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심리상담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분들이, 몇 회기 오시거나, 상담 과정이 중반으로 갈 때쯤 주로 하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담에 와서 이야기하는 동안, 분명히 후련하기도 하고, 좋아지겠다는 희망도 생기고, 마음도 좀 차분해졌었는데, 어느 때부터는 슬퍼지고, 화가 나고, 전에는 예사로 넘기던 것이 거슬리기도 하여 전보다 감정적이 되는듯하다고 걱정하며 혼란스러워하시는 겁니다.
분명 상담은 좋아지려고, 편안해지려고 하는 건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제가 즐겨 들려드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경험이 없으시겠지만, 시골에서 제가 자랄 때 밭농사는 거의 다 뒷간의 변을 퍼서 거름을 만들어 썼습니다.
봄철 한날 이름하여 '똥 푸기'가 시작되면, 온 동네는 한바탕 괴로운 냄새로 가득 찹니다.
그 바람에 뒷간은 깨끗하게 클린 화장실(?)로 새로 태어나고요^^
큰 구덩이에 퍼낸 분뇨를 붓고 짚으로 넉넉히 덮어두면 당분간 근처에 얼씬하지 말라는 어른들 엄명이 있기 마련이고요, 하루 이튿날이 지나고 우리도 학교 가랴 뛰어놀랴 바쁘다 보면, 똥구덩이가 있었는지도 잊게 되어요.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 보니 다시 온 동네에 똥냄새가ㅋㅋ
한 구덩이에 몇 집이 함께 할 때가 많은데, '다른 집에서 시작한 건가?' 하고 보니, 거름을 만들려면, 덮어둔 짚을 열어 지푸라기 사이로 햇빛 받고 바람 받고 빗물 받은 윗면을 뒤집어 아래도 그렇게 만들어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긴 장대 같은 가래로 어른들이 공들여, 한동안 잠잠했던 똥구덩이를 쑤셔놓은 거예요.
그렇지만 다시 올라온 냄새 때문에 우리는 또 '웩!' 하며 그 근처는 오라 해도 안 가요.
그렇게 한동안, 날이 흐르고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는데 이번에는 온 동네에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바로 거름 냄새예요.
구수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거름 냄새는 더 이상 똥 냄새도 아니고, 고약하지도 않습니다.
분뇨와 짚, 햇빛과 바람, 간간이 빗물까지 섞여 발효가 된 자연물질이 바로 유기농 거름인 것이지요.
지금도 가끔 차로 소도시를 지나다 보면 냄새가 날 때가 있는데, 현대인의 그것을 거름으로 쓰기에는 너무 많은 화학물질에 오염되어 있다는 생각에 반갑지는 않지만요.
발효되어 거듭난 비료를 밭에 뿌리면 냄새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자라나는 채소에도 비료가 없던 시절 최고의 유기비료가 되었지요.
그렇게 거름은, 한 해 농사의 든든한 바탕이 됩니다.
읽다 보니 어쩐지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으세요?^^
이제, 제 이야기가 어째서 비유가 되는지 설명할게요.
우리가 상담실에서 꺼내놓는 속마음들은, 어쩐지 구리고, 지질하고, 약한 모습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 한동안 이야기하면서 편해지는듯하다가, 문득 상담자한테 불만이 생기지만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사실, 상담 중간쯤이면 상담 관계에서도 모든 의미 있는 관계들처럼 불편감을 느낄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관성은 평소 의미 있는 관계에서 트러블을 느끼면 대응하던 방식 그대로 하라고 끌어당기지요.
그러나 다행히 상담 관계는 바로 그런 불편을 드러내어도 안전하게 해결해 볼 수 있다는 걸 경험할,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스스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적인 여러 가지 저항들도, 묻어두었다 꺼내보니 감정이 섞여 나오는 낯선 마음도, 마치 기껏 잠재워놓은 냄새를 뒤집어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허나 조금만 기다리면 곧 편안해지면서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하나씩 확장되는 순간들이 더해지기 마련이고, 관계 안에서도 자기 통제감이나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지면서 안정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끼면 상담은 종결되지요.
종결된 이후에도 상담 과정에서 경험으로 넓어진 자기이해와 인식의 힘은 삶에서 거름처럼 바탕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은 심리 상담 과정 중반에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의 의미에 대해, 제가 아는 비유를 들어 들려드리고자 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