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

볕드는 심리상담실

by 하계의 이난나



가끔 내담자가 자신의 어떤 모습에 대해 "전 원래 이런 성격이에요."라고 하거나, 반복되는 자기 행동에 대해서 "안 좋은 성격을 타고난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일수록 성격은 절대 안 변하는 거라고 믿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단지 자신의 어떤 생각이나 행동 중 한 가지를 원래 타고난 성격이라고 '싸잡아' 생각하는 건 어쩐지 자기 자신 전체를 걸고넘어지는듯한 말로 들려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의 성격 중 한 부분을 드러내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저는 평소 까다롭다는 소리를 듣는 편입니다.



먹는 것을 아무거나 먹지 않고, 입는 것을 고르기도 까다로워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라 평소에는 거의 쇼핑을 안 하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게 있으면 그 참에 얼른 사두곤 해요.ㅎ



주변 환경이 깨끗하기를 바라는 건 물론이라, 오래된 동네에 자리 잡은 상담실 주변 골목 쓸기나 옆 건물 앞 쓰레기 더미 정리하기는 이제 운동 삼아 하는 일이 되었을 지경입니다.





저의 까다로움은 사람을 대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나서, 예전에는 누구든 처음 만나면 나만의 잣대로 상대를 슥슥 잰 다음 얼른 속으로 평가를 내리곤 했습니다.


그래봐야 나의 선입견과 판단 분별에 의한 것이니 나의 자로 잰 상대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어서, 관계가 어쩐지 불편해지고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하는데 까다로운 잣대가 단단히 한몫을 하곤 했지요.ㅜ



그러다 고마운 나의 상담자를 만났고, 그에게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동안 내 마음속 강박적인 잣대가 주변 사람에게는 피해를, 나 자신에게는 얼마나 손해를 끼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나 자신이 무력하고 취약하다고 느끼는 '수치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나의 결점이 노출되어 다른 사람에게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완벽할 수 없는데도, 불가능한 소망을 품고서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완벽'이라는 강박적인 잣대를 만들어 재고 있었단 것을요.







오랜 상담을 마칠 무렵에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상담자가 되면 좋겠다고 권했을 때, 나는 그동안 내가 사람들에게 해온 판단 분별이 찜찜했던지, 뭔가 죄업을 쌓아둔 느낌으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상담을 하냐'라고 반문을 했었어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선생님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으며, 한때 부정적으로 쓰인 도구도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다는 취지로 나의 강점 몇 가지를 강조해 주셨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나의 '까다로움'이었는데, 그것을 상담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인 '민감성'이라고 하셨지요.





백정이 문혜군 앞에서 소 잡는 일을 하매 그 솜씨가 가히 도에 가깝더라.
이에 문혜군이 "기술이 어찌 그리 놀라운가" 물으니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엔 소 아닌 것이 없더니 삼 년 후에는 온전한 소가 없더이다."

장자의 <표정해우>



민감성!


상담자의 깐깐함은 내담자가 하는 말뿐 아니라 자세와 표정, 행동과 태도의 의미를 헤아리고 말과 침묵 사이의 행간을 읽게 합니다.



또한 내담자의 마음결이 흐르는 방향에 함께 보조를 맞추어 걸을 수 있도록 자신을 조율하는 마음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상담 선생님의 축복 덕이었을까요?

저의 예민한 까다로움은 이제는 민감한 촉이 되어 내담자의 마음을 감지하고 섬세하게 돌보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성격은 이렇게 양면성이 있지만 환경과 처지에 따라,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대하기 어렵고 힘든 것으로 꼬리표가 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얼핏 보면 까다로움이지만 깊이 살피면 민감함이듯, 성격이 가진 양면성은 그 자체로 온전한 것이고 그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기도 하지요.



성격의 여러 면을 이해해서 고유한 강점을 스스로 알아주고 응원하는 것은 자신의 온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족하고 미숙한 부분이 있다면 보다 친절한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하고 응원해 주면 좋겠어요.



이렇게,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며 배워나가면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이 균형을 잡게 되어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더라도 성격은 바람직하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성격이 별로라고 여겨지신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좋은 면은 어떤 걸까? 하고 호기심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예민함이 미덕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 소개하고 싶어서 첨부합니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롤프 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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