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이웃들
처음 진단받으러 병원을 드나들던 24년 겨울에
<기쁨의 천 가지 이름>이라는 책을 수퍼바이저께 선물 받았어요.
건강검진하러 입원한 며칠동안 읽으며, 동시에 병원에서 만난 이웃들에게 느낀 것이 책에서 느낀 바와 다르지 않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기쁨의 천 가지 이름>은 뛰어난 명상가이자, 수행자이며 아내, 어머니, 영적 지도자이기도 한 '바이런 케이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어떤 것들을 좋은 것으로 보면, 다른 것들은 나쁜 것이 된다.
p. 31
23년 12월,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몸 두어 군데 안 보이던 게 보인다 하기에 이참에 입원해서 온몸을 한번 싹 훑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마침 연말 여행 계획으로 비워둔 일정이 있었기에 이참에 좀 쉴 겸! 하며 그 기간에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는 연말이어서인지, 평소도 아픈 사람이 많아서인지 병실이 없어서, 사전 정보 없이 검사와 상관없는 뇌병동에 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입원한 며칠 동안 병실 이웃들을 만났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다짜고짜 팔에 주삿바늘을 뚫어 주렁주렁 매단 식염수 때문에 이미 환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어요. ㅎ
검사들 사이에 검사결과나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연이어 상위 검사를 하라는 긴박함이 당황스러웠어요.
나의 몸인데 아무 이해 없이 기계에 맡기기는 꺼려질법한 일이지요. 꼭 필요한 검사인지, 순서가 온당한지 전문가인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묻고 답을 듣고 의견을 내고 결정해야 하는 과정이 꽤 스트레스가 되었고요. (의사 입장에선 '진상'이었을지도요;)
게다가 나의 병상 바로 옆자리 아주머니는 소리 나게 켜둔 전화벨 소리가 수시로 울렸어요.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크고 걸걸한데, 나이가 많으니 상대의 소리도 크게 들리게 해두어서 안 듣고 싶어도 서라운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다 듣게 되었지요.
또또 어떤 분은 뇌 수술을 하고 누워계신 상태가 갑갑해서인지 사람들이 조용해지면 팔이나 다리로 침상을 퍽퍽, 치는데, 밤 시간 내내 그렇게 했어요.
불만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지요.
9시쯤 되니 피곤해져서, 좀 자고 싶은데 다른 침상의 사람들은 잘 생각 않고 병원생활에 대해서 대화 삼매경에 빠져있었어요.
나는 저들이 멀게만 느껴지고, '난 검사만 하고 갈 거라, 친해질 일도 없는데.' 하며 매너 없어서 밉다고 마음으로 적대시했어요.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안되겠다, 뭐라도 드리면서 친한척해야지,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걸 청해야지!' 하고 뭔가 먹을 걸 나누며 폰을 무음으로 해달라거나, 유튜브를 볼 때 이어폰을 끼고 봐달라고 말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나눌 수 있는 건 친구가 사 온 귤 두 알씩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침상들을 돌며 인사도 할 겸 귤을 들고 나섰어요.
그러나 이웃 병상 커튼을 열고 얼굴을 마주하니, 말이 안 나왔어요.
간병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지만 나를 보고 반갑게 웃어주었고, 누워 있어도 의식이 있는 분은 미소를 띠고 나를 맞아주었거든요.
어쩐지 하려던 말이 쏙 들어갔어요.
그러고는 30분쯤 지났을 때, 이웃들이 자꾸만 나의 커튼 앞에서 '저기요,' 하시면서 가져오신 만두, 호빵, 꿀 음료, 바나나를 내미셨어요. 밤 10시가 되자 간호사들 몰래 먹어야 한다며 사 오신 하겐다즈까지!
엄청난 양의 먹거리가 순식간에 쌓여서 깜짝이야!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니고ㅎㅎ
먹거리를 들고 오셔서는 '이거 먹어도 괜찮아요? 어디 아파서 왔어요?'
나는 친절을 가장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했는데 이웃들은 나를 정말 궁금해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들려주곤 하시네요.
앞 병상엔, 서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손녀와 할머니인가 했더니 막내며느리와 시어머니라지 뭐예요! 세상에는 이렇게나 귀엽게 친근한 고부 사이가 있구나, 싶었어요.
갑작스럽게 뇌출혈이나 뇌경색으로 수술한 아내를 돌보는 남편들의 모습은, 온화하고 찬찬한 분도, 툭툭거리며 허세 부리듯 하는 츤데레스타일 아저씨도 하나같이 살아있어주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해 보였고요.
그 중 특히, 자기보다 젊은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한 분을 보며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50대인 환자는, 손목 스냅으로 연신 침대 난간을 치곤했는데 유독 다들 조용해지면 그렇게 해서 한밤중에 깡깡깡깡,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예민한 나는, 귀마개를 해도 소리가 다 들어오는 바람에 첫날밤은 뜬눈으로 새웠어요.
그런데 간병인은, 낮 동안 환자를 씻기고 닦이고 말벗도 해주고 밤에는 잠들만하면 소리를 내는 환자에게 단 한 번도 짜증 내는 법 없이 돌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자기자신으로서 사랑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돌볼 수 있다.
p. 62
그 공간에서, 나도 사흘째부터는 밤새 숙면을 하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예민해서 고양이들 새벽 집사 역할을 하는 나로서는 신기하고 고마운 경험이었어요.
다만 새벽 5시에 간호사가 불을 확 켜고 들어오기 전까지요.
간호사의 등장은 매번 폭력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들은 그들의 할 일을 하는 걸 테지요, 그것이 병원의 한계이고, 병원이 거대한 공장처럼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사람 마음 헤아리는 일을 꽤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안다고 여겼던 어떤 관계가 나의 편견일 뿐임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내 몸에 든 어떤 이상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돕는 의료진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며 몸을 가진 나 자신이 새삼 작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로우면 세상의 모든 존재와 화해하게 된다.
p. 331
그렇게 병원에 있는 동안 슈퍼바이저께서 선물해 주신 책을 다 읽었어요.
책은, '삶을 그저 흐르게 두라'는 이야기를 주되게 하지만 실은 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것임을 주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짜인 그물망 같은 인연과 경험들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 이어준 결과임을 다시 한번 알게 해주었어요.
그러니 지금 만난 사람과의 이야기, 지금 겪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어떤 경험으로 새롭게 만들어갈 건가는 나의 마음에 달려있음을 다시 새기게 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완벽하다는 것,
모든 완벽한 순간이 만나
지금, 이 완벽한 순간을 겪고 있다는 것을
고맙게, 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병원 이웃들 덕에, 고마운 선물인 책 덕에 진단과정이 기쁨으로 채워질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