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으면 안 돼
입추 지났다고 아침 바람이 선선해서 고마운, 병원 정기 진료날이었다.
호흡기내과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앉아있기가 무료해서, 운동 삼아 병원건물과 건물사이 연결된 통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통로는 길지 않아서, 어른 두 사람 팔 벌리면 닿을 정도이고 내가 서있는 복도에서 아크릴판으로 마감된 벽으로 바깥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풍경이래야 건물과 건물사이니까 벽두개, 한쪽건물에 달린 작은 창문, 연결된 건물의 아래층, 손바닥만 한 옥상과 그 네모상자 같은 공간을 나무펜스로 막아놓은 게 전부이다.
누군가 떨어뜨린 흰 마스크가 바람에 날아들어왔는지, 바닥에 떨어져 있다.
별로 볼 것 없는 풍경인지라,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잠자리 한 마리가 허공에서 날아들어왔다.
좁고, 사방이 막혀있는 그 공간으로 들어온 잠자리는 잠시 앉아볼 요량이었는지 에폭시로 덮인 바닥에 발을 대다가, 아마 바닥이 자기가 바라는 촉감이 아닌지, 다시 날아오르기를 반복한다.
당황한 듯 거듭거듭 날아올라 다시 앉아보지만 여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 같기도 한데 사방은 막혀있어, 날아서 방향을 바꿔보지만 벽이라는 걸 느끼고 돌기를 수차례.
이제는 힘차게 날갯짓을 해서 다시 하늘로 떠올라야 그 공간을 벗어날 텐데, 잠자리는 그러지 못한다.
잦은 날갯짓과 거듭된 그 라운딩 실패 탓인지 점점 나는 모습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급기야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크릴벽 쪽으로 날다가 부딪칠 뻔하기도 한다.
이제 나도 숨이 차다.
안돼, 거기가 아니야!
조금만 더 힘을 내, 저쪽으로 가면 낮은 벽이 있어...
마음속으로 외치며 잠자리를 응원하지만 반복되는 실패에 어느덧 내가 포기하는 심정이 된다.
안될지도 모르겠어. 많이 지쳤는걸.
사방은 막힌 벽이고, 문도 없이 그저 여리고 지친 날개에 더 힘을 실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이미 너무 오래 날았어.
이미 너무 오래, 날아올라보려고 애썼어.
이제 그만 날갯짓을 멈추고 바닥에 몸을 뉘어
잠시 있다가... 그대로 잠드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아프지만, 안쓰럽지만 그게 최선인지도.
이런 상념에 빠져있다가 문득 눈을 돌려보니, 잠자리는 나무펜스 쪽으로 휘익 날아가 담 넘어, 하늘아래로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다음 너머에도 에어컨 실외기정글 터널을 지나야 하지만, 그래도 거기는 하늘로 뚫려있어 자유로운 곳이다.
잠자리야 잘 가!
실외기 정글의 열기를 뚫고, 다시 네가 좋아하는 어느데로 휘익 휘이익 날아가렴.
괜스레, 나도 힘이 난다.
나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열기로 타는 듯한 지금을 지나, 더 나은 어느 시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긴, 이제 곧 가을이다.