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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주 Jul 07. 2019

대답을 정해야 할 시간

생식기 02.

수술 한 달 째, 사람답게 살고 있다 


오늘로 수술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수술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생리통과 배란통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는 생리통을 겪어본 여성이라면 아주 잘 알 것이다. 더 이상 매달 진통제를 사재기 하지 않아도 되고,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 빈 속에 진통제를 털어 넣지 않아도 된다. (주기마다 20알은 먹은 것 같다). 이제는 회사에서 쓰러지지도 않고,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할 일도 없다. 남편에게 짜증을 내는 일도 크게 줄었다. 침대에서 이불을 쥐어뜯으며 통증과 싸우다 기절하듯 잠들고, 흥건히 젖은 옷과 생리대를 갈며 차라리 자궁을 들어내고 싶다고 생각하던 날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유지될 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안녕이다, 안녕. 

         

어떤 수술이길래 생리통이 사라졌냐면,  자궁을 깎아내는 수술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궁에 붙은 병변을 깎아내는 수술이다. 내가 앓는 자궁선근증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궁선근증 [ adenomyosis ] 

정상위치를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자궁내막 조직에 의해서 자궁의 크기가 커지는 질환을 말한다. 자궁으로 비정상적으로 침투한 자궁내막 조직이 주위의 자궁근층의 성장을 촉진하여 마치 임신 시 자궁이 커지는 것과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 자궁의 크기는 임신 12주 정도의 크기까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비전형적으로 단지 조직검사에 의해 확인되는 경우도 있고, 자궁근종처럼 국소적인 혹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궁을 적출하여 병리검사를 해야 확진이 가능하므로 정확한 유병률을 알 수는 없다. 대개 출산하지 않았던 사람보다 출산의 기왕력이 있는 경산부에서 흔하다. -네이버,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위 정의 중, 나는 ‘대개’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출산의 기왕력’이 없다. 모처의 동지들에게 물어보면,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자궁선근증을 앓는 경우도 꽤나 많다.  나이 불문, 출산 불문, 생활습관 불문, 공통점은 ‘극도로 괴로운 생리통’ 뿐. 그렇다면 자궁선근증은 왜 생기는가? 



자궁선근증이 생기는 원인은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 첫째는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근층으로 스며들어 생긴다는 가설이고, 둘째는 자궁근층의 조직이 변화하여 자궁내막조직과 유사해진다는 가설이다. -네이버,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쉽게 설명하면, 생리혈 또는 출처가 불분명한 조직이 자궁 앞, 뒤, 양 옆으로 달라붙어 증식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쌓인 조직은 자궁을 풍선처럼 점점 더 커지게 만든다. ‘오 마이 선근종’은 뒤쪽으로 7cm가 자라났고, 그 부분이 다른 장기를 눌러 제기능을 못하게 만들고 극심한 생리통을 유발한 경우였다.  


수술은 7cm 병변을 무채 썰 듯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는 것이었다. '본 내추럴' 자궁이 가능한 적게 다치도록 신경 써서 병변을 잘라내느라 수술은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잘라낸 조직을 봤는데 일부는 붉고 일부는 시커먼 것이 아주 보기 안좋았다.)  


"애 낳으면 생리통 없어져"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실 자궁선근증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자궁 전체를 적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병이었다. 어떻게 아느냐면, 자궁선근증이 있다는 사실을 10년 전에 알았는데도 당시 진료해주던 의사들은 별다른 처치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병원에 갈 때마다 숱하게 들었던 말은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 그러면 낫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생리통이 있다고 하면 ‘애 낳으면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경험치이거나, 풍문이거나, 조상의 지혜이거나... 어떻게든 좋게좋게 이해해 보려 하지만, 세상에! 생리통 낫겠다고 아이를 낳으라니. '마카롱이나 에끌레어냐'도 아니고, 나는 그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것 뿐인데, 그러려면 출산과 육아라는 이역만리 인생길로 걸어들어가야 한다니. 이 선택지는 너무도 잔인한 것이다.  


그럼 생리통과 출산이 실제 관계가 있긴 하냐면, (나의 경우 안타깝게도) 실제 관계가 있기는 하다. 자궁에 아이가 들어앉으면 자궁이 부풀고 표면적이 넓어져 이윽고 출산 이후에는 자궁벽이 원래대로 얇아지며 자연스럽게 생리통도 없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기에는 패착이 있다. 자궁선근증은 임신 자체가 힘들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빈혈을 동반하는 생리 과다와 생리통을 들 수 있다. 또한 장기간 지속되는 골반통도 주요한 증상 중 하나다. 증상은 전형적으로 40대에서 50대 여성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1/3 정도에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 또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서 불임증을 보이기도 한다. -네이버,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2~30대의 자궁선근증 환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생리통과 이별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지만, 아이를 낳거나, 아예 반대 방법으로 자궁 적출을 하지 않고는 생리통을 덜 수 있는 법이 없었다. 반대로 아이를 갖고 싶은데 자궁선근증이 있다면?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매달 끔찍한 생리통을 감내하며 ‘이번에는 두 줄이겠지, 이번에는 두 줄이겠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궁선근증은 자궁을 자갈밭처럼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착상 자체가 쉽지 않고, 임신 주수가 지나도 자궁이 부풀지 않기도 한다. 때문에 유산하는 경우도 꽤 많다. 


다행히 10년 사이 의학이 매우 발달해 나는 새로운 선택지를 받아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선택지를 고르기 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임신 계획 있어요?” 


여기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치료와 수술 방법이 달라진다. 머뭇거리는 30대 여성 기혼자 앞에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임신 계획? 있죠?”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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