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서려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8시도 되기 전에 길을 나섰다.
숙소가 밀집한 함피 바자르(중심부)에서 로투스마할(남부)까지 가는 길은 돌 언덕, 바나나밭, 지하 사원이 연달아 등장한다. 과연 사라진 왕조의 수도답게 유적 역시 끊임없이 남아있다. 아침에 이 길을 걸어 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본격 뜨겁기 전이라 1시간 거리도 걸음만 했다.
언더그라운드 시바 템플
땅을 파고 지면보다 아래에 건설된 언더그라운드 시바 템플에는 물이 자작이 고여있었는데, 알 수 없는 음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하자라 라마 템플
야무진 부조로 장식된 사원. 여기가 이럴진대 카주라호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일까?
여왕의 목욕탕
이름이 그럴싸하여 많은 이가 낚인다고 하는데, 사실 목욕탕이라기보다는 거의 수영장 같은 규모다.
이만한 탕을 따듯한 물로 채워서 목욕하는 여왕님은 얼마나 야무진 권력을 쥐고 있었을까 생각하는데, 어떤 인도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과 친구 사진을 찍어달라고. 그렇다면 너 사람 잘 골랐다, 난 사진에 진심이라고 ^^ K-사진 기술을 발휘하여 그와 친구의 사진을 여러 장 박아줬다. 받아보니 역시 흐뭇해하는군. 눈치를 보니 이 친구들도 여기 주민은 아니다. 놀러 온 티가 물씬 난다.
사진을 계기로 조금 친해졌다고 느끼는지 한 친구가 급 함피 설명을 시작하는데, 사뭇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어제 비루팍샤 사원을 갔고 오늘 오전에 하자라 라마 템플에 가서 로투스 마할이나 북부의 비루팍샤 사원은 꼭 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원래 궁전 같은 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 게 없으면 지루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 친구가 열변을 토한다.
“빗딸라 사원은! 50루피짜리 지폐에 있는! 돌 전차가 있는! 슈퍼 페이머스 모스트 임포턴트 사원이라고!”
그렇구나... 하지만 몇 백원에 불과한 비루한 입장료를 내야 하는 다른 함피 관광지와는 달리, 비자야 빗탈라 사원은 가장 유명한 포인트가 맞는지 무려 600루피(만 원) 짜리 티켓을 사야 한다고! 만 원은 너무 비싸다고요. 솔직히 안 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툭툭 투어 무임승차
눈치를 보니 친구들은 툭툭을 오늘 하루 대절해서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점심때가 다 된 시간, 날씨는 점점 더워오고. 다시 북부까지 걸어갈 의지가 녹아내리던 나는 꾀를 냈다.
“너희 다음에 어디 가? 툭툭에 빈자리 있으면 나 태워줄 수 있어?”
“오우! 당연하지”
이렇게 얼굴 두껍게도 현지인의 툭툭을 얻어타고 로투스 마할에 도착. 사실 이쯤에서 이 친구들에게 인사를 고하고자 했다만.
“여기 외국인 티켓이 너무 비싸서 (현지인은 몇백 원 수준) 나는 겉만 구경하려고. 태워줘서 정말 고마워.”
“뭐라고? 안돼!”
“아니야 태워줘서 정말 고마워.”
여기까지 인연이 이어진 줄 알았는데 매점에서 음료를 사 마시고 있으니 한 친구가 방금 사 온 티켓을 내민다. 무려 만 원짜리. (인도 일반 직장인 평균 월급이 2-30만 원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어마한 가격이다.)
“안돼 이건 너무 비싸. 내가 돈을 줄게.”
“노우 다음에 내가 코리아에 가면 네가 다 사 줘. 나는 코리아를 아무것도 모르니까.”
미안할 만큼 고마웠다.
“이 티켓으로 로투스 마할, 함피 박물관, 빗딸라 사원까지 오늘 하루 다 구경할 수 있으니까 잘 보관해야 해.”
“그럼 물론이지.”
인도인이 티켓을 사 줬다는 충격이 얼얼하여 로투스 궁전은 별 기억도 없다.
내게 티켓을 선물한 친구들은 고향 친구로 지금은 다른 도시에 사는데 오늘 하루 휴가를 내어 함피에 여행 왔다고 한다. 인도 사람도 수백 km 떨어진 도시에서부터 야간버스를 타고 와 보는 도시라는 걸 알게 되자, 더 함피가 좋아졌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 친구와 함께 점심까지 먹었는데, 점심값은 내가 내겠다는 걸 한사코 거절한다.
“넥스트 타임! 내가 한국에 가면 그땐 안내해 줘.”
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번 여행은 좋은 인도인을 계속 만났다. 뭄바이에서 기차역까지 데리고 가 준 친구, 나조차 비싸서 망설이는 티켓을 손에 쥐여주고 밥까지 사 주는 친구. 인도인에 대해 나쁜 평가도 많지만, 13억 중 나쁜 사람이 있을 뿐. 좋은 사람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